“매 순간 진짜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오징어 게임’의 원지안
〈D.P.〉의 ‘그 여자’에서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참가자로, 시대의 이야기가 원하는 으뜸 원, 뜻 지, 편안할 안.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 피천득 ‘새해’
새해처럼 새롭고, 봄비로 꽃을 피울 배우 원지안
밤이와 태양이는 안녕한가요?
고양이 이름까지 알아주시다니! 그들이 저를 보살피며 잘 지내고 있어요.
원지안은 할머니가 지어주신 활동명이죠. 으뜸 원(元)에, 뜻 지(志), 편안할 안(安).
가족 이름은 대부분 할머니께서 지으셨어요. 일을 시작하면서 엄마와 소속사 대표님과 활동명을 고민했는데, 한자는 할머니께 부탁드렸죠.
뜻을 알고 보니 이름이 더 부드럽게 들립니다. 할머니는 왜 이 한자를 손녀에게 주셨을까요?
그저 “좋은 한자이기에”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글 쓰는 분인가요?
교사셨어요. 제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과 덧셈, 뺄셈 같은 산수는 직접 가르치셨죠. 독서를 많이 하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하셨고요.(웃음). 조금 엄하셨지만 덕분에 책은 늘 가까이했죠.
중학교 때 문학소녀였다고요.
문학소녀가 되고 싶었는데 살다 보니 재미있는 것이 워낙 많아요.(웃음) 물론 할머니 곁에서 공부하고 책 읽는 유년 시절이 제게 깊은 영향을 끼쳤어요.
지금도 책을 가까이하나요?
일을 시작한 뒤로는 힘이 부쳐서인지 책을 펴도 금방 잠들어요. 전만큼 독서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죠.
설렁설렁 읽지 못하고 탐독하나 보죠?
좋으면 두세 번도 읽어요.
근래 좋아하는 책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요. 최근 촬영장에 들고 다녔어요. 어린이와 성인 모두 읽을 수 있는 장편 동화예요. 어릴 때 읽었더라면 더 좋았겠지 싶어요.
어떤 점이요?
남동생 시점으로 풀어가는 형제의 여정 자체가 아름다운데요, 무엇보다 솔직해요. 겁나고 무서운 마음이 그대로 쓰여 있으니까 먼 이야기가 아니라 가깝게 느껴져요.
몇 년간 작품에서 긴 머리였는데,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역할 때문에 단발로 잘랐나요?
편하고 싶어서 시도했는데 우연히 타이밍이 맞았어요. 막상 커트하니까 관리가 쉽지 않네요. 긴 머리는 묶기라도 하는데 이제 어쩌죠?(웃음)
머리를 자른 순간 머리를 잘라야 하는 작품이 들어왔으니 인연이군요. 성인 되고 첫 단발인가요?
아기 때 이후로 처음이에요. 어떤 배역이 주어질지 모르니까 아무 때나 짧은 머리를 할 수 없거든요.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 시즌 1과 2의 차이점을 언급했어요. 게임마다 남을지 나갈지 참가자들의 투표가 진행되고, 선택에 따라 무리가 나뉘면서 갈등이 생기는데, 편 가르기 문제를 짚어보고 싶었다죠.
전작이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위주였다면, 이제는 생존과 더불어 자신의 무리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이 추가됐죠.
<소년비행>에선 “고등학생 마약 운반책인 배역의 압박감과 절망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에서 비슷한 감정을 찾았다”고 했어요.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어떤 개인사를 가져왔나요?
이번엔 접근 방향이 달라요. 내 경험에서 찾지 않아도, 현장 세트에 자연스럽게 이입되며 변화했어요. 게임 세트가 무척 실감 났거든요. 동료들과 매 순간 진짜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쌓아나가면 되겠다 싶었죠.
<오징어 게임>의 최종 출연 확정을 매니저에게 들었겠죠?
전화를 받는데 되게 묘했어요. 감사하고 잘 찍어야겠다란 마음이 컸죠.
세계적으로 관심이 큰 작품이라 시즌 2 이후 많은 변화가 올 텐데요. 기대하거나 우려하는 부분은?
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작품은 처음이어서 예상이 안 돼요. 겪어본 적 없으니까요.
몰아치는 관심에 중심을 잡아야겠다든지?
뭔가 크게 변하진 않을 거예요. 지금 이대로 있을 테니까요.
스스로도 무던하다고 느끼나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실제로도 무언가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야 일을 건강하게 해나갈 테니까요.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니, 좋군요.
덧붙이자면 맑게, 맑은 정신으로 해나가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인상도 맑아요.
지금은 화장했잖아요.(웃음)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이정재, 이병헌, 위하준, 공유, 박규영, 박성훈, 이진욱, 양동근 등 여러 배우와 앙상블을 이뤄야하는데, 촬영 과정이 어땠나요?
재밌었어요. 대기 시간이 길 수밖에 없어서 제가 속한 팀원들과 같이 촬영하고 쉬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작품을 마친 지금,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부분은 이 친구들이죠.
사전에 매니저와 대화하면서 “<D.P.>에서 인상 깊었던 배우”라고 했는데, 말하고 보니 벌써 3년 전 작품이에요. 원지안 배우 하면 그때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거든요. 후에 <소년비행>,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주연으로 나온 <가슴이 뛴다>까지 여러 작품이 있었는데 말이죠.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세요.
첫 출연작 <D.P.>의 의미는?
문을 열어준 작품이죠. 오디션 볼 때는 소속사가 없는 대학생이었어요. 당시 감독님 소개로 매니지먼트 회사에 들어갔죠. 매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의미라 지금도 그때가 생생해요.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언급하죠? 중성적이고 침착한 톤이 매력적인데요. 본래 자기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요.
답답하게 느껴졌거든요. 일을 시작하면서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니까, 그간 스스로 내 목소리를 편협하게 바라봤나 싶어요. 나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깨닫고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사연 많은 인물을 주로 맡았어요 <D.P.>에서 탈영병 여자 친구, <소년비행>에서 마약 운반책으로 길러진 고등학생,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에서 보육원에 버려져 집착이 강한 여성, 미개봉이지만 현빈, 정우성이 출연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로비스트, 전지현과 강동원이 함께한 <북극성>에선 비밀을 간직한 미스터리한 여인 등. 왜 그런 역할이 많을까요?
그러고 보니 가족사든, 감정 문제든 하나씩 사연 있는 인물이군요. 저도 비슷한 물음을 떠올려봤는데요, ‘나랑 어울리나 보다’ 하고 말았어요. 파고들면 끝도 없거든요. 왜 이럴까, 어떻게 이리됐을까, 그럼 이것 때문인가? 꼬리를 물며 장황하게 펼칠 시간에 요가 한 번 더 하는 편이 나아요.(웃음) 지금 내게 어울리는 배역이 있고, 그 인물을 연기할 시기인가 보다, 인연이 닿아 지금의 감독님과 선배님을 만났다고 담담히 여겨요.
답 없는 질문에 천착하기보단 요가 하는 편이 낫죠.
본래 피구나 농구처럼 여럿이 뛰노는 구기 종목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헬스와 필라테스 등을 의무감에 하다 보니 운동에 흥미가 떨어졌죠. 정적인 게 안 맞나 싶었는데 요가는 달랐어요. 피로가 풀리면서 몸에 좋은 기운이 도는 느낌이에요.
얼마나 수련했나요?
워낙 뻣뻣해서 몇 년을 미루다 2024년부터 시작했어요. 조금씩 늘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요가는 정신 수련에도 도움을 받을 거예요.
명상과도 많이 연결되는데 그 부분은 아직 공부가 필요해요. 일단은 꾸준히 운동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이 정도로도 귀한 성과죠.
본래 여럿이 어울리는 구기 종목을 좋아했다니, 왠지 체육복 입고 말뚝박기하는 고등학생 원지안이 떠오르는군요.
말뚝박기해봤어요. 여중, 여고에서 친구들과 별의별 놀이를 다 하며 신나게 그 시절을 보냈죠.
털털한 친구 지안이가 분위기 잡고 텔레비전에 나오면 친구들 반응은 어떤가요?
저 놀리느라 바쁘죠.
‘찐친’이군요.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들도 많은데, 반가워도 일일이 답변을 못했어요. SNS 메시지는 거의 못 보고요.
집에서 휴대폰을 멀리하려고 색칠 공부 노트를 샀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아날로그형인가 했죠.
그게 더 편해요. 컴퓨터로 뭔가 작성하거나 휴대폰으로 사이트 가입해 인증받는 과정은 여전히 어려워요. 그래도 게임은 좋아해요.
쉴 때는 디지털 디톡스를 추구하나요?
일부러 노력하진 않아요. 강박을 가지면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숲과 하늘 사진이 많아요.
편안하잖아요. 저를 보러 와주신 분들과 가능하면 그런 걸 나누고 싶어요. 자극이 많은 시대에 사니까요.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지식 설파하고 유튜브에서 뭔가 파는 사람들에게 지쳤어요. 간만에 강압 없는 피드였습니다.
다행이에요. 편안한 건 편안한 거고, 이제 열심히 일하는 모습도 올려야죠.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12월 26일 방영이군요. 전날 어떻게 보낼 건가요?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군요.
크리스마스라니, 진짜 뭐 하죠? 우유 케이크를 사서 가족과 나눠 먹을 거 같아요.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보내는 편인가요?
보통은 그래요. 물론 20대 초반만 해도 친구들과 놀았지만 이젠 다들 취업해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요. 어느 순간부터 흐지부지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이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요. 특히 낯설고 새로운 곳에 여행 가면 집 생각이 많이 나요.
한창 밖으로 시선이 향할 수 있는 나이인데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별 반응 없으세요.(웃음) 가족에게 표현을 잘 안 해서 제가 이런 생각하는지 모르실걸요. 아, 외할머니께 편지는 한 번 써봤어요. 근데 직접 말은 못하겠어요.
중학교 3학년 끝 무렵부터 배우를 꿈꿨죠. 그런 딸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합격했을 때 무척 좋아하셨겠어요.
학교 이름보다 제가 원한 것을 이뤘다며 축하해주셨죠.
대학 때부터 연극도 했던데요.
학교에서 올린 작품도 있고 감사하게도 외부에서 기회를 주신 공연도 있죠.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열심히만 했어요. 주변에 피해 주고 싶지 않아서 나를 채찍질하던 시절이었죠. 조금 더 즐기면서 했으면 어떨까 싶어요.
그 깨달음이 지금도 이어지나요?
작품마다 비슷한 고민을 해요.
조만간 <북극성>과 <메이드 인 코리아>가 디즈니+에서 방영되고, 대외비인 작품도 촬영 중이죠. 끊임없이 작품을 하는 대세 배우군요.
아닙니다.(웃음) 그저 일할 타임이 온 거예요. 언급된 두 작품도 조연이라 그렇게 바쁘진 않았어요. 주연이신 선배님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지 않기에, 여행도 갔는걸요. 짧게나마 여유 시간을 갖고 나니 이제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새해입니다. 새해라서 결심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지만, 바람이 있다면?
처음으로 재미 붙인 요가를 꾸준히 하고, 남은 촬영을 무사히 잘 마치고 싶어요. 이전에는 종이에 구체적인 새해 계획을 썼는데, 일하다 보면 어디 갔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달을 보며 마음으로 빌죠. 내용은 늘 똑같아요. ‘가족과 주변 사람의 건강과 안위를 지켜주세요.’ (VK)
추천기사
-
엔터테인먼트
뒤탈 없는 복수를 꿈꾸는 그대에게
2024.12.26by 이숙명
-
아트
뉴욕에서 흙을 빚는 작가, 제니 지은 리
2024.12.05by 김나랑
-
웰니스
해외에서는 지금 '땅콩버터' 대신 '아몬드버터?!'
2024.12.07by 장성실, Jeanne Ballion
-
아트
사물에서 발견하는 우리 이야기, '구본창: 사물의 초상'
2024.12.14by 황혜원
-
엔터테인먼트
퀴어를 안방에 침투시키는 기발한 방법
2024.12.20by 이숙명
-
패션 아이템
거대하고 '못생긴' 겨울 부츠 멋스럽게 소화하는 방법
2024.12.20by 안건호, Melisa Vargas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