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가을/겨울 런던 패션 위크 DAY 5
위기를 맞닥뜨리면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선천적인 기질이 이성을 밀어내고 등장합니다. 가장 익숙하고도 편한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죠.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부모님 집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뿌리, 본질로 회귀하려는 습성이 드러나는 것이죠. 런던의 기질은 무엇일까요? 런던 패션 위크 마지막 날, 버버리와 아쉬시가 런던의 뿌리와 기질을 들고나왔습니다. 지난 시즌, 자신을 돌아보겠다던 런던 패션 위크의 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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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burberry)
‘런던에 사는 주말 도피자(Weekend Escapees)의 모습.’ 이번 2025 가을/겨울 런던 패션 위크에서 버버리가 그려낸 풍경입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로 떠난 도시 사람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긴 산책을 하고, 친구를 불러 모아 저녁 파티를 할 때 어떤 옷을 입을지 상상한 거죠. 다니엘 리가 영화 <솔트번>에서 영감받았다는 이번 컬렉션은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 드라마 <다운튼 애비>, <고스포드 파크>, <브리저튼>에 이르기까지 1900년대 초 영국 귀족 사회와 시골 저택, 비 내리는 음습한 겨울의 영국을 런웨이 위로 끌어왔습니다.
묵직한 퀼팅 코트와 스커트는 어둡고 촌스러운 광택 마감에 꽃무늬로 얼룩덜룩 장식되었습니다. 밧줄처럼 원사를 꼬아 만든 니트 드레스는 영국 양치기 개, 혹은 양이 된 듯 걸을 때마다 털털 흔들렸죠. 태피스트리 톱에는 낙원 같은 시골 풍경과 사냥 장면 등이 묘사되었고요. 하우스의 상징인 트렌치 코트에는 섬세한 꽃 자수를 넣었습니다. 실크 파자마에 두툼한 울 코트를 걸치거나, 승마 부츠에 바이커 재킷을 매치해 영국 컨트리 무드를 사실적으로 구현하기도 했죠. 가장 영국스러운 풍경, 그 오래된 평화를 끄집어낸 다니엘 리의 선택에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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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시(@ashish)
2년 만의 런웨이 복귀, 비공식적 20주년 기념! 아쉬시 굽타에게 이번 런던 패션 위크는 특별합니다. 2001년 브랜드를 창립한 후 2005년 9월 처음 런던 패션 위크 무대에 섰던 그가 여전히 런던에서 쇼를 열고 있으니까요. 그가 <보그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모든 시즌을 마지막 시즌처럼 여깁니다”라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매 시즌 유행과 사투를 벌이며 이름 모를 브랜드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패션계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런웨이에 올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하죠. ‘스팽글’을 주제로 삼았다는 것도요!
쇼장은 공기가 반쯤 빠진 풍선과 제 역할을 다한 색종이로 장식되었습니다. 굽타의 모델들은 아침 9시부터 이브닝 웨어를 입고 있었죠. 모델들은 껌을 씹으며 걸었고, 어떤 모델은 알파벳 냉장고 자석과 종이 클립을 허수아비 같은 머리카락에 꽂고 있었으며, 무릎에 반짝이를 잔뜩 붙인 이들도 있었죠. 화려한 밤을 보낸 후 느껴지는 공허함과 씁쓸함이 아니라 오히려 위트와 웃음이 넘쳤달까요. 인도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스팽글 꽃무늬 스커트 수트, 스팽글 미디 스커트, 진주 패턴 무지개 단추로 이루어진 룩은 런웨이에 엔도르핀을 퍼뜨렸습니다. 의외로 컬렉션 제목은 ‘자신감의 위기(Crisis of Confidence)’였지만요. 굽타는 “저는 정말로 쇼를 하고 싶었지만, 창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는 완벽하게 런던의 기질인 창의성을 시험하며 이 위기를 극복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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