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를 각인시키는 영화 ‘마리아’ 속 의상의 힘
영화가 종합 예술이라 불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흥미로운 시나리오, 몰입감을 더해주는 음악, 배우의 연기, 이를 담는 카메라와 편집 기술까지 수많은 것들이 합쳐져야지만 영화 한 편이 탄생하니까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패션이죠. 영화 의상을 담당하는 코스튬 디자이너는 극이 펼쳐지는 시대는 물론, 캐릭터의 성격까지 섬세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단 한 벌의 옷으로 대사 몇 줄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도 있고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전기 영화의 경우, 일은 더 복잡해집니다. 우선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해당 인물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영화가 그려내는 인물의 모습과 어울리는 의상을 준비해야 하죠. 안젤리나 졸리에게 마침내 오스카 여우 주연상을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영화 <마리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코스튬 디자이너, 마시모 칸티니 파리니(Massimo Cantini Parrini)는 작품을 위해 ‘마리아 칼라스’라는 인물을 철저하게 연구했죠. 그는 의상을 준비하며 그린 스케치만 200장이 넘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중 6장을, 오직 <보그>만을 위해 공개한 그에게 코스튬 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습니다.
의상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마리아 칼라스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해야 했습니다. 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말년에 이르러서는 사진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들더군요. <마리아>는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 7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 모피 코트를 입은 그녀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파파라치를 피하고자 얼굴을 가리고 있었죠. 그 이미지를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당시 마리아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죽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죠. 그녀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본 뒤,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작은 디테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죠. 저에게 맡겨진 임무는 마리아가 콘서트 중 입었던 의상, 그녀가 앨범 커버 촬영 당시 입고 있던 의상, 그리고 <라이프> 매거진 촬영 당시 입었던 의상을 재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1940년대 후반, 마리아가 이탈리아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떄부터 1977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삶을 되돌아봤습니다. 마리아 칼라스에게 ‘충실한’ 옷을 만들고자 했죠. 그 결과 안젤리나 졸리를 위한 의상 60벌, 그리고 조연을 위한 의상까지 전부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일하는 건 어땠나요?
핵폭탄 같았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정말 강렬한 배우죠. 그녀가 저를 전적으로 신뢰한 덕분에, 저희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죠. 안젤리나는 의상에 사용될 원단, 제가 찾아낸 사진과 직접 그린 스케치까지 전부 보고 싶어 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옷차림을 살펴보며 그녀에 대해 더욱 깊게 이해하고자 했죠.
제가 생각하는 마리아 칼라스는 ‘스타일 아이콘’ 그 자체입니다. 실제로 그녀를 연구해 본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100% 동의합니다. 디올부터 발렌시아가까지, 마리아는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옷만 입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신뢰했던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 비키(Biki)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언제나 우아함을 잃지 않았죠.
당신의 그 끝없는 열정은 어디서 비롯하나요?
증조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외할머니가 제 열정의 원천이죠. 할머니는 피렌체에서 테일러 숍을 운영하셨습니다. 5살, 6살쯤부터였을까요? 저는 학교를 마친 뒤 매일 할머니의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그랬죠. 화려한 방 안에서, 둘둘 말아 놓은 원단을 쌓아 둔 채 일하는 여성들을 본 저는 패션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납작한 천이 입체적인 드레스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너무나 즐거웠죠.
창작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감독이나 프로덕션 팀으로부터 전달받은 대본을 읽습니다. 책을 읽을 때와 똑같은 마음가짐으로요. 이미지를 떠올리며, 머릿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흡사 방관자처럼 그 세상을 바라보죠.
의상으로 일상을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아름다움과 추함에 무작위성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 세계에 옳고 그름은 없죠. 지금 같은 때에는 불완전한 것들이 되레 아름다워 보일 때도 있고요. 코스튬 디자이너란 모두에게 감동을 줘야만 합니다. 옷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이죠.
전설적인 코스튬 디자이너, 피에로 토시(Piero Tosi)와 가브리엘라 페스쿠치(Gabriella Pescucci)를 스승으로 두기도 했죠.
그들에게 일을 배우기에 앞서, 폴리모다(Polimoda) 패션 스쿨에서 코스튬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교수님은 수많은 패션 관련 책을 집필하기도 한 크리스티나 지오르제티(Cristina Giorgetti)였죠. 이후 이탈리아 국립영화연구소에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피에로 토시는 그 자체로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죠. 그의 수업을 듣다 보면, 학구열이 안 생길 수가 없었습니다. 코스튬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직접 겪었던 일, 그리고 그가 경험했던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거든요. 세 번째 스승, 가브리엘라 밑에서는 제가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코스튬 디자이너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는?
과거. 과거를 탐구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직업이니까요. 어렸을 때, 증조할머니가 보관하던 1920년대 옷 몇 벌을 저에게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모든 피스를 찬찬히 짚어가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줬죠.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옷을 어떤 식으로 입었는지… 저는 그 이야기를 스펀지처럼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13살 때부터 옷을 수집했습니다. 이제는 액세서리를 포함해, 약 5,000 피스를 소장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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