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로샤, 내 인생의 결정적 그 책 5
2025년 <보그> 웹은 특별한 도서 리스트를 작성 중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독서광 셀럽과 디자이너, 작가들에게 인생의 한때마다 영향을 준 책을 소개해달라 요청하고 있죠. 책이 삶에 주는 영향력, 그 기쁨과 동력, 영감에 관해 널리 알리고 함께 공감하고 싶어서요. 이름하여 #독서예찬 입니다. 우리와 함께 독서 예찬론자의 길을 걸어보세요. 첫 번째는 낭만적인 룩을 선보이는 영국의 대표 디자이너 ‘시몬 로샤‘입니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오만과 편견> 리지보다는 <전망 좋은 방> 세실에 좀 더 가깝습니다.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 소녀들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룩을 조합한다는 면에서 그렇죠. 시몬이 사랑하는 리본이나 부푼 어깨, 풍성한 치마 라인에서 영국의 시대극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튤이나 브로케이드 소재에 진주와 꽃을 활용하는 건 천진한 느낌을 주지만, 하양과 검정을 오가는 컬러 활용법, 두툼한 슈즈, 바짝 당겨 올린 양말을 통해 확고한 신념과 깊이를 가늠케 하죠.
아버지이자 디자이너인 존 로샤의 패션쇼에 참석한 건 시몬이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습니다. 패션쇼장의 분위기를 일찌감치 향유했고 패션과 함께 성장했으니, 그녀가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을 떠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입학한 것은 예상치 못한 수순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2012년 런던 패션 위크에 데뷔, 2016년에는 영국 패션 어워즈(British Fashion Awards)에서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을 수상한 후 런던 패션 위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급성장한 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녀가 게스트 디자이너로서 장 폴 고티에의 꾸뛰르를 선보였을 때, 그녀를 좁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마냥 소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깊은 어둠 속에서 오히려 사랑을 발견할 줄 아는 강한 심지를 가진 디자이너였음을 알아차렸죠. ‘사랑’, ‘여성’, ‘권한’, 이 세 가지는 그녀의 삶과 룩을 구성합니다.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정체성 또한 중요한 영감으로 작용하죠. 그녀가 고른 책을 보며 결국 문학은 삶에 영향을 미치고, 옷이 되었음을 체감합니다. 시몬의 삶과 컬렉션에 묻어 있는 문학의 흔적을 찾아보세요. 시몬 로샤가 고른 다섯 작품입니다.

#1. 도널 라이언(Donal Ryan)의 <All We Shall Know>
“아일랜드를 떠난 후, 이 책은 제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어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준 동시에 깊은 슬픔을 안겨준 작품이에요.”

“마지막 장면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 필적할 만큼 탁월하다.” 박하기 그지없는 가디언즈가 시몬이 추천한 <All We Shall Know>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죠. 국내에는 정식으로 소개된 적 없지만, 아일랜드 소설가로 2013년 ‘가디언 퍼스트 북 어워드(Guardian First Book Award)’를 수상했으며, 같은 해 부커상 후보에 오르는 등 화려하게 데뷔한 도널 라이언의 2016년 작품입니다. 그녀가 추천한 <All We Shall Know> 역시 아일랜드의 문화와 정서를 배경으로 합니다. 화자로 등장하는 33세의 멜로디 시(Melody Shee)가 남편이 아니라 17세 ‘트래블러’ 소년의 아이를 임신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소설의 중심이 되죠. 아일랜드의 전통적 유랑 민족인 트래블러의 공동체적 문화를 통해 ‘안과 밖’의 개념, ‘나’라는 존재성, 작은 지역사회에서 갖는 성적 제한성 등을 이야기합니다. 가디언즈는 “라이언이 선택한 (깊은 결함과 고통스러운 죄책감을 지닌) 화자는 위대한 비극 문학의 전통적 인물들과 비슷하며, 그의 외로운 간통녀는 보바리 부인이나 안나 카레니나처럼 어둡고 비극적인 경로를 따라 나아간다”고 평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시몬 로샤는 <다큐먼트 저널> 인터뷰에서 그의 글을 “솔직하며, 암울하고, 아름답다”고 표현했으며, 이번 <보그> 인터뷰에선 무인도에 챙겨갈 딱 한 권의 책으로 꼽았습니다.
#2. 샤오루 궈(Xiaolu Guo)의 <20 Fragments of a Ravenous Youth>
“이 작품은 제가 10대 시절 가장 아끼던 책이었어요.”

책 제목을 번역하면, ‘굶주린 청춘의 20개 조각’, ‘탐욕스러운 청춘의 파편’ 정도 될까요?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출판된 적은 없지만,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발매 당시 민음사에서 <게걸스러운 청춘의 스무 파편>으로 썼습니다. 짐작했겠지만, 이 책은 굶주렸거나 탐욕스럽거나 게걸스러웠던 청춘들이 겪는 보편적인 감정을 대중적으로 담아냅니다. 2008년 발행된 작품으로 문화대혁명 이후 태어난 세대, 펜팡이 주인공이죠. 고향을 떠나 베이징으로 이주한 뒤 단역배우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경력을 쌓아가는 펜팡의 성장기를 저자는 안타까워하며 따라갑니다.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샤오루 궈와 비슷한 면이 많아 자전소설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베이징에 불어닥친 근대화의 바람은 차갑게 펜팡에게 몰아쳤고, 출신과 성별 때문에 겪어야 했던 소외감, 역사와 단절된 세대로서 연결되지 않았다는 고립감 등으로 괴로운 시절을 보내죠. 샤오루는 자신을 세우기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의 생활 속에 생생한 고통을 불어넣음으로써 중국이라는 지역성 특성을 벗어나 청년들이 공감할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전 세계에서 번역되었습니다.
#3. 로디 도일의 <The Snapper>
“첫딸을 임신했을 무렵, 이 책은 제 삶의 구원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머와 겸손을 선사했죠.”

이 역시 아일랜드 소설가 로디 도일의 저서로 1990년 발행된 후 영화와 연극으로 만든 아일랜드의 필독서입니다. 2025년 부커상 심사위원장이기도 한 로디 도일의 업적은 더 이상 가타부타할 거리가 없지만, 위트 넘치고 어딘가 비뚤어진 아일랜드인의 피가 그에게 흐른다는 것은 앞으로도 얘기할 주제입니다. 1980년대 후반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일종의 ‘아빠 찾기’가 주제입니다. (잉글랜드보다 훨씬 보수적인 아일랜드에서) 스무 살 샤론이 임신을 했고, 부모와 동생이 아이 아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물론 샤론은 입을 다물었지만 금방 정체가 탄로 나죠. 우리의 1980년대와 비슷하게 집집마다 그녀의 소문이 퍼지자 가족이 발휘한 미덕 같은 것이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펭귄북스의 표현에 따르면, 사랑스럽고 얄미운 가족이 샤론의 임신 소식에 갑작스럽게 똘똘 뭉치며 친밀감을 발휘한다죠. 시몬 로샤가 임신했을 때도 이 책을 읽고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하루빨리 한국어로 번역되길 소망해봅니다.
#4.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제가 처음으로 접한 고전소설이에요. 황량한 풍경과 인물의 감정이 뒤얽히며 만들어내는 강렬함과 섬세함이, 지금까지 제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어요.”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죠. 비극성 짙은 소설은 출간 당시 비도덕적이라 비난받았으나, 170년이 지난 현재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영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시몬 로샤 또한 10대 시절 학교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다고 하니 에밀리 브론테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하겠죠? 욕망으로 점철된 사랑의 결말, 인간의 잔혹성, 설명되지도 납득할 수도 없는 주인공들이 지긋해질 때쯤 숨겨두었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2026년 2월 새롭게 각색된 영화 <폭풍의 언덕>이 개봉하는데, 에머랄드 펜넬 감독의 해석본을 만나기 전에 직접 <폭풍의 언덕> 속으로 가보세요. 지금까지 영화화된 그 어떤 <폭풍의 언덕>도 원작 소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으니까요.
#5. 로니 혼의 <Island Zombie: Iceland Writings>
“이 책은 한 예술가가 특정 장소와 나눈 대화를 아름답게 기록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1975년, 로니 혼이 19세에 아이슬란드 땅을 처음 밟은 후 광활하고 고독한 풍경은 그의 삶과 작품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변화무쌍한 날씨, 거센 바람, 종종 공격적으로 달라지는 새들과 빙하의 강력한 영향력 등 원초적인 이 외딴 장소는 내면의 자아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었죠. 그리고 <아이슬란드 좀비>엔 일평생 그를 사로잡은 아이슬란드를 향한 감상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복잡성에 자신을 내던져온 로니 혼의 고독한 순간을 만끽하세요.

시몬 로샤의 인생 책 5
<All We Shall Know> by Donal Ryan
<20 Fragments of a Ravenous Youth> by Xiaolu Guo
<The Snapper> by Roddy Doyle
<Wuthering Heights> by Emily Brontë
<Island Zombie: Iceland Writings> by Roni H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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