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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는 곧 실루엣이에요” 사라 버튼

2025.03.21

“지방시는 곧 실루엣이에요” 사라 버튼

사라 버튼이 그리는 지방시 성공기.

버튼은 파리를 떠나 있을 때면 런던 집이나 영국 시골의 자연 속에 머문다. 하지만 빛의 도시 파리는 그녀를 즐겁게 하고 때로는 놀라게 만든다.

지난 1월 말, 사라 버튼(Sarah Burton)이 2025 가을/겨울 시즌 지방시 데뷔 무대를 치르기까지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시점이었다. 애비뉴 조르주 생크(Avenue Georges V)에 자리한 하우스 아틀리에 벽에는 가봉 상태의 룩이 3월 파리 패션 위크 런웨이에 오를 순서에 맞춰 차례대로 세심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버튼은 지난 9월 임명되었지만, 그녀가 준비한 시간은 지난 6개월뿐만이 아니었다. 알렉산더 맥퀸 출신인 그녀는 리 맥퀸의 어시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리 맥퀸이 지방시에 재직하던 1997년경 쇼피스를 들고 런던과 파리를 오가던 그녀가 결국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이다. 2023년, 26년간 일하던 맥퀸을 떠날 무렵 버튼은 아주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퇴임은 업계 전반에서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부족을 개탄하는 목소리를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까.

갑자기 디자이너 채용에서 경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버튼의 50대 동료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피터 코팽이 각각 발렌티노와 랑방에 발탁되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이목을 끈 ‘디스럽터’ 디자이너나 브랜드 2인자가 승진하며 수장 자리를 차지하던 최근 몇 시즌의 흐름을 뒤집었다. X세대 디자이너 하이더 아커만 역시 버튼의 지방시 데뷔 이틀 전 톰 포드에서 첫 쇼를 선보인다.

버튼에게 지방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기회다. “내 작업에는 늘 대조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드레스와 테일러링을 함께 다루는 것처럼요. 이 하우스는 그 두 가지 DNA가 모두 있죠. 그래서 여기가 내게 잘 맞는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매튜 윌리엄스와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재임 기간을 거치고 그녀가 도착한 시점의 지방시 DNA는 다소 흐려져 있었다. 지난 6년간 지방시는 확실한 방향성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이어왔다.

그래서 버튼은 하우스의 시작점, 즉 1952년 위베르 드 지방시의 첫 번째 패션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녀는 쇼가 열렸던 파리 8구 알프레드 드 비니(Alfred de Vigny) 거리에 위치한 저택 오텔 파르티퀼리에(Hôtel Particulier)에서 찍힌 흑백사진을 연구했다. 당시 한 기자는 그곳을 ‘대성당(The Cathédrale)’이라고 불렀다. 버튼은 당시 지방시의 나이가 불과 25세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와 모델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중 베티나 그라치아니(Bettina Graziani)는 그의 홍보 부서에서 일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컬렉션의 그래픽적 요소였습니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매우 간결했죠. 지방시는 곧 실루엣이에요.”

우연히도, 최근 오텔 파르티퀼리에를 개조하는 과정에서 지방시의 첫 컬렉션 패턴이 담긴 쓰레기봉투가 벽 안에서 발견되었다. 버튼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물’ 같았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해가 잘 드는 사무실 창가 테이블에 전시해두었다. 창 너머로는 에펠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리지엔에겐 익숙한 풍경이지만, 방문객은 멈춰 설 만큼 멋진 장면이다. 그러나 그 오래된 패턴은 이번 컬렉션에 그대로 재현되진 않는다. “그것들을 그대로 사용해 다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야 하지만, 앞으로도 나아가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 좋아요. 마법 같은 물건이죠.”

지방시가 오드리 헵번과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버튼은 현재 복원 중인 패턴을 통해 하우스의 시작이 러플과 리본, 레이스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처음은 아주 정확하고 순수했습니다. 단순히 기본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전후(Post-war)의 감성을 분명히 반영했죠. 일종의 소박함이 있었어요.”

지방시에게 헵번이 있었다면, 버튼에게는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 그리고 맥퀸 수트를 유니폼처럼 입는 그녀의 오랜 스타일리스트 카밀라 니커슨이 있다. 부임 이후 버튼의 최우선 과제는 재단이다. 어깨선, 허리선, 바지 실루엣 등 그녀만의 지방시를 정의할 요소를 찾아내기 위함이다. 심지어 봉제선까지도 말이다. 맥퀸을 떠나 잠시 쉬는 동안 그녀는 런던의 작은 스튜디오를 빌렸다. 그곳에서 스케치와 바느질을 하며 ‘처음 디자인을 시작한 이유’를 되새겼다. 지방시에 합류한 후에도 아틀리에에서 팀과 함께 드레이핑을 진행하기 전에 스케치부터 시작했다.

검정 더블 브레스트 턱시도 재킷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인상을 준다. 버튼의 성격과 닮았다. 크고 둥근 어깨, 모래시계처럼 잘록한 허리, 팔을 따라 비틀린 듯한 소매 봉제선이 특징이다. “소매를 곡선으로 재단한 다음 다림질로 아주 여성스러운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걸 ‘꾸뛰르 봉제선(Couture Seam)’이라고 불러요.” 그녀는 이 재킷이 여성복 패턴 메이커의 손을 거쳤지만, 남성복 구조로 제작되었다고 강조했다. “두 작업 방식이 어우러진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요. 테일러링 면에서 남성복은 여성복과 제작법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프레싱한 옷 위에 캔버스를 덧대는 방식이죠.”

그녀는 일부 재킷을 안팎이 뒤집힌 것처럼 디자인했다. 봉제선이 드러났고, 올이 풀린 상태로 밑단이 남아 있다. 그러나 캔버스 소재 덕분에 구조감과 세련된 중량감을 갖춘 재킷이 완성되었다. “사람들은 ‘사진으로 어떻게 보일까’를 가늠하지만, 나는 ‘이 옷을 입은 여성이 어떻게 느낄까’를 고민합니다. 비율을 어떻게 조율해야 충분히 그래픽적으로 보이면서도 사람이 옷에 압도되지 않을까요? 인간적인 느낌이 깃들게 하는 거죠.”

반면, 드레스는 중력을 거스르는 듯했다. 아무 장식도 달리지 않은 튤 소재의 스트랩리스 퍼프 볼 드레스와 치맛자락이 잘려 나간 듯한 ‘슈퍼 초미니’ 드레스들이다. “그건 리틀 블랙 드레스(LBD)예요.” 버튼이 검정 드레스를 가리켰다. 지방시 대표 아이템을 의미하겠지만, 더 정확하게는 ‘리틀 블랙 드레스가 되기 전, 그 본질적인 뼈대’에 더 가까워 보였다. 엘 패닝이 2025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은 흰색 레이스 코르셋 드레스를 통해 버튼의 오뜨 꾸뛰르(그녀는 2026년에나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를 미리 엿볼 수 있었다. 이 드레스는 레드 카펫에 어울리도록 더 구조적이고 격식 있는 모습이었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에 함께 출연한 티모시 샬라메 또한 선명한 레몬색 크롭트 가죽 재킷과 바지, 실크 셔츠로 구성된 지방시 룩을 착용했다. 그날 밤 가장 편안한 남성 의상 중 하나로 꼽히긴 했지만 말이다.

지난 1월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 그리고 쇼를 나흘 앞둔 프리뷰에서, 버튼은 다시 한번 ‘실무형’ 디자이너의 명성을 입증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슈퍼 미니 드레스 중 하나를 살펴보며 질문을 쏟아냈다. “고데트(Godet, 치마를 부풀리기 위해 안에 넣은 삼각형 헝겊 조각)가 적절한 위치에 있나요? 아니면 더 원형으로 퍼뜨려야 할까요?” ”어떤 종류의 튤을 넣었죠? 더 가벼운 걸 쓸 수 있을까요?” “주머니를 추가하면 분위기가 달라질까요?”라는 식의 디테일한 질문이다. “이런 면에서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편이죠.” 버튼이 인정하며 말했다.

“미완성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작품을 연이어 보여주면서도 버튼은 거듭 강조했다. 옷 한 벌당 최소 세 번의 피팅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부터 금요일까지 150번의 피팅이 남아 있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압박감을 느낄 숫자지만, 그녀에겐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인걸요.” 그녀가 벽에 숨겨진 쓰레기봉투에서 나온 것처럼 ‘오래되거나 약간 망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수 조각을 검정 실크 드레스 목 부분의 화려한 매듭에 핀으로 고정하며 말했다. “맥퀸은 워낙 작은 하우스라, 패턴을 직접 만들어야 했습니다. 리가 프린스 오브 웨일스 체크 원단으로 바이어스컷 스커트를 만들면서 보이지 않는 지퍼를 달던 게 기억나요. 그는 재봉틀을 정말 잘 다뤘지만, 우리에겐 원단이 딱 1미터뿐이었기 때문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실수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느질과 패턴 제작을 배웠죠.”

1995년 은퇴한 위베르 드 지방시를 재해석하는 과정이 자유로울까? 업계에서 그를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맥퀸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첫 패션쇼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어디서든 마찬가지예요.” 버튼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리와 함께 배웠고, 그 후로도 계속 이어왔죠. 자기만의 이야기를 전해야 합니다.”

왜 더 많은 여성이 리더가 되지 못할까? 버튼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답을 대신했다. “아버지는 전쟁 통에 성장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6년 동안 집을 비우셨기 때문에, 할머니와 어머니, 즉 두 여성의 손에서 자랐죠. 그래서 늘 여성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었습니다. 나 역시 모계 중심의 환경에서 컸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남녀가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딸이 셋이나 있어요. 여성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믿고 있죠.”

윌리엄스의 마지막 지방시 레디 투 웨어 쇼는 프랑스 국립 군사학교, 파리 에콜 밀리테르(École Militaire)의 광활한 부지에 설치된 텐트 아래서 열렸다. 버튼은 애비뉴 조르주 생크의 하우스 본사로 300명의 관람객만 초청해, 1952년 흑백사진에서 발견한 친밀감을 불러올 예정이다. 그녀가 프런트 로와 모델 사이의 거리를 설명했다. “얼마나 가까울 수 있을까요? 관람객의 가방이 걸리지 않을 정도?”

버튼은 쇼 무대 연출부터 바지 뒷부분에 추가한 신축성 있는 허리 밴드까지, 모든 작업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사고하고 실행하는 디자이너다. “가끔은 지나치게 예민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누군가 내 옷을 입고 좋은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내가 옷을 제공하는 여성을 사랑하고, 그 옷을 구매하는 사람, 그걸 입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그건 정말 엄청난 선물이죠.”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면 정말 좋아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사람들이 옷을 입고, 숨 쉬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VK)

    에디터
    김다혜
    Nicole Phelps
    사진
    Annie Leibovitz, Courtesy of Given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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