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와 유머의 예술, 샘바이펜
대중문화를 패러디와 유머로 변주해온 팝 아티스트 샘바이펜의 개인전 <LAZY>가 개막했다. 그는 이 전시를 통해 예술 속에서 느긋함을 만끽하길 권한다.

샘바이펜은 미쉐린의 마스코트처럼 친숙한 캐릭터를 패러디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토리를 덧입혀 고유한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기업의 마스코트, 인터넷 밈, 만화 캐릭터, 근현대미술 작품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활용해 기발한 이미지 조합으로 새로운 서사를 창조한다. 그의 인스타그램(@sambypen) 소개란에 적혀 있는 ‘FAKE ART’라는 문구는 앤디 워홀 같은 팝 아티스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그리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흐리며 예술에 대한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2015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샘바이펜은 서울뿐 아니라 도쿄, 홍콩, 마이애미 등지에서 다수의 전시를 개최했으며, 나이키, 포르쉐, 어도비, KB국민카드 등 국내외 브랜드와의 협업도 이어오고 있다. 개인 작업은 물론 아트 상품, 벽화, 공공 미술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해온 그는 이번 전시 <LAZY>를 통해 국내 5대 화랑 중 하나인 PKM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 제목은 ‘LAZY’이며, 전시장 초입에는 시계 형상의 ‘CLOCK’(2025)이 걸려 있어요. 연결성이 궁금합니다.
‘CLOCK’은 옛날 디즈니나 루니툰 만화영화에서 요란스럽게 울리는 알람 시계를 망치로 깨버리는 장면에서 발전시킨 작품이에요. 우리는 모두 알람을 네다섯 번 맞춰놓고는 울릴 때마다 “아, 5분만 더!”라고 외쳐본 경험이 있잖아요. ‘게으름’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열망을 시원하게 표현해준 만화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이를 키 비주얼로 삼아 레진으로 형상화해보았죠. 게으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어요? 정보가 넘쳐나고 피상적으로 연결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게으름이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작가님이 창조한 아이콘 ‘시한폭탄맨’이 에드워드 호퍼나 마티스의 작품을 배경으로 심슨 가족, 꼬마유령 캐스퍼 같은 만화 캐릭터들과 함께한 시리즈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식의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즐겨온 방법이라 특별한 의도는 없었어요. 어릴 적 사촌 형과 가까이 지내며, 형이 포트리스 같은 게임을 독차지할 때면 ‘나도 하고 싶은데….’ 하면서 속상해하곤 했죠. 그때 자연스럽게 게임 속 캐릭터들을 바꿔 나만의 캐릭터로 새 이야기를 지어내며 놀았어요. 그런 유희가 점점 발전해 여러 만화, 게임, 명화로 확장된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에 힙합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음악 샘플링이나 리믹스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처럼 미술 작업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샘바이펜을 대표하는 입체적인 페인팅 시리즈의 독특한 작업 방식에 대해 묻고 싶어요. 어떻게 이런 방식을 고안하게 되었나요?
미술학교에서 배운 그래픽 작업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저만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이러한 작업 방식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제 작업 방식을 소개하자면, 먼저 간단하게 종이에 스케치한 후, 일러스트레이터 툴을 사용해 펜 드로잉과 컴퓨터그래픽으로 작업합니다. 이렇게 만든 도안을 바탕 삼아 자작나무를 재료로 CNC 커팅을 하는데, CNC는 컴퓨터가 제어하는 가공 방식이기 때문에 단면이 매우 깔끔합니다. CNC 커팅 후에는 표면을 다듬고, 스프레이로 페인팅한 뒤, 최종적으로 캔버스에 붙여 완성합니다.


2 전시실에서 선보이는 평면 회화 시리즈는 방금 말씀하신 입체 회화 시리즈와 상반되는 제작 과정으로 탄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1 전시실의 입체 시리즈는 컴퓨터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계획적인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라면, ‘Wall’이라는 이름을 붙인 2 전시실의 평면 시리즈는 아날로그 재료만 사용하고 즉흥성과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제작한 작업입니다. 이는 제가 즐겨 해오던 길거리 그래피티 아트에서 발전한 것이죠. 여러 겹 쌓아 올린 매체에 스프레이와 물감을 사용해 도색하고, 그 후에는 사포로 갈아낸 다음 세필로 여러 캐릭터와 글자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게 작업한 시리즈이며, 이 작업이 나중에 어떻게 발전할지 저 자신도 기대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소개란에 적혀 있는 ‘FAKE ART’라는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Wall’ 시리즈의 여덟 작품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더라고요.
‘FAKE ART’는 제가 만든 단어로, 사실 누군가를 향해 어떤 주장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작업을 시작하면서 ‘가짜 예술은 뭐고, 진짜 예술은 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제 생각은, 모두가 쉽게 알아보고 즐길 수 있는 예술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작업을 진행하면서 제가 만든 단어가 점점 더 새롭게 와닿기도 해요. 특히 이번 개인전을 위해 제작한 ‘Wall’ 시리즈를 그리며 더욱 그러했죠. 풍선껌의 판박이 스티커처럼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FAKE ART’는 ‘과연 누가 순수예술을 규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정도로 해석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개인전을 시작으로 PKM과 전속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기자 간담회에서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몇 년간 작가로서 자기만의 서사를 밀도 있게 쌓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전속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 했는데, 데뷔 10주년을 맞이해 겪고 있는 변화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사실 조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하지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중퇴하고 한국에 돌아온 24세 때부터 거의 매년 개인전을 열었고, 다양한 브랜드와의 커머셜 작업을 계속했어요. 그런데 2~3년 전부터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모든 외부 작업을 중단하고 1년 동안 하나의 주제 아래 리서치와 작업을 진행해 이번 전시를 마련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갤러리와 심도 깊은 논의를 했고, 그 경험이 앞으로 잘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여전히 걱정스럽고 두려운 부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두려워도 시도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렇게 작업해왔거든요.


이번 전시에서는 호퍼, 마네, 마티스를 패러디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작가가 있다면 어떤 이들인가요?
호퍼와 마네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미니멀리즘 작가입니다. 도널드 저드와 존 매크래컨의 작품을 특히 좋아해요. 그들은 작가의 손길이나 아우라가 작품에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의도했는데, 저에게는 그 점이 멋진 의미의 갱스터로 느껴져요. 그리고 하종현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아트 페어에서 여러 차례 뵙고 인사를 드렸을 때 “지금처럼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고 해주신 말씀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어요. 선생님의 초기 작업을 집중 조명한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을 보면서는 소재를 가리지 않는 실험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 샘바이펜 개인전 <LAZY>는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5월 17일까지 열린다.
- 글
- 안동선
- 사진
- 진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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