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서 폐경기 여성이 일한다는 것
폐경이 직장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아무리 젊음에 집착하는 패션계라 할지라도 이는 따라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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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마리아 코르네호는 46세 때 보통 6년 정도 지속되는 폐경 전 증상인 갱년기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안면 홍조가 나타났는데, 가장 큰 문제는 불안감과 감정 기복이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회사에서는 높은 직책을 맡아 일하고, 집에서는 가정을 이끌어가는 시기와 맞물렸어요. 폐경은 많은 여성에게 설상가상의 상황과 같습니다.”
영국에서는 폐경을 겪는 여성의 약 17%가 회사의 도움을 적절히 받지 못해 퇴사를 고민하고 있으며, 약 6%는 실제로 직장을 떠난다고 영국 공인 인사 및 개발 연구소(Chartered Institute of Personnel and Development, CIPD)가 밝혔다. 영국 기업은 지난해 초 평등인권위원회(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 EHRC)가 발표한 지침에 따라 폐경기 여성을 위한 ‘합리적 조정’을 거치지 않으면 차별 혐의로 소송을 당할 수 있다. 메이오 클리닉이 2023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여성은 폐경으로 연간 약 18억 달러에 해당하는 근무시간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캠페인 단체와 인플루언서들이 점점 폐경과 관련한 금기를 깨는 추세여도, 여성이 지배하지만(적어도 하위 브랜드에서는) 젊음을 숭배하는 산업인 패션과 뷰티 분야에서 여전히 폐경은 대부분 기피하거나 비공개로만 논의되는 주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자 연락한 패션계의 경력이 많은 어느 임원은 당시 면접 기간 중이었고 자신의 나이가 언급되는 것을 원치 않아 대화를 망설였다. 또 다른 임원은 자신이 속한 브랜드가 Z세대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소속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부모님은 60세에 은퇴를 준비 중이셨기에 폐경은 경력의 종착역을 알리는 신호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와 지금이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여전히 폐경과 경력 간 연관성을 인지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느낌이 듭니다.” 10년 전 폐경된 후 럭셔리 제품 유통업체 헤드헌팅 회사를 그만둔 임원급 컨설턴트 트레이시 쇼트(Tracy Short)는 말한다.
“폐경이 되고 몇 년 후 50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인디아 꾸뛰르 위크 관계자가 이후에도 칼럼을 계속 쓸 것인지 제게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패션계에는 나이 차별이 심해요.” 인도, 아랍에미리트, 영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패션 저널리스트 수자타 아소물(Sujata Assomull)은 말한다. 그는 체중, 피부, 모발 등 폐경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가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회상한다. “늘 패션 행사를 즐겼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예전처럼 활력이 솟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홍보 담당자들은 제 외모를 지적하곤 했죠.”
전문가들은 날씬한 몸매를 강조하는 패션 문화가 폐경기를 겪는 여성에게 특히 해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폐경 클리닉 및 지원 플랫폼 ‘할리 스트리트 앳 홈(Harley Street at Home)’ 설립자인 폐경 영양학자 나이젤 덴비(Nigel Denby) 박사는 “패션계 여성들은 날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업계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의 골밀도가 특히 낮은데, 이는 체중이 늘어나는 변화를 몸이 익숙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누구나 35세 이후부터 골밀도가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폐경기에 에스트로겐이 감소하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따라서 여성은 골다공증이라는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으며, 패션계 여성은 특히 위험하죠.”
패션계와 뷰티계의 젊음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는 폐경을 겪는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업계가 이들을 위한 제품을 유통하는 데도 장애로 작용한다. 로라 메르시에와 스킨케어 브랜드 에르노 라즐로(Erno Laszlo)에서 최고 경영진으로 일하다가 잠시 휴식 기간을 갖고 있던 로셸 바이츠너(Rochelle Weitzner)는 처음으로 안면 홍조를 경험했다. 그 순간을 계기로 그녀는 주름과 칙칙함, 탄력 저하 등 갱년기 여성이 겪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 스킨케어 회사 ‘포즈 웰에이징(Pause Well-Aging)’을 설립했다.
하지만 곧 문제에 부딪혔다. “어느 대형 홈쇼핑 법무 팀으로부터 폐경은 질병이기 때문에 방송에서 폐경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류 미디어는 시청자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아 폐경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투자자들은 그런 금기시되는 주제에 선뜻 투자할 수 없다고 판단했죠. 그리고 백화점에서는 폐경과 폐경이 피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소비자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그의 설명이다. “갱년기에 관한 새로운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폐경은 여성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에요. 많은 지식이 쌓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폐경 전후에는 안면 홍조와 식은땀뿐 아니라 48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그중에는 인지적 증상(두통, 기분 저하, 불안감)이 있는가 하면 신체적 증상(가려움, 피부 건조, 머리카락 가늘어짐, 이명)도 있다. 이 증상의 원인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식과 정보 부족으로 많은 여성이 의사의 오진이나 침묵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트레이시 쇼트는 처음에 자신의 증상이 ADHD라고 여겼고, 로셸 바이츠너는 머리가 멍해지는 현상을 알츠하이머 초기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배우 할리 베리는 폐경을 겪는 과정에서 의사가 헤르페스로 오진했던 일이 알려진 적 있다. 폐경기 전문가 루이스 뉴슨(Louise Newson) 박사는 “이런 사례를 통해 불필요한 검사와 전문의의 잘못된 진단으로 많은 시간이 허비되고, 여성이 적절한 치료를 받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버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폐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을 경우 심장병, 골다공증, 당뇨병 등 심각한 건강상 위험에 처하며, 이는 업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한다.
폐경기에 들어선 직원에 대한 지원이 없는 패션 기업은 능력 있는 인재를 놓칠 위험이 많다. 패션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업과 협력해 폐경기 정책을 시행하는 업무 환경 컨설팅 기업 ‘헨피크드(Henpicked)’의 CEO 데보라 갈릭(Deborah Garlick)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용주가 폐경기 정책에 투자하는 비용은 기업 내 폐경기 직원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여성이 한 명이라도 퇴사하는 경우 해당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비용보다 훨씬 낮으며, 특히 그 여성들이 이전 고용주에게 소송을 거는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법적 다툼이 벌어진 사례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폐경기 여성이 기업을 떠나지 않고 머물게 하기 위한 노력은 이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폐경기 여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면 직원들이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가 자신을 단순한 인적 자원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갈릭은 말한다. “많은 사람이 폐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지만, 인식 개선은 기업이 관여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인다. 직장 내에서 폐경기를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게 하려면 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하고, 직원의 피드백을 수집해 조직 구성원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에 따라 인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갈릭은 권유한다.
폐경기 여성을 위한 만능 정책은 없다. 갈릭은 직원의 근무 환경 점검부터 시작해 여성이 자신의 증상을 관리할 수 있도록 기업이 개입할 것을 제안한다. “귀사의 업무 교대 방식은 직원이 휴식을 취하고, 물을 마시거나 잠깐 화장실에 들르고, 안면 홍조나 갑작스럽게 시작한 생리에 대처할 시간을 허용하고 있나요? 직원이 유니폼을 입는다면 통기성 좋은 원단으로 제작했나요?”
패션계와 뷰티계에 종사하는 일부 여성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뷰티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던 아나 헤레라(Ana Herrera)는 자궁내막증 4기 치료를 위해 자궁 적출술을 받은 후 폐경기에 접어들었다. 이때의 경험은 호르몬 건강에 초점을 맞춘 교육 플랫폼이자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 유무 제품 검증 플랫폼 ‘호르몬 유니버시티(Hormone University)’를 설립하게 된 동력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기업이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청소용품과 위생용품을 더 나은 것으로 교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온라인 럭셔리 부티크 ‘마이 워드로브(My Wardrobe)’를 설립하고 이후 숍 다이렉트와 프렌치 커넥션 등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사라 커런(Sarah Curran)은 재택근무 덕분에 직접 증상을 관리하며 온라인에서 동료와 계속 소통한 것이 폐경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상반신으로는 사업을 하고, 하반신으로는 폐경을 겪었죠”라고 그녀는 농담을 건넨다. 2023년에 사라 커런은 폐경기 치료 시 호르몬 대체 요법(Hormone Replacement Therapy, HRT)을 원하지 않는 여성에게 교육하거나 여러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건강과 웰빙 콘텐츠를 비롯해 폐경기에 유용한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 플랫폼 ‘저스트 하터(Just Hotter)’를 설립했다. 그는 “여성의 폐경 치료법에 대한 말이 많지만, 이는 개인의 선택 영역이에요”라고 말한다.
HRT가 스스로에게 적합한지를 비롯해 여성에게 자신의 증상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아낼 시간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021년 패스트 패션 쇼핑몰 아소스(ASOS)는 현재도 패션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책인 폐경, 유산, 불임 치료, 암 치료, 성전환 수술 등 생활 속에서 건강 관련 이슈가 있는 직원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고 언론의 긍정적인 주목을 받았다. 직원이 유연하게 근무하고 단기 휴가나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있는 폐경기 정책은 시스젠더 여성뿐 아니라 폐경을 경험하는 모든 직원이 이용할 수 있다.
2022년 3월, 버버리는 폐경이 진행 중이거나 폐경을 앞둔 리더와 개인을 위한 글로벌 가이드를 제공하는 폐경 지원 전용 사이트를 개설했다. 버버리 영국 직원들은 또한 민간 의료보험사 ‘부파(Bupa)’를 통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디지털 건강 앱 ‘페피(Peppy)’와 제휴해 직원에게 폐경기 전문가와의 일대일 상담을 제공하기도 했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또한 다양한 생애 단계에 있는 여성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런던 사무실의 디자인을 재검토했다. “폐경 전후 증상과 폐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만이 직장에서 여성의 성장을 막는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의 영국 및 아일랜드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iversity·Equity·Inclusion, DEI) 및 문화 관련성 지역 책임자 모니카 라스토기(Monica Rastogi)는 말한다.
지금까지 이런 변화는 대기업에 국한되었다.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와 대기업은 이 사안을 다룰 DEI 팀을 갖추고 있지만, 대다수 소규모 브랜드는 HR 부서조차 없습니다.” 2020년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갑자기 폐경을 맞은 패션 경영인 달리아 헌(Daliah Hearn)이 말했다.
적절한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폐경기를 여성의 경력 종착역을 알리는 신호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폐경기에 대한 많은 낙인과 편견은 정보 부족, 대응법에 대한 인식 결여, 여성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실질적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는다면 “폐경기는 완전히 새롭고 활기찬 인생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수자타 아소물은 말한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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