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이상은, “자아가 깎여나갈수록 훨씬 더 유용한 인간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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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자아가 깎여나갈수록 훨씬 더 유용한 인간이 돼요”

2025.02.25

이상은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비로소 철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상실과 치유를 경험하며 일에 대한 사명감도 더해졌다.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하더라도 삶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 데뷔 37년 차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에게 삶은 여전히 여행이다. 음악을 곁들인 이상은의 이야기는 3월 15일 토요일 오후 5시 30분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펼쳐진다.

SENSE GAME 보헤미안 무드 조끼는 씨뉴욕(Sea New York), 프릴 블라우스는 에이치앤엠(H&M), 데님 팬츠는 발렌티노(Valentino), 모자는 브라운햇(Brown Hat), 목걸이는 아르켓(Arket), 스웨이드 롱부츠는 차하야(Cahaya).

첫 곡 ‘보헤미안’으로 시작하는 이상은의 6집 정규 앨범 <공무도하가>(1995)는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0위에 올라 있다. 여자 가수 중에선 가장 높은 순위다. 청춘처럼 알록달록한 블라우스를 입고 1988년 제9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은 후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축적한 영감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총 15개 정규 앨범을 발매할 만큼 성실한 직업인으로 살아왔다. 또한 나얼과 싸이가 리메이크한 ‘언젠가는’, 아이유가 재조명한 ‘비밀의 화원’ 등 후배 가수들이 꾸준히 소환하는 희대의 예술가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6년 동안 쉬었어요. 그러다 조금씩 공연 일정을 잡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몸이 기억하더라고요. 영감이 마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젊은 예술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냥 하던 일을 꾸준히 계속하라는 거예요. 릴스에선가 본 푸딩 젓는 일본 할아버지처럼요.(웃음) 요즘 저도 그런 무념무상의 장인 정신을 꿈꾸며 일하고 있답니다.”

물론 이상은에게도 맹렬한 창작열이 들끓으며 자아가 한없이 팽창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 이상은은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낯선 세계와도 과감하게 접촉했고, 그런 그에게 방랑자, 음유시인, 피터 팬, 보헤미안 같은 낭만적인 수식어가 따랐다. <삶은 여행 이상은 in Berlin>(2008), <뉴욕에서>(2010), <이상은, London Voice>(2011) 등 여행 에세이 집필도 계속됐다. 그러나 책보다 그가 쓰는 가사가 언제나 더 아름다웠다. “추한 걸 봐도 어떻게든 갈고닦아서 아름답고 예쁘게 표현하고 싶어요. 그게 콤플렉스였던 시기도 있었어요. ‘내가 만든 음악은 왜 이렇게 동요 같지?’ ‘난 깊이가 없는 사람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가 만든 음악이 아름답고 편안하게 들렸으면 좋겠어요. 끔찍한 걸 보고도 우린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요.”

FLOWER WHISTLE 오버사이즈 청 재킷은 리바이스(Levi’s).

화려한 스타덤과 창작의 고통, 숱한 여행을 통해 충분히 자아를 일깨우고 성숙해졌다고 여겼지만 돌이켜보니 착각이었다. 팬데믹 시기에 아버지를 여의고, 본인 몸까지 크게 아프면서 삶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음악 너머 엇비슷한 상실과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연 때마다 ‘저분이 다음엔 좀 더 밝은 표정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어요.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팬들과도 더 끈끈해졌죠. 저는 이제 텅 빈 것 같아요. ‘음악이 너무 좋아’ ‘내겐 음악밖에 없어’가 아니라 지금은 내 음악 때문에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음악을 해요. 이젠 ‘일을 한다’기보다는 ‘일을 하게 된다’는 수동형의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사명이 생겼죠.”

나이가 들면 철이 든다. (이상은에 따르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70세, 80세가 되어도 자아가 꼿꼿한 채 사는 사람들 있어요. 그럼 ‘철딱서니 없는 노인’이라는 말 듣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뭔가를 잃는 서글픈 과정이 아니다. “여행, 결혼, 출산,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아가 깎여나갈수록 훨씬 더 유용한 인간이 돼요. 나 자신만 보이던 사각지대가 걷히면서 주변을 보게 되죠. <보그>에 실린 사진처럼 늘 멋질 순 없어요. 그런데 그걸 인정하고 나면 내가 쓰임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죠.”

PRECEDENCE EFFECT 스카프 톱은 루이 비통(Louis Vuitton), 오른팔 골드 뱅글은 페라가모(Ferragamo), 왼손 반지는 버버리(Burberry).

SANGEUN LEE

완벽한 행복이란?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고, 경제적으로 조금 넉넉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평안할 때.

가장 두려운 건? 팬데믹 때처럼 억압되고 자유롭지 않고 공포에 시달리는 상황. ‘이미 겪어봐서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다시 겪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나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은? 딱히 스스로에게 큰 부담과 기대를 갖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 그래봐도 좋지 않을까 여기는 부분.

타인에게 가장 싫은 부분은? 중요한 순간에 정직해지지 않는 것. ‘지금 이 타이밍이 정직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어떤 사람을 가장 존경하나?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가장 큰 사치는? 돌아보면 해외여행은 정말 몸과 마음, 정신에 무척 유익한 사치.

HANDS UP 스웨이드 재킷은 구찌(Gucci), 데님 팬츠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목걸이는 아르켓(Arket), 허리에 묶어 연출한 스카프 방도는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 스웨이드 뮬은 코치(Coach).

현재 마음 상태는? 무시무시하던 독감이 나아가는 중.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환자처럼 주위를 파악하고 있다. 안도감과 혼란, 나른함을 모두 느끼면서.

가장 과대평가된 인간의 ‘덕목’은? 알고 보면 도덕이라는 덕목도 어떤 것이 가장 도덕적인 행동이나 생각인지 애매모호함. 그냥 조심하며 사는 것이 도덕인 듯.

특별히 많이 쓰는 단어나 표현은? 동료들에게 “푹 쉬세요”라는 문자를 자주 한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이 자주 쓰던 인사말인데 정말 쉰다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느껴 차용하고 있다.

살면서 가장 사랑한 대상은? 아무래도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언제 어디서 가장 행복했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본가에 머물며 편찮으신 아버지를 간호할 때 행복했다.

Ms. COWBOY 가죽 아우터와 시스루 드레스, 롱부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자신에 관해 한 가지 바꿀 수 있다면? 직업. 음악을 하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많이 안 만나도 괜찮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이를테면 소설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상당히 스트레스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 혹은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나? 우리 집 고양이들과 같이 살 고양이.

어디에서 가장 살고 싶나? 오랫동안 살았던 홍대 근처도 무척 편하고 좋지만 나무가 너무 부족하다. 그곳과 비슷하면서 나무가 많은 곳에 살고 싶다.

가장 아끼는 소유물은? 너무 정들어서 이사 갈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우리 집(빌라지만 소중한 곳).

MY AREA 어깨를 덮는 스카프 톱과 팬츠, 부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모자는 브라운햇(Brown Hat), 오른손 뱅글은 페라가모(Ferragamo), 왼손 반지는 버버리(Burberry).

가장 좋아하는 작업은?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저것 마음껏 공부할 때 도파민이 샘솟는다.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 처음 의도와 달리 전혀 작곡과 관계없는 분야를 파다가 몇 년이 훌쩍 지나기도 하지만.

친구라면 갖춰야 할 면은? 적당한 거리감. 혼자 있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가끔 만나도 늘 그 자리에 있는 타입과 친구가 된다.

좋아하는 예술가(작가)는? 요즘은 바운디와 요네즈 켄시. 그때그때 바뀐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평화롭게, 조용히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그러고 보니 후회를 잘 안 하는 것 같다. 뭐든 다 경험이고, 늘 무언가를 배웠다. 인생의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VK)

포토그래퍼
안상미
피처 에디터
류가영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허보연
헤어
신도영
메이크업
이세라
세트
전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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