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

2016.03.16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

지금 서울 미식계는 들떠 있다.〈미슐랭 가이드〉 서울판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모호한 풍문에 불과하던 소문이 최근 기정사실에 가깝도록 구체화됐다. 과연 서울은 감당할 준비가 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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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에서 몇 년 공들여 올해 내는 걸로 계약했다던데요?” “2011년에 그린 가이드(일반적으로 <미슐랭 가이드>(이하 <미슐랭>)라 불리는 레스토랑·호텔 평가서가 통칭 ‘레드 가이드’이고, 국가별 관광. 여행 정보를 담은 <미슐랭>의 여행 가이드북은 ‘그린 가이드’라 불린다) 한국판이 나왔잖아요. 그때부터 레드 가이드도 이미 준비하고 있었대요.” “모 호텔은 오랜 숙원 사업으로 대비하고 있다가 올해 결정돼 막바지 준비까지 얼마 안 남았대요.” “이미 작년 6월에 인스펙터들이 한바퀴 쭉 돌았대요. 아! 3월께 한 번 더 돌러 온다고 하던데?” “그런데 서울판만 나오는 게 아니래요. 상하이랑 묶어서 낸다던데?”

<미슐랭> 서울판에 대해 각기 다른 소스를 통해 들려온 소문은 하나같이 구체적이었다. 게다가 제각각 다 그럴듯하기까지. 한술 더 떠 한 경제 일간지는 작년 연말 <미슐랭> 서울판 발간을 기정사실화하는 기사까지 냈다. 굽이굽이 흘러나오는 소문과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보도까지 버무러져 지금 서울 미식계가 술렁이고 있다.

하지만 흘러나온 소문 중 확인된 것은 전혀 없었다. 공식 발표도 아닌 소문 정도에 도시 전체의 미식계가 요동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가진 정통성과 권위의 힘이다. 아무튼 이제 116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미식 가이드니까. 나아가 <미슐랭>이 가진 그 불가침적인 힘의 요체가 무엇인가 하면, 끝없는 비밀주의다. 평가 방식 자체가 태생부터 비밀스럽다. 최소 10년 이상 레스토랑, 호텔 업계에 종사했거나 그에 준하는 풍부한 지식, 경험과 자격을 가진 이들을 선발해 6개월 이상 교육하고 실습 기간까지 거치게 해 구성한 것이 <미슐랭> 평가원(‘Inspector’라고 한다)들이다. 평가원들은 부모는 물론 다른 평가원에게도 신분을 숨길 정도로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한다. 다섯 개의 평가 기준은 지극히 간단하고 정석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최종 결과물의 수준(Quality of products), 맛의 완성도와 조리의 완벽성(Mastery of flavor and cooking), 음식의 창조적인 개성(The ‘personality’ of the cuisine), 가격에 합당한 가치(The value for the money), 언제 방문해도 한결같은 만족도(The Consistency between visits).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다가 2스타를 받자 상심해 자살했다는 요리사의 일화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리고 전 세계 미식계에서 분명 존재하는 <미슐랭>의 보수성에 대한 비판(특히 미국에서)과 공정성에 대한 모함(특히 일본에서)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미슐랭>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시작은 여행을 고무시키는 목적이었지만 현재는 그 도시의 미식 자산을 검증하는 척도다. 20세기까지는 유럽권에 치중하다가 2005년 뉴욕, 2007년 도쿄(현재 도쿄, 요코하마, 가마쿠라판과 오사카, 교토, 고베판), 2009년 홍콩, 마카오판 등 유럽 밖 미식 도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몇몇 도시가 추가되었지만 2016년 싱가포르판이 이제야 나온다. 싱가포르는 지난 10년 사이 강력한 경제적 허브로 부상하며 구매력 있는 전 세계인을 불러 모았다. 그에 따라 미식 자산도 급격히 발달했다. 따라서 <미슐랭> 싱가포르판은 뒤늦게 나온 셈이다.

원래 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꼽히는 곳이 상하이와 방콕이었다. 다른 레스토랑 랭킹, 평가서나 매체에서는 이미 상하이와 방콕에 대한 검증을 마쳤다. 서울이 다음 기착지로 꼽히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다. 다만 한식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최근 몇 년 사이의 발효 음식 트렌드), 국내에서도 음식 산업이 급팽창하며 단숨에 서울이 후보지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 몇몇 발언과 소문을 통해 추측되는 바대로, 정부 관련 기관의 간절한 노력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글쎄? <미슐랭> 서울판이 나온다면 여러모로 좋기야 할 것이다. 우선 음식 관광을 위해 서울을 찾는 이가 늘어날 것이며, 서울 미식 신을 발전시킨 뛰어난 요리사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도 될 것이다. <미슐랭>의 평가 결과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동안 서울의 미식 문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결정적 당근과 채찍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서울이 <미슐랭>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해외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요리사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는 랩24의 오너 셰프 에드워드 권은 이렇게 말한다. “음식만으로 보면 서울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봐요. 이미 미슐랭 별을 가진 친구 요리사들도 그렇게 평가하고 있고요. 그런데 <미슐랭>이 보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에요. 음식은 물론이고 서비스, 기물과 인테리어 등 업장의 공기를 결정하는 모든 요소를 평가하죠.” 많은 이들이 말하듯, 한식 혹은 모던 코리안은 음식 자체로 완성도를 이룩했고, 그래서 <미슐랭>이 가장 먼저 주목할 분야 또한 한식임은 지당한 사실이다.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좋은 대목이다. 하지만 그 밖의 부분에서는 서울의 미식 문화라는 것이, 여전히 ‘개발도상’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혹시 서울에서 30~50년 일한 소믈리에나 서비스 인력을 본 적이 있는가? “스쳐 지나가는 한때의 직업으로 적당히 웃어주며 음식 나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직원들”(익명을 요구한 요리사의 독한 말), 그 직원들에게 아르바이트 수준 이상의 임금을 주고, 경력에 따른 임금 인상, 즉 미래까지 보장해주지 못하는 오너들. 그리고 그 직원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며 보이는 것 이상으로 섬세한 전문성을 띠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손님은 왕이라며 갑질부터 하려는 소비자. 그 소비자의 갑질 중 가장 문제적인 행태인 예약 부도. 2시간짜리 디너 코스에 와인 한 잔 곁들이지 않고 물만 들이켜다가 2차로는 치맥을 먹으러 가는 괴상한 음식, 음주 문화. 임대료 인상에 떠밀려 2년을 채 넘기지 못하는 무수한 식당과, 창의적이긴커녕 해외의 유명한 레스토랑 메뉴를 대놓고, 혹은 무의식중에 베끼는 일부 요리사. 다 각각의 문제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한 가지 문제로 귀결된다. 음식 문화의 미성숙이다. 음식 문화가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슐랭>과 무슨 상관이냐고? 기본적인 음식 문화를 갖추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파인’다이닝은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슐랭>의 별이 머무르는 곳은 음식뿐 아니라 경험으로서 전체적인 완결성을 가진 레스토랑에 있다. 다이닝 경험의 구성 요소 중 덜 발달한 저 모든 것이 치명적 약점으로 결과에 반영된다는 말이다.

과연 서울은 최고 권위의 미식 평가서에 민낯을 드러낼 자신이 있는가? 미슐랭 3스타가 주어지는 레스토랑은 ‘그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여행을 계획할 수 있는 특출한 곳(exceptional cuisine and worth a special journey)’, 2스타는 ‘훌륭한 음식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가도 좋은 곳(excellent cooking and worth a detour)’, 1스타는 ‘그 분야에서 뛰어난 레스토랑(a very good restaurants in its category)’이다. 서울은 준비가 되었나?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미슐랭>은 아직 한국 진출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가 되었든 내년이 되었든 <미슐랭> 서울판은 나온다. 분명 서울은 기본적인 자격을 이미 갖췄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음식 문화의 기본적 내실도 무럭무럭 키우는 일이다. 마치 미쉐린타이어의 마스코트인 비벤덤처럼 크고 탄탄하게!

    이해림(프리랜스 에디터)
    에디터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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