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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영화처럼 관광버스 타고 전국을 다녔어요” 이창섭

2025.01.20

“밴드 영화처럼 관광버스 타고 전국을 다녔어요” 이창섭

K-팝과 트로트로 들끓는 요즘이지만, 조용히 곁을 지켜온 장르는 발라드다. 지난해 노래방 애창곡 1위는 이창섭이 부른 발라드 ‘천상연’이다. 성대 폴립을 극복하고 솔로 가수로서 정규 앨범을 발표한 후 전국 투어 콘서트까지 마친 그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모두 프로듀서와 올라운더를 꿈꿀 때 보컬리스트의 의미를 상기한다.

광택감 있는 슬림한 수트, 블라우스는 헌킴(Heon Kim), 선글라스는 레이밴(Ray-Ban by EssilorLuxottica), 로퍼는 지미 추(Jimmy Choo). 

6년 만에 낸 첫 솔로 정규 앨범명이 자신의 출생 연도인 ‘1991’이군요. 비투비 활동은 겸하겠지만, 솔로 뮤지션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미인가요?

회사를 옮기면서 나를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것인지 고민하던 중 앨범명을 정했죠. 이창섭이라는 사람의 출발을 알리는 앨범이었으면 했고, 그 시작점에서 하나하나 구축해가고 싶어요.

오랜만에 12개 트랙을 꽉 채운 정규 앨범을 들었어요. 주로 싱글로 활동하는 시대라, 서사가 있는 정규 앨범이 그립더라고요.

지난해 초에 미니 앨범을 계획했다가 성대에 문제가 생기면서 중단했어요. 치료받으며 아쉬움이 많이 남았나 봐요. 정규 앨범을 내고 싶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12곡을 새롭게 넣을 수 있겠느냐며 걱정했죠. 한 달에 10곡씩 녹음하면서 거의 한풀이하다시피 만들었어요. 첫 정규 앨범인 데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기에 의미가 남달라요.

가수에게 정규 앨범은 어떤 의미인가요?

솔로 이창섭의 흔적이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미니 앨범과 디지털 싱글이 쉼표라면, 정규 앨범은 마침표 같아요. 당시 내 챕터의 마침표.

다음도 기대할게요.

더 신중해질 것 같아요. 디지털 싱글이든 정규 앨범이든 사서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음악을 해야 하니까요.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음악, 꼭 들려주고 싶은 곡이 얼마나 쌓이는지에 따라 곡 수는 달라지겠죠.

밀리터리 스타일의 포켓 셔츠, 와이드 팬츠, 블랙 타이는 아미(AMI), 반지는 벨앤누보(Bell&Nouveau). 

지난해 초에 성대 폴립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어요. 극복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 진단받았을 땐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말할 때와 노래 부를 때 목의 쓰임이 다른데, 노래는 아예 시도할 수조차 없었죠. 집이 있는 수원에서 서울까지, 이틀에 한 번꼴로 오가며 음성 치료를 받았어요. 그 와중에 일은 멈출 수 없으니 본업 외 활동만 했죠. 반년쯤 지나서야 녹음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생활 습관도 변했겠어요.

술을 즐겼는데, 치료 중엔 완전히 금주하고 탄산음료도 먹지 않았어요. 사람이 위기에 봉착하면 변한다는 말을 체감했죠.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를 지금까지 입에 대지도 않았어요.

보컬리스트에겐 특히 위기 상황이잖아요. 심적으로 힘들어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지금은 안정됐나요?

그렇긴 하지만, 조심스러워요. 감기에 걸리면 한동안 몸을 살피듯이, 저 역시 소리를 지르지 않고, 말수를 줄이고, 먹는 것도 신경 쓰죠.

원래 소리 지르는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한데 방송에서는 텐션을 올려야 하니까요. 일상에선 생각보다 엄청 조용해요.

성대 폴립을 극복하고 보컬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나요?

고음역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강화하고 싶어요. ‘이 음역대만큼은 걱정 없이 소화할 수 있다’ 할 정도로요. 음악에서 고음만 중요하진 않으니까요.

가수나 대중이 고음에 집착하는 면이 있죠.

저 역시 그랬어요. 고음 부분이 없으면 노래가 미완성인 느낌이랄까요. 압박감을 버리니까 놓쳤던 부분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새로운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었죠.

브라운 톤 수트, 화이트 셔츠, 타이, 행커치프는 헌킴(Heon Kim), 슈즈는 알든(Alden), 반지는 톰 우드(Tom Wood). 

직접 작사한 타이틀곡 ‘33’도 본인 나이가 제목이군요. 음악을 들을 때도 가사를 많이 중시한다고요. 작사가로서 이창섭은 어때요?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해요. 직접적인 단어보다는 여러 마음이 드는 표현을 하고 싶어요. 노래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의 이야기도 돼야 하거든요. 듣는 이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가사였으면 해요. 최근 콘서트에서 만나 팬이 ‘그래, 늘 그랬듯 언제나’라는 곡에 사랑이란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온다고 하더군요. 근데 사랑 이야기로 들려서 신기하다고요. 제가 써놓고도 그제야 알았어요.

‘천상연’이 2024년 노래방 인기곡 1위예요. 음악 스트리밍 차트 1위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죠. 대중의 일상과 더 맞물려 있달까요?

저도 노래방에 자주 갔어요. 들어가면 인기곡 차트가 눈앞에 딱 보이잖아요. 첫 번째에 제 이름이 있다니 어안이 벙벙해요. 그만큼 많은 분이 불러줬다는 얘기니 감격스럽죠. 가수 인생 13년 만에 처음이에요.(웃음) 이 곡을 만나게 해준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캔의 2000년 곡 ‘천상연’을 어떻게 리메이크하게 됐나요?

“창섭 씨가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성대에 폴립이 있을 때여서 반 키를 낮춰 부르기로 했죠. 녹음까지 마치고 나서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내 성대가 아프다고 노래를 훼손시킨 것 같아 못 참겠더라고요. 리메이크는 원곡의 색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제 컬러를 입혀야 해요. 정말 죄송하지만 다시 원래 키로 녹음하자고 부탁드렸어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다시 해냈더니, 이렇게 또 사랑을 받는군요.

체크 패턴 울 재킷, 와이드 팬츠, 스트라이프 셔츠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브라운 타이는 헌킴(Heon Kim). 

정규 앨범에서 보여준 시티팝, 하우스 등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발라드 부르는 이창섭의 목소리를 좋아해요. 한국인에게 발라드는 특별하죠. 모든 음악이 그렇지만,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장르랄까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빵빵 터지는 록을 잘하고 싶었어요. 정작 제가 잘하는 분야는 발라드더라고요. 발라드 ‘천상연’으로 사랑받으면서, 이쪽으로 좀 더 강하단 걸 알았어요. 올해는 발라드 보컬리스트의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려고요.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어요. 요즘엔 프로듀싱 등 올라운더를 지향하는 가수가 많은데요.

노래를 만들고 프로듀싱하는 것도 좋지만 계속 플레이어로 남고 싶어요. 각자 역할이 있잖아요. 제 역할은 노래하는 것이고, 작곡가는 곡을 만들어야죠.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합심해 창작물을 완성할 때 더 큰 시너지를 낸다고 믿어요. 그리고 다른 이가 쓴 곡을 제가 잘 소화하면 카타르시스가 있고요. 내 노래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일종의 도전이기에 해냈을 때 희열이 커요. 그 예가 바로 ‘천상연’ 같아요.

젊음만이 낼 수 있는 찬란함이 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더 풍성하게 노래 부를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런 점에서 나이 드는 게 섭섭하지 않을 것 같아요.

동의해요. 제가 운영하는 실용음악 학원생들에게도 “경험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말을 종종 해요. 노래 부르는 것도 단기간에 완벽해질 수 없어요. 시간이 필요하죠. 고등학생이 부르는 ‘서른 즈음에’와 30대가 노래하는 것은 다르죠. 물론 예술에서 젊음만이 가능한 부분도 있어요. 그때 이후에는 빈티지 와인처럼 숙성되어야죠. 바이올린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마다 지닌 고유의 소리가 낡고 갈리고 상처가 나면서 아름다워져요. 악기도 사람 목소리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들려주죠. 제가 나이 듦을 기대한다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나이 들었을 때의 제 소리를 기대해요.

보우 블라우스, 팬츠는 헌킴(Heon Kim), 슈즈는 지미 추(Jimmy Choo). 

‘여러 친구의 재능을 빛나게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실용음악 학원을 열었죠. 자신의 과거에 대입해 시작한 일인가요?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말한 대로 이뤄진다는데 사실인가 봐요.(웃음) 음악에서 내 역할의 끝은 결국 후배 양성이 아닐까 싶어요. 어린 친구들이 발전하고 강해져서 폭넓은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면 좋겠어요.

11월 말부터 두 달 정도 전국 투어 콘서트를 마쳤어요. 계속 공연이 있죠?

처음엔 서울만 이야기하다가 “전국 투어는 어떨까요?” 하고 의견을 냈죠. 그 지역에 저에 대한 수요가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조금 걱정되긴 했어요. 하지만 평생 해본 적 없기에 더 하고 싶었어요. 감사하게도 공연 횟수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점차 늘어요. 지역마다 보러 와주신 분도 계셨죠. 긴 여정일 줄 알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어요.

그때를 떠올리는 표정이 행복해 보이는군요.

밴드 영화처럼 관광버스 타고 전국을 다녔어요.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팬들이 공유해준 맛집에 가고, 완전히 ‘팀 창섭’ 같아서 든든했죠. 예전부터 공연형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가수로서 성취감도 공연할 때 많이 느끼고요. 무대에 서는 것이 내 직업의 본질이고, 나의 증명이에요. 물론 앨범을 남기는 것도 가수의 본질 중 하나지만, 공연에 유독 마음이 기울어요. 지난해가 시련의 해이자 감사의 해였는데, 올해도 비슷할 거예요. 시련은 있겠지만 보컬로서 더 많은 무대에 서고 싶어요. 노래할 때가 가장 저다우니까요. (VK)

포토그래퍼
장기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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