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뒤를 잇게 된 다리오 비탈레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런웨이를 떠나고 다리오 비탈레가 베르사체의 새로운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임명됐다. 1978년 그녀의 오빠인 지아니 베르사체와 산토 베르사체가 창립한 하우스를 27년간 이끌어온 아이코닉한 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이제 최고 브랜드 홍보대사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

3월 13일, 베르사체 하우스와 모기업 카프리는 다리오 비탈레가 베르사체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음을 발표했다. 이 소식은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의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비탈레의 데뷔 컬렉션은 하우스의 47년 역사상 지아니 혹은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감독하지 않은 첫 컬렉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베르사체 하우스와 베르사체 가문의 ‘혈연’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비탈레의 임명 발표와 함께 하우스는 도나텔라가 여전히 브랜드의 상징적 존재로 남을 것임을 밝혔다. 그녀의 직책은 앞에서도 밝혔듯 ‘최고 브랜드 홍보대사(Chief Brand Ambassador)’로 변경된다.

“다음 세대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것은 내게 항상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다리오 비탈레가 우리와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쁘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베르사체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해준 뛰어난 디자인팀과 베르사체의 모든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오빠인 지아니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은 제 삶에서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오빠는 진정한 천재였지만, 저 또한 그의 정신과 끈기를 조금이나마 갖고 있길 바랍니다. 이제는 최고 브랜드 홍보대사로서 베르사체의 가장 열정적인 지지자로 남을 겁니다. 베르사체는 언제나 제 DNA와 마음속에 있습니다.” 도나텔라는 이렇게 말했다.
한편 다리오 비탈레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지아니와 도나텔라가 세운 이 특별하고 파워풀한 패션 하우스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베르사체는 수십 년 동안 독창적인 유산을 쌓아왔으며, 패션 역사를 형성해온 브랜드입니다. 저에게 신뢰를 보여준 도나텔라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오늘날의 베르사체를 만들어낸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의 비전과 전문성, 그리고 헌신을 통해 베르사체의 미래 성장과 세계적인 영향력에 기여하는 것을 큰 특권으로 받아들입니다.”

41세인 비탈레는 밀라노 패션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혁신적인 신예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2006년 패션 스쿨 이스티튜토 마랑고니(Istituto Marangoni)를 졸업한 후 디스퀘어드2에서 1년간 일한 다음 보테가 베네타에서 토마스 마이어 아래 경력을 쌓았다. 2010년 미우미우에 합류해 기성복 디자인 디렉터 겸 이미지 디렉터 자리까지 올랐으며, 올해 1월 프라다의 자매 브랜드인 미우미우를 떠났다.
이번 발표는 베르사체 가문이 베르사체의 경영권을 매각한 지 7년 만에 나온 소식이다. 당시 베르사체 가문은 지배 지분과 함께 투자회사 블랙스톤(Blackstone)이 보유하고 있던 20% 지분을 미국 그룹 카프리에 18억3,000만 유로(약 2조6,000억원)에 매각했다. 이 계약의 일환으로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남아 컬렉션 디자인을 주도하고 하우스를 대표하는 역할을 해왔다.
현재 카프리 홀딩스가 베르사체 매각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마이클 코어스와 지미 추도 소유하고 있는 이 그룹은 지난해 코치, 케이트 스페이드, 스튜어트 와이츠먼을 보유한 태피스트리와의 합병이 무산된 후 강한 압박을 받아왔다. 미국 최대 럭셔리 기업이 될 수 있었던 85억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의 경쟁 제한 문제로 불발되었다. 그 이후 베르사체와 지미 추가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베르사체 인수에 관심을 보인 기업 중 프라다 그룹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르사체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이번 소식은 하우스에 있어 과거와의 유의미한 단절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 레조 칼라브리아(Reggio Calabria) 출신인 지아니 베르사체는 자신의 브랜드를 세우기 전 칼라한(Callaghan)과 제니(Genny) 등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에서 일했다. 1978년, 사업 수완이 뛰어난 형 산토의 제안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창립했으며 산토는 CEO 역할을 맡았다. 도나텔라도 초기부터 이들과 함께했으며, 그녀는 브랜드의 ‘뮤즈’이자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80년대 초반에는 밀라노 비아 제수(Via Gesù)에 위치한 베르사체의 역사적인 팔라초(Palazzo)를 경매에서 확보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이 팔라초는 베르사체의 상징인 메두사 부조가 있는 상징적인 본거지가 되었다.
1989년 오뜨 꾸뛰르 라인 아틀리에 베르사체를 론칭하면서 도나텔라는 이 라인에 집중했고, 베르사체의 대표적인 아이콘 중 하나인 안전핀을 이때 처음 활용하게 됐다고 회상한 바 있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1993년 디퓨전 라인 베르수스를 론칭했을 때도 도나텔라에게 디자인 전반을 맡겼다. 이들은 때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대감이 매우 돈독한 가족이었다. 지아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족은 믿을 수 있어요.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화해할 수 있죠. 우리 가족은 저녁 6시에 싸운 다음 8시에 화기애애하게 저녁 식사를 합니다.”

1997년 7월, 지아니가 50세의 나이에 마이애미 비치 저택 계단에서 살해당했을 때 그의 창의력과 명성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베르사체의 전년도 매출은 8억700만 달러(약 1조원)를 기록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회사 지분 50% 전부를 당시 11세였던 도나텔라의 딸, 알레그라 베르사체 벡(Allegra Versace Beck)에게 남겼다. 형 산토가 30%, 지아니의 죽음 이후 디자인 총괄을 맡은 도나텔라가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왕은 죽었지만, 우리는 그의 주위 사람들과 회사에 희망을 줘야 했어요. 지아니와 함께했던 디자인팀에 이제 우리가 함께 이 배를 저어갈 거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느꼈죠.”
그 후 10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베르사체 가문이 애도를 표하는 동안 도나텔라는 수많은 난관을 겪었다. 때로는 빛나는 순간도 있었지만(2000년 제니퍼 로페즈가 착용한 베르사체 드레스가 구글 이미지 검색 탄생의 계기가 된 사건) 회사는 채무와 불안정한 수익을 견뎌야 했고, 도나텔라는 약물을 끊기 위해 중독 치료를 받았다. 그녀는 당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 주위 모든 것이 무너졌죠. 제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계속 길을 찾으려 했지만, 그 길이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지아니 없이 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했죠. 저는 그의 그림자였으니까요.”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베르사체는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도나텔라는 문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모피 사용을 중단하는 결단을 내렸으며, 유머 감각을 겸비한 눈부신 금발의 화려한 패션 슈퍼스타로 자리 잡았다. 뷰티 루틴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매일 밤 냉동고에서 잠을 잔답니다.”
2014년, 베르사체 가문은 회사 지분 20%를 블랙스톤에 2억1,000만 유로(약 3천억원)에 매각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회사 전체가 매각될 수도 있다는 루머가 처음으로 돌기 시작했다(지아니와 산토는 지아니가 사망하기 직전에 구찌와의 합병을 논의한 적이 있다). 향후 다른 디자이너가 베르사체의 디자인을 맡을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도나텔라는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저 자신이 베르사체지만 베르사체가 변화를 의미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하죠.”
그럼에도 도나텔라는 브랜드를 계속 이끌어나갔는데,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2018 봄/여름 컬렉션이었다. 지아니 사망 20주기를 기리는 이 쇼는 1990년대 지아니가 사랑했던 슈퍼모델들을 다시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나오미 캠벨, 카를라 브루니, 신디 크로포드, 클라우디아 쉬퍼, 헬레나 크리스텐슨이 베르사체의 상징적인 골드 체인 메일 드레스를 입고 런웨이에 등장했다. 섹시함과 자기 주체성을 결합하는 도나텔라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이게 바로 여자들을 위한 옷’이라고 말하는 옷을 디자인하고 싶어요. 여자들은 강합니다. 그리고 섹시함이 강함과 대립할 필요는 없죠. 저는 여자로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당신보다 강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소통하기 위해, 혹은 이어지기 위해 나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패션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코멘트를 남기는 것 외에 베르사체는 끈끈한 우정과 충성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이 약물중독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엘튼 존에 대해 도나텔라는 이렇게 말했다. “엘튼과 저는 이어져 있어요. 항상 저를 보호하고 돌봐줬죠. 그 점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그를 좋아합니다.” 미국 <보그> 4월호 커버 스토리에서 지지 하디드는 커리어 초기부터 자신을 지지해준 인물로 도나텔라를 언급했다. 제니퍼 로페즈는 도나텔라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수년간 이어져온 우정이죠.” 앤 해서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녀의 작업과 그녀가 대변하는 모든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 가족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어요.”
비탈레가 베르사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왕좌에 앉게 된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소식이다. 미우미우에서 그의 역할은 미우치아 프라다를 도와 브랜드의 이미지와 상품을 구축하는 것이었고, 2024년에는 93%의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만약 베르사체가 매각된다면 새로운 소유자는 의심할 바 없이 비탈레가 자신의 새로운 집에도 활력을 불어넣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자리를 넘겨준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도나텔라 베르사체라는 점은 다소 착잡하게 느껴진다. 패션계에서 아이콘으로 불리기에 적합한 인물은 극히 드물지만,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그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동안 런웨이에서 이룬 성취 또한 상징적이었다.
2025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이동
- 글
- Luke Leitch
- 에디터
- 송보라
- 사진
- Getty Images, InDigtal Media, GoRunway, Courtesy of Versace
추천기사
-
Lifestyle
메종 페리에 주에가 선보이는 예술에 대한 찬사
2025.03.14by 이재은
-
패션 뉴스
구찌-발리-질 샌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모네 벨로티의 행보
2025.03.14by 황혜원, Hilary Milnes
-
셀러브리티 스타일
생 로랑 걸, 로제가 파리에서 보여준 룩 3
2025.03.14by 오기쁨
-
Fashion
THE FIRST CHAPTER
2025.03.12by 서명희
-
Beauty
피부 속부터 차오르는 맑은 빛을 위한 샤넬의 NEW 에끌라 프리미에
2025.03.07by 서명희
-
리빙
집에서 나쁜 냄새 없애는 가장 기본적인 비법 7
2025.03.10by 주현욱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