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그널>의 조진웅과 이제훈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사는 형사와 경찰을 연기한다. 충무로가 사랑하는 두 배우와 교신을 시도했다.
조진웅과 이제훈은 요즘 매일 경찰서로 출퇴근 중이다. 1월부터 방송되는 tvN 개국 1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시그널>에서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사는 형사와 경찰을 연기한다. 우연히 낡은 무전기를 통해 80년대의 강력계 형사와 현재의 인물인 경찰 수사팀 프로파일러가 교신하게 되며 장기 미제 사건을 함께 해결해나간다는 내용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런 식의 판타지는 숱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미 익숙하게 보아온 설정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연출가가 <미생>의 김원석 감독이며, <싸인>과 <유령>으로 한국형 수사 드라마의 새 장르를 개척한 김은희 작가가 극본을 썼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더블 천만 배우 조진웅과 이제훈, 여기에 톱스타 김혜수까지 가세했다. 믿고 보는 드라마의 탄생이다.
“최근 즐겨 본 미국 드라마 중에 <트루 디텍티브>라는 게 있어요. 시리즈처럼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그와 얽힌 이야기들과 함께 풀어내죠. 저희 드라마와 맞닿은 부분이 많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제대 후 복귀작으로 사극을 택한 이제훈에게 이번 드라마는 무척 중요하다. 20대를 정리하는 작품이자 입대 전 마지막 영화였던 <파파로티>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났던 한석규와 부자지간으로 재회한 드라마 <비밀의 문>은 엄청난 기대를 모았지만 시청률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를 다룬 또 다른 영화 <사도>가 반향을 일으킨 걸 감안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사도>의 주연배우 유아인은 드라마 <패션왕>에서 이제훈의 연적이었다. 두 배우 모두 각각 <건축학개론>과 <완득이>로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직후였다. “저도 그 영화 봤어요. 좋았습니다. <사도> 역시 한창 방영 중이던 <비밀의 문>과 비슷한 시기에 촬영했다고 들었어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잘 풀어냈더군요. 드라마가 24부작이라면 영화는 125분이잖아요. 선택과 집중을 잘한 거죠.” 민감한 질문이었음에도 이제훈은 표정의 동요조차 없었다. 그는 편안한 웃음으로 동료의 성공을 축하했다. “아인이가 연기를 잘했어요. 우린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그리고 송강호 선배 연기가 놀라웠습니다. 노인이 된 장면에선 목소리의 톤까지 세밀하게 세공해 표현한 부분도요. 어떻게 또 그런 새로운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사실 그가 군복을 벗자마자 한복을 입는 대담한 결정을 내린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비밀의 문>의 연출을 맡은 김형식 감독에 대한 신뢰가 컸다. <프라하의 연인>으로 유명한 김 감독은 김은희 작가와 함께 <유령> <싸인>을 연출한 바 있다. 김은희 작가와도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이런 장르물에 있어선 최고라고 생각해요. 군대 가기 전부터 꼭 한 번 같이 작품 하자는 얘기가 있었어요. 이번에 딱 기회가 된 거죠.” 생방송이나 다름없이 진행되는 여타의 드라마 제작 상황과 달리 <시그널>은 사전 제작 시스템으로 이미 절반 이상 촬영이 끝난 상태다. “오늘은 은평구에 있는 살해 현장인 가정집에 가서 조사를 하고 왔어요. 프로파일러 역할이라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만 쓸 줄 알았더니 경찰의 일이라는 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웃음) 물속에 막 얼굴을 담그기도 하고, 얼마 전엔 또 드라마 촬영하다 비를 쫄딱 맞았어요.” 전보다 살도 많이 빠진 상태였다. “2~3kg 정도 줄었을 거예요. 초반에 꽤 긴장했거든요. 제가 좀 그런 타입인가 봐요. 연기에 집중하다 보면 아무래도 평소처럼 못 먹어요. 속이 부대끼는 것 같고. 음식 섭취량이 줄다 보니 촬영하면 할수록 살이 빠지더라고요.”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성실함이 몸에 밴 그는 반듯한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조진웅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영화 <사냥>의 촬영이 미처 끝나지 않은 조진웅은 드라마 촬영장과 한겨울의 차가운 들숲을 오가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이다.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 조진웅과 함께 호흡을 맞춘 이선균은 그를 두고 “곰 같은 덩치로 뱀처럼 연기한다”고 했는데, 아마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다. <명량>과 <암살>로 불과 1년 사이 두 차례나 천만 영화 기록을 세운 그는 요즘 충무로에서 제일 바쁜 배우 중 한 사람이다. 촬영 당일도 남양주 세트장에서 드라마를 찍다가 곧장 강남의 스튜디오로 넘어온 상태였다. 190cm에 가까운 거구는 여전했지만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맡은 이재한은 늘 아파요. 범인 잡느라 엄청 뛰어다니고, 각목에 맞고, 뭐에 찍히고. 하여간 몸이 성할 날이 없어요.” 술 좋아하는 영화계에서도 소문난 주당이지만 요즘은 술잔은 커녕 이불을 쥘 틈도 없다. “아침 7시에 촬영 끝나서 집에 와 씻으면 8시 30분. 그리고 다시 바로 집합하는데 언제 술을 먹겠어요. 시간이 없죠. 이번엔 한 번도 술을 못 마셨습니다. 스태프들하고 언제 한번 날을 맞추나 지금 그것만 꾀하고 있죠.(웃음)”
조진웅이 연기하는 이재한은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우직한 형사다. 88서울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입은 부상으로 인해 교통경찰로 전직한 재한은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뭐든 자신 있는 우직한 인물. 잔머리 굴릴 줄도 모르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직진이다. 게다가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를 넘나들며 시간에 따른 감정의 세밀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이건 처음부터 조진웅의 역할이었다. 그가 아니라면 대체 다른 누구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김원석 감독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첫 미팅 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왜 저입니까?’ 불도저처럼 밀고 갈 수 있는 강단 있는 배우가 본인이 느끼기엔 저라고 하더군요. 열의가 굉장하셨어요. 대본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럼 가보죠!’라고 했죠. 믿음이 갔거든요.” 김원석 감독의 <미생>은 그가 전편을 챙겨 볼 만큼 아주 사랑하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참 많이 공감했습니다. 전 직장인이 아닌데도 말이죠. ‘야, 이거 너무 잘 꼬집었다. 시원하기까지 하다’ 싶더군요.”
이제훈과는 이번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벌써 네 편째다. <고지전>부터 <분노의 윤리학>, 그리고 <파파로티>까지 함께 했다. 두 사람이 알게 된 건 7년 전이다. 이제훈이 조진웅의 소속사로 들어오면서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상당히 진지한 친구예요. 뭐랄까, 집중의 시너지가 상당히 좋거든요. 본인이 집중하면 상대도 그 에너지를 받게 돼요. 빨려 들어가게 하는 그런 매력이 있죠.” 이번 드라마에서 실제로 두 사람이 만나는 신은 거의 없다. 현장에서 둘은 실물 대신 영상 속의 화면과 목소리로만 만난다. 마치 정말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정말 무전을 하는 기분으로 촬영하고 있어요. 제가 녹음한 걸 보내주기도 하고, 제훈이가 미리 찍어놓은 스크립트를 찾아보기도 하고요.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호흡은 느낄 수 있죠.” 이제훈에게 조진웅은 호탕한 형이다. “워낙 통이 크고 배포가 두둑한 분이라 많이 배려해주시죠. 이번 작품도 형이랑 같이 한다는 게 저한테는 큰 힘이 돼요.”
이제훈은 <시그널>을 찍으며 또 한 명의 든든한 선배를 알게 됐다. 무려 30년 동안 톱스타의 자리를 지켜온 김혜수다. 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김혜수는 언제나 화려하게 빛나는 최고의 여배우다. 이번 드라마에서 김혜수는 15년 차 베테랑 형사 차수현을 연기한다. 과거의 재한과 현재의 해영을 모두 아는, 이들의 연결 고리가 되는 인물이다. “그 역할을 김혜수 선배가 해준다는 얘길 듣고 너무 기쁘고 흥분됐어요. ‘이, 이제 진짜 나만 잘하면 되는구나!’ 하하. 물론 열심히 하고는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이제훈과 김혜수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다. 말단 순경부터 시작해 강력계에서 오랜 내공을 쌓은 수현의 입장에서 경찰대를 갓 졸업하자마자 같은 계급을 달고 들어온 해영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미제 사건 전담 팀에 소속된 두 사람은 하나씩 사건을 해결해가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시상식에서 보면 굉장히 카리스마가 넘치잖아요. 물론 실제로도 그렇지만 또 소녀 같은 면모도 있어요. 그토록 많은 현장을 경험하고도 지금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떨린다고 하고, 항상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고요. 전 별다른 취미나 잡기가 없는데, 선배님도 특별히 뭔가 일을 벌이기보단 지인들과 모여 편하게 밥 먹고 수다 떨고 요리하는 걸 좋아한대요. 가정적인 분이죠. 드라마가 끝날 때쯤엔 좀더 친해지지 않을까요?”
‘만약 과거에서 무전이 온다면?’이라는 전제를 단 <시그널>은 일련의 범죄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온갖 병폐를 파헤친다. 보통 사람이라면 복권 당첨 번호나 부동산 정보를 주고받겠지만, 드라마 속의 이 열혈 형사들은 좀처럼 잔꾀를 부릴 줄을 모른다. 그야말로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출발점이 80년대라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열린 80년대는 선진국이라는 국민적 염원이 현실로 구체화되던 시기였다. 컬러 TV가 나온 것도 80년대이며, 사람들은 흑백 일색의 꿈속에서나 가능하던 일들을 총천연색 일상 속에서 조금씩 맛보며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음반(변진섭의 2집 <너에게로 또다시>)이 탄생했고,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 롯데월드가 개장한 것도 1989년이었다. 조진웅은 그 무렵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제가 76년생이니까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일 거예요. 요즘 나오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풍경과 거의 비슷했죠. 전 초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와 산동네의 거의 꼭대기쯤에 살았는데, 오르막을 오르는 게 너무 힘들어서 깜박하고 숙제를 안 가져오기라도 한 날엔 눈물이 났어요. 그때 생긴 오르막길 트라우마 때문에 한동안 잠실에서만 살았잖아요. 평지에서.” 모두가 힘들었고, 누구나 희망에 들떠 있던 시대였다.
<시그널>에서 재한은 95년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한국 경제사에서 95년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해다. 이듬해엔 OECD 가입국이 되며 비로소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2000년대에 접어든다. IMF라는 폭풍으로 모래성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난 후다. 재한은 이 모든 시기를 사건 현장에서 보내며 경제성장이라는 그 허상의 맨얼굴을 본다. “엄청난 비리와 공권력 등의 외압에 의해 벌어지는 상황이 참 너무 기가 찬거죠. 그래서 미래의 해영과 무전이 닿았을 때, 재한이 이런 얘길 해요. ‘20년이 지난 그쪽은 이런 일 없는 거죠? 많이 변했죠? 그렇죠? 그게 아니라면 난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아마 꽤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 될 거예요.” 진심이 담긴 메시지의 유무는 조진웅의 작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명량> 역시 그랬다. “김한민 감독이 그냥 차나 한잔하러 사무실에 놀러 오라고 했어요. 이런저런 얘길 하다 만화로 된 <명량>의 데모 테이프를 보여줬는데 울컥하더군요.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떤 역할이건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했죠. 지금 꼭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생계형 독립군 속사포로 출연한 <암살>의 경우도 비슷하다. “<암살>이라는 영화에서 제일 크게 다가온 건 염석진(이정재)이 재판정에서 했던 대사예요. “해방될 줄 몰랐습니다.” 그 한 문장이 모든 걸 말한다고 봐요. 조선 사람 누가 알았겠어요? 당장 본인이 살고 봐야죠. 그럼에도 독립운동단체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인 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에요.”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지만 각박한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정의나 대의에 대해 떠들긴 쉬워도 행하는 건 어렵다.
조진웅은 영화인으로서 작은 실천을 계획 중이다. 연극·영화계의 선후배들이 예술가로서 최소한의 대우라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단편영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故 최고은이 “쌀과 김치 좀 달라”는 몇 자를 유서처럼 남기고 아사한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그 뒤로도 많은 배우들이 생활고와 우울증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21세기에 멀쩡한 사람이 아사한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는 일입니까? 그 선후배들을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저 역시 연극을 하고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더군요. 대중은 배우를 선망하고 우리가 하는 작업을 문화 예술이라고 할 텐데, 과연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어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이미 여러 시도가 있어왔음을 알게 된 그는 제대로 된 루트를 찾지 못해 와해된 기획을 재검토하며 구체적인 방안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너무 작아서 쉬이 꺼져버린 불씨가 상당히 많더라고요. 일단 저부터 귀를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전 이제 유명해졌잖아요. 그걸 십분 활용하고 싶어요. 뭐, 안 유명한 것보단 유리할 테니까. 그래서 더 많은 의식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제훈은 아마 누구보다 조진웅의 뜻을 지지할 것이다. 여러 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해온 그는 저예산 영화 제작 현장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오늘의 이제훈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첫 장편영화 <파수꾼>은 전체 배우 출연료가 500만원에 불과했다. “맞아요, 영화 속 의상도 실제 제 옷이거나 감독님 걸 입었죠. 진짜 고생하며 찍었어요. 스태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는 곧 개봉을 앞둔 영화 <명탐정 홍길동>에서 당시의 촬영 감독과 조명 감독을 다시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감개무량하더라고요. 그땐 진짜 춥고 못 먹고 그랬는데, 이런 대작에 합류해 함께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요.” <늑대소년>의 성공으로 큰 관심을 모은 조성희 감독은 차기작의 주연 배우로 일찌감치 이제훈을 점찍어두고 꽤 오랫동안 그를 기다렸다. 제대 후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영화 크랭크인 시점을 늦춰주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 너무 기대돼요. 이름만 홍길동이지 트렌치 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나오는데 시대적 배경이 모호하거든요. 조성희 감독님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독보적인 작품이 될 거예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과도 지속적으로 다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희준 역을 맡았던 박정민, 그리고 윤성현 감독과는 지금도 종종 만나는 절친한 사이다. “지금 거의 시나리오 막바지 단계라고 들었어요. 곧 좋은 소식이 들릴 거예요.”
충무로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탓에 두 배우는 좀처럼 쉴 틈이 없다. 전역한 다음 날부터 바로 대본 리딩에 들어가야 했던 이제훈이 모처럼의 휴식을 즐긴 건 제대한 지 거의 1년이 지난 후였다. 다음 작품이 연기되면서 잠시 짬이 생긴 틈을 타 그는 여행을 다녀왔다. 군 생활을 같이 한 친구와 둘이서 미국 동부를 정처 없이 자동차로 횡단하고, 난생처음 유럽에도 가봤다. “여기가 바로 <미드나잇 인 파리> <라빠르망>에 나오던 그 도시구나, ‘와’ 하며 다녔죠. 드디어 10년짜리 복수여권을 만들었거든요. 나라별로 도장을 찍을 때마다 히스토리가 쌓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하하.” 바쁜 것으로 치면 조진웅은 한 수 위다. 막바지 촬영 중인 <사냥> 외에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와 또 다른 영화 <해빙>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해빙>은 2003년 심리 스릴러 영화 <4인용 식탁>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이수연 감독이 오랜만에 공개하는 장편영화다. 조진웅은 이 영화가 아주 센 메뉴판에 걸릴 거라 확신했다. “마니아가 확실할 거예요.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이 함부로 먹었다간 큰일 나죠. 상당히 재미있을 겁니다.”
지금도 이들 앞엔 쌓인 시나리오가 수북하다. “그렇게 계속 관객을 만나야죠. 재미난 작업으로. 우린 그걸 하는 사람들이니까. 사실 힘들면 안 하면 돼요. 그냥 집에서 놀면 되죠. 그렇지만 작업을 하면 나도 즐겁고 관객도 즐겁거든요.” 조진웅이 말했다. 이런 배우들이 <시그널>이라는 드라마를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또 어떤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 이들의 진심은 통할 것이다. 희망은 낯설고 절망은 익숙한 이웃이 된 지금, <시그널>은 2016년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올까? 뚝심 있는 두 배우의 신호를 기다려보자.
- 에디터
- 이미혜
- 포토그래퍼
- JANG DUK 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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