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시몬 로샤와 김민하가 서로에게 주는 영감

느리지만 단단하게, 사랑스럽지만 과감하게.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닮은 두 사람, 시몬 로샤와 김민하.

패션 화보

시몬 로샤와 김민하가 서로에게 주는 영감

느리지만 단단하게, 사랑스럽지만 과감하게.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닮은 두 사람, 시몬 로샤와 김민하.

시몬 로샤가 서울을 찾았다. 지난 10년간의 브랜드 여정을 담은 포토 북 사인 이벤트, 그리고 배우 김민하와의 재회를 위해서다. 런던에서 시몬 로샤의 2025 가을/겨울 런웨이를 빛낸 김민하가 서울에서 또 한 번 시몬 로샤 걸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무용수 피나 바우쉬가 카네이션을 흩뿌리는 작품 ‘넬켄(Nelken)’에서 따온 2025 봄/여름 컬렉션의 꽃 모티브가 그대로 담긴 동화적인 드레스를 입은 김민하 그리고 시몬 로샤가 <보그 코리아> 카메라 앞에 섰다.

시몬 로샤 컬렉션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레드 컬러가 인상적인 롱 드레스. 실키한 소재와 길게 들어간 슬릿이 돋보인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김민하의 표정, 시몬 로샤가 그리는 컬렉션 분위기와 닮았다.

고운 모래처럼 부드러운 색감의 카멜 카디건과 풍성한 볼륨감이 돋보이는 핑크 튀튀 스커트의 로맨틱한 조화.

댄서 마이클 클라크와 피나 바우쉬의 춤에서 영감을 받은 시몬 로샤 2025 봄/여름 컬렉션. 김민하가 춤을 추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길게 떨어지는 크리스털 귀고리가 김민하의 말간 얼굴에 반짝임을 더한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김민하의 선명한 눈빛에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시몬 로샤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몬 로샤의 영감과 컬렉션을 총망라한 하우스의 첫 번째 책.

“사람들이 컬렉션을 보며 스스로 해석하길 바란다. 룩을 정의하거나 누군가가 어떻게 느껴야 한다고 규정하는 패션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시몬 로샤. 그 말처럼 시몬은 단단하고 용감한 태도로 브랜드를 전개한다. 의상과 액세서리는 시몬 로샤(Simone Rocha).

시몬 로샤는 2010년 브랜드 론칭 이후 ‘여성성’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하며 컬트적 반열에 올랐다. 시몬 로샤가 그녀의 ‘넘버원 팬’, 김민하와 만났다.

2019년 몽클레르와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인 후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시몬 로샤(SR) 6년 만이다. 서울은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다. 한국을 떠나기 전 전통 시장에 꼭 가볼 생각이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포토 북 <Simone Rocha>의 사이닝 이벤트, 그리고 10 꼬르소 꼬모에서 열리는 전시다.

SR <Simone Rocha>는 시몬 로샤의 첫 10년을 망라하는, 내가 최초로 발간한 책이다. 책을 준비하며 다가올 10년을 대비할 수 있었다. 전시에서는 2025 봄/여름 컬렉션 룩 10개를 감상할 수 있다. 공간 디자인은 루이즈 부르주아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김민하는 시몬 로샤의 오랜 팬으로 유명하다.

김민하(MH) 시몬 로샤를 처음 알게 된 것도 10년 전쯤이다. 대학생 때는 돈을 열심히 모아 시몬 로샤 아이템을 하나씩 사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홍콩에 여행 가면 매장에 꼭 들르기도 했다! 시몬은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평소에는 어떤 상상을 하는지 늘 궁금했다.

둘의 첫 만남은 지난 2월이었다. 2025 가을/겨울 컬렉션에 김민하가 캣워킹했다.

SR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었다. 평소 시몬 로샤 옷을 즐겨 입거나, 과거에 함께 일한 인물을 위주로 캐스팅했다. 민하가 ‘시몬 로샤 컬렉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우리가 먼저 쇼 출연을 제안했다. MH 지난해 8월, 시몬 로샤의 옷을 입고 <파친코> 시즌 2 프리미어에 참석한 적 있다. 그때 처음으로 시몬 로샤 팀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모델 제안이 온 것은 12월이었다. 5초 만에 ‘예스’라고 곧바로 답했다.

표현하고 싶은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 김민하가 맡은 배역은 뭐였나?

SR 시적이면서도 굳센 인물. 컬렉션에 영감을 준 우화 ‘토끼와 거북이’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맨 먼저 토끼털이 연상되는 모피 방도 톱을 선택했다. 트위드 스커트와 볼드한 체인 벨트를 매치해, 페미닌하면서도 반항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MH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듣는 건 처음이다. 시몬은 피팅 때 철저하게 직관에 의존했다. 모든 결정을 빨리 내렸고, “더 힘차게 걸어달라”고 주문했다. 그 요구만으로도 시몬이 원하는 캐릭터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크고 깊은 발자국을 남기는 코끼리를 상상하며 걸었다.

2025 가을/겨울 컬렉션은 지난 몇 번의 쇼와 결이 달랐다. 시몬 로샤 특유의 페미닌 무드는 그대로였지만, 전반적으로 펑크적인 분위기도 느껴졌다.

SR 쇼를 선보일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게스트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장 폴 고티에의 꾸뛰르 컬렉션 이후, 옷의 구조에 더 집중해 디자인하고 있다. 룩의 완성도를 높이되, 브랜드의 정체성과도 같은 ‘여성성의 전복’은 잃지 않고자 한다.

6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보그>와 인터뷰를 했다. 기사의 제목은 ‘Romantic Genius’였는데, 본인이 로맨틱한 사람이라고 여기나?

SR 제목이 아주 마음에 든다.(웃음) 나는 감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단지 일을 하며 많은 감정을 느끼고, 내 일을 사랑할 뿐이다. ‘로맨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틀린 설명은 아닌 것 같다.

시몬 로샤가 정의하는 ‘여성성(Femininity)’이 궁금하다.

SR 내 정의는 조금 극단적이다.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메시지를 몇 겹의 천으로 둘둘 감싸 내보일 때도 있다.

쇼 음악 역시 인상적이었다. 밴드 펄잼(Pearl Jam), 푸가지(Fugazi), 라디오헤드의 곡이 연달아 나왔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 듣는 편인가?

SR 사운드 아티스트 프레데릭 산체스(Frédéric Sanchez)와 함께 쇼 주제에 맞는 곡을 늘 직접 선택한다. 이번 컬렉션은 내가 어릴 때 즐긴 문화,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푸가지와 라디오헤드 역시 그때 좋아하던 밴드다.

최근 즐겨 듣는 앨범은 뭔가?

SR 포스트 펑크 밴드 폰테인즈 D.C.(Fontaines D.C.)의 <Romance>에 푹 빠져 있다. MH 최근에는 클래식, 특히 쇼팽을 자주 듣는다.

디자인이나 연기나, 방식이 다를 뿐 결국 목적은 어떤 메시지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과 사랑에 빠진 순간을 기억하나?

SR ‘옷을 입는다’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 옷을 방패 삼거나, 옷으로 내면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일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하이패션뿐 아니라 교복, 제복, 전통 의상 등 다양한 형태의 의류와 교감했고, 또 그들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은 더블린의 아트 & 디자인 국립대학에서 배웠다. 사진 수업을 듣고 빈티지 옷을 촬영하며 처음으로 ‘내가 만든 옷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MH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었다. 이 일과 정말 사랑에 빠진 건 10년 전쯤이다. 입시 준비를 하고, 대학 시절 연극 무대에 오를 때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다 스물한 살쯤 단편영화를 한 편 촬영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연기하는 재미를 느꼈다. 나를 표출하며 희열을 느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패션에서 연기 영감을 얻을 때도 있을 것 같다.

MH 부모님과 두 언니 모두 패션을 좋아한다. 부모님은 늘 옷을 많이 입어보고, 나와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그 말을 따른 덕분에 내 취향을 발견하고,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종종 ‘이 옷에는 어떤 페르소나가 어울릴까’라고 공상한다. 시몬 로샤를 입었을 때는 공주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차가운 느낌의 옷을 입을 때는 또 그에 맞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리허설 때도 의상을 챙겨 입고 안 입고에 따라 몰입도가 달라진다.

시몬의 쇼에는 늘 아버지 존 로샤(John Rocha)가 참석하고, 김민하의 부모님 역시 배우의 꿈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SR 디자이너 출신 아버지를 둔 덕분에 매우 창의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디자이너의 꿈을 반대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도 많다고 들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MH 부모님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너 특별한 거 아니야.” 그 말 때문에 배우 김민하와 인간 김민하를 철저하게 분리할 수 있었다. 연기하지 않을 때의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지금도 어머니와 언니들에게 내가 나쁜 방향으로 나간다면 나를 묶어놓고 이야기하더라도 꼭 정신 차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둘 다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문학에서는 어떤 영향을 받나?

MH 어렸을 때부터 누굴 만나는 게 두려웠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없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는 상상력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 SR 뇌를 잠시 꺼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책을 읽는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라고 할까? 문학이 컬렉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때도 있다. 어렸을 때 읽은 책을 다시 읽고, 과거와 현재의 감상을 비교하며 컬렉션을 구상한다.

무인도에 딱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SR 고향 더블린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책. 아일랜드 출신 작가, 도널 라이언(Donal Ryan)이 쓴 <All We Shall Know>(2016)를 고르겠다. MH 199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누구나 알 만한 만화책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유용한 정보가 많다.

지난해 3월 <보그> 행사에 연사로 나선 김민하는 “남들과 비교하게 될 때마다 ‘나만의 속도’는 무엇인지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몬은 2025 가을/겨울 컬렉션을 선보인 뒤 “토끼보다는 거북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나아간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나?

MH 나는 태생적으로 느린 사람이다. 느리게 가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다. 본인에게 맞는 속도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다만 타고난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SR 속도를 내다 보면 ‘나’를 잃게 된다. 민하의 말처럼 ‘나만의 속도’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시몬 로샤 역시 느리지만 단단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자가 정의하는 ‘시몬 로샤 걸’이 궁금하다.

SR 첫째는 당연히 여성성이다. 동시에 큰 힘을 간직하고 있으며, 현재에 충실하다. 페미닌하고 현대적이며 강인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시몬 로샤 걸’이다. MH 시몬 로샤의 옷은 유약하지도, 강인하지도 않다. 모든 사람이 입을 수 있다. 밝은 듯 우울하다. 상반되는 요소가 얽히고설킨 ‘시몬 로샤 걸’은 단단하고, 잔 다르크처럼 용감하다. (VK)

    포토그래퍼
    안상미
    스타일 에디터
    조영경
    에디터
    안건호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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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녹(김민하), 곽한빈(시몬 로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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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희정(김민하), 곽한빈(시몬 로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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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보라(유니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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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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