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의 ‘로비’, 쇼츠에서 재미있으면 극장 관객도 많아질까?
배우 하정우의 첫 영화 연출작인 <롤러코스터>는 지난 2013년에 공개됐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는 종종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유튜브 쇼츠에서 일주일에 2, 3번 정도는 관련 장면을 편집한 ‘짤’을 볼 수 있는데, 보고 또 봐도 그때마다 여지없이 터지는 영상들이기 때문이다. 승무원 김활란(김재화)과 부기장 이동희(임현성), 기장 한기범(한성천)이 조종석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담배를 태우면서 ‘밤꽃 냄새’, ‘이혼’, ‘수소’와 ‘암소’를 논하는데, 어디로 흘러갈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이 백미다. 기장 한기범과 김포 관제사(강성범)가 착륙 타이밍을 놓고 무전을 하다가 옥신각신하는 장면 또한 대화의 속도감 때문에 계속 보는 ‘짤’이다. 무엇보다 안과 의사(이지훈)의 헛다리 진료 장면을 놓칠 수 없다. 유독 많은 관심을 받은 영상이라 배우 이지훈은 언제나 ‘<롤러코스터>의 안과 의사’로 불릴 정도다. <롤러코스터>가 쇼츠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 치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는 속도의 ‘티키타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이 빚어내는 코미디, 그 어려운 걸 구현해낸 배우의 연기력. 당연히 그 모든 게 감독 하정우의 취향이자 능력일 것이다.

영화 <로비>는 <롤러코스터>로부터 12년 만에 나온 감독 하정우의 새로운 연출작이다. 그 사이 하정우는 <허삼관>(2015)을 통해 자신이 유머뿐 아니라 휴먼 드라마의 감정까지 살려낼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그런데 <로비>에서는 <롤러코스터>의 장기를 되살린다. 영화는 골프를 전혀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가 정부의 실력자들에게 ‘접대 골프’를 제공하며 로비를 시도하는 과정을 그린다. <롤러코스터>보다 주요 캐릭터가 더 많고 그만큼 말도 더 많다. 골프 선수, 정치인, 정치인의 남편, 정치인의 동생, 그 동생과 과거 연인이었던 스타 배우…. 여기에 접대 골프를 돕는 캐디들까지 말을 얹는다. 말과 말이 부딪히는 향연을 보다 보면 의문이 생길 것이다. 뭔가 말이 되지 않는 대화 같은데 왜 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로비>가 보여주는 코미디의 핵심은 그런 비현실적인 티키타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태도다. 썰렁하게 느낄 법한 말장난에도 웃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말장난을 끌어내는 빌드업까지 뻔뻔하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의 장점을 다시 구현한 덕분에 <로비> 또한 개봉 전부터 쇼츠에서 눈길을 끌었다. 딱 그렇게 잘라서 보여주기 좋은 장면이 많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수의 브랜드가 ‘나이키’가 된 이유’, ‘접대 골프에 꼭 필요한 마법’ 등의 제목으로 생성된 영상은 분명 <로비> 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의 재미와 홍보의 용이성, 하정우라는 브랜드에도 <로비>는 극장가에서 큰 환영을 받지 못한 듯 보인다. 개봉 후 일주일 동안 <로비>를 찾은 관객은 약 18만 명에 그쳤다.
극장에서 <로비>를 본 그날 쇼츠에서 또 <롤러코스터>의 쇼츠를 보게 됐다. 피드에 뜬 쇼츠의 제목은 ‘나이스하게 진상 짓하는 고객들’이다. 그때 <로비>와 <롤러코스터>가 그 자체로 쇼츠와 극장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극장의 관객은 곧 유튜브 쇼츠 소비자다. 그들에게 유튜브 쇼츠는 무엇을 제공하는가. 지금 쇼츠가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건 상당히 방대하다. 영화, 드라마, 예능의 명장면, 탄핵 찬성과 반대를 논하는 정치 평론가의 말말말, 영상으로 가공된 각종 커뮤니티의 황당무계한 사연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로비>의 쇼츠는 무엇을 제공했을까. 분명 <롤러코스터> 쇼츠처럼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순간을 제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쇼츠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짤’로 소비되고 지나갔을 것이다.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기획된 ‘짤’이지만, 결국 쇼츠에서 보기 좋은 ‘짤’에 그쳤을 것이란 이야기다.


쇼츠를 통해 <로비>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도 있겠지만, 쇼츠 이상의 재미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운 영화로 받아들인 관객이 더 많지 않았을까? <로비>가 IPTV 등으로 서비스되는 시점부터 관련된 짤은 분명 더 늘어날 것이다. 해당 영상에서 티키타카의 재미를 살린 배우들은 <롤러코스터>의 안과 의사처럼 큰 주목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되면 만족할 수 있는 걸까? 쇼츠 제작자들과 그 쇼츠를 본 소비자만 만족하는 상황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재벌 친구가 조의금으로 고작 30만원만 낸 이유’란 제목으로 제작될 쇼츠를 기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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