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가을/겨울 파리 패션 위크 DAY 2
2025 가을/겨울 패션 위크의 종착지, 마침내 파리입니다. 1일 차를 장식한 바케라를 지나 디올, 언더커버, 알라이아가 본격적인 서막을 열어젖혔죠. 강렬한 시작이었습니다. 디올은 25분에 달하는 쇼로 대서사시를 써 내려갔고, 언더커버는 창립 35주년을 기념하며 과거의 쇼를 재구성했습니다. 집요하게 하우스의 정체성을 탐구한 알라이아는 기어코 새로운 아름다움을 조각해냈고요. 베테랑들의 무르익은 감각과 기술에 감탄하기 바빴던 파리 패션 위크 2일 차, 오늘의 쇼를 소개합니다.

디올(@dior)
튀일리에 위치한 쇼장에서 흰 블라우스를 입은 모델이 그네에 앉아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라고 힘주어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총 5막, 장장 25분에 달하는 디올의 시간 여행이 펼쳐졌습니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300년에 걸쳐 남성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Orlando)>를 이번 쇼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주인공의 의상 변화는 키우리가 쇼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일맥상통했죠. 주제는 한마디로 패션과 정체성의 끊임없는 진화와 변화였습니다. 레이스로 덮인 바 재킷과 프릴 블라우스, 넥 러프(Neck Ruff), 테일 코트와 태피터(Taffeta) 팬츠, 잔뜩 조여지기도, 풀어지기도 한 코르셋 디테일 등 시대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문 디자인이 줄지어 등장했습니다. 화이트 셔츠에서는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é)를 향한 경의를, 자도르 디올 티셔츠와 새들 백 등에서는 존 갈리아노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었죠. 선사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새, 소행성과 빙산, 우주적 요소로 채운 쇼장은 시대를 초월한 옷의 힘과 지속성을 표현한 것이겠고요. 역사와 문학, 여성과 옷의 아름다움을 디올의 DNA와 연결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하우스에 또 한 번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그녀의 옷을 찬찬히 읽어보세요.










언더커버(@undercover_lab)
언더커버 창립 35주년을 기념하는 쇼였습니다. 준 다카하시는 많은 브랜드가 흔히 선택하는 방법, 즉 ‘브랜드의 유산’을 통째로 곱씹진 않았습니다. 대신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2004 가을/겨울 쇼를 콕 짚어 리메이크했죠. 안 발레리 뒤퐁(Anne-Valérie Dupond)의 플러시 천 작품과 패티 스미스에게서 영감받은 쇼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패티 스미스가 봉제 동물 인형 같은 옷을 입으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쇼였죠.
발끝까지 금색 장식으로 뒤덮인 화이트 룩이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후 등장한 모든 룩은 화려한 요소로 가득했죠. 호화스러웠다는 뜻이 아닙니다. 재킷 위에 덕지덕지 꽂힌 배지, 바늘이 들고 난 자리가 그대로 보이는 퀼팅 블레이저, 엉성하게 처리된 듯한 아우터 밑단, 구겨지고 낡은 듯한 코트와 경계마다 흔들리는 솔기 등 정겨운 손맛이 느껴지는 옷들이 컬렉션을 꽉 채웠습니다. 챔피언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스웨트 수트도 멋스러웠고요. 어깨가 솟은 패딩과 풍선처럼 부푼 드레스에서는 ‘봉제 인형’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연령대의 모델이 무대를 자유로이 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준 다카하시가 패션계에서 보낸 35년의 세월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는 풍경이었죠. 그의 옷은 시간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고요. 그가 “시간은 정말 빨리 흐릅니다. 사업과 사이클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지만, 제 창작물은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요.










알라이아(@maisonalaia)
단순하고, 명확하게 우아했습니다. 목선과 어깨, 엉덩이를 강조한 조각 같은 실루엣은 여성의 신체와 이를 감싸는 방식에 대해 정밀하게 탐구해온 알라이아의 유산을 더욱 단단히 다졌습니다. 컬렉션은 이중적 매력을 풍겼는데, 모든 룩이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워 보였죠. 실루엣은 곡선적이지만 견고했고, 얼굴을 감싼 패딩 롤에서는 은폐와 노출의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타이트한 상체와 허리에 튜브처럼 두른 스커트의 과장된 형태는 보호 본능과 관능미를 자극했고요. 벨트가 달린 가죽 코트나 크롭트 재킷, 드레이프가 달린 저지 드레스와 절묘한 컬러감은 지극히 알라이아스러웠습니다. 실루엣은 단순했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북부의 전통 후드와 코이프(Coif), 아랍식 베일 후드, 크리놀린처럼 스커트의 모양을 잡는 데 쓰였던 16세기의 파딩게일 롤(Farthingale-roll), 폴란드 전통 의상의 플리츠 등 시대와 지리, 문화를 뛰어넘은 다양한 민속적 요소를 곳곳에 녹여냈죠. 이 모든 건 사실 다 연결되어 있다는 듯이요. 알라이아의 실루엣과 기술, 장인 정신을 한층 더 세련되게 다듬은 피터 뮐리에의 독특한 언어를 지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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