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변신을 위한 앞머리 활용법
1970년대 세련미를 담은 매혹적인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무심함이 깃든 스타일까지. 룩에 우아함을 더하거나 기존 이미지를 타파하는 ‘앞머리’ 활용법.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헤어 커트를 받았다. 한때 인디 슬리즈 룩에 심취한 내 청춘을 상징하던 길고 지저분한 머리카락이 프로페셔널한 새로운 모습과는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 머리는 어깨 위로 내려온 적이 없었다. 일주일 내내 벌집처럼 풍성한 머리 볼륨을 유지하는 비하이브(Beehive) 스타일을 위해 백콤을 넣거나(아무튼 에이미 와인하우스 세대였으니까) 수차례의 탈색으로 머리칼이 일정 길이 이상 자라지 못하고 부서지거나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셀프케어라는 개념도 내게는 다소 생소한 것이었고, 머리는 늘 그저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나의 내면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25세가 되던 해,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맞이했다. 패션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하며 어린 시절의 무질서한 에너지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가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 시작을 함께한 곳은 달스턴에 위치한 블리치(Bleach) 살롱이었다. 사이키델릭 록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였던 친구 체리시는 완벽하게 정돈된 블런트 보브 커트에 앞머리를 내렸는데, 강렬한 고딕 스타일이 쿨함 그 자체였다. 펑크의 아이콘 코지 파니 투티(Cosey Fanni Tutti)와 리디아 런치(Lydia Lunch)의 이미지에 취해 있던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내 머리가 심한 곱슬에 소가 핥은 것처럼 한 방향으로 뻗쳐 자라는 모발이란 사실은 무시했다. 깔끔한 앞머리를 유지하는 게 끝나지 않는 고난일 것이 뻔했지만 머릿속에 그려둔 실루엣과 여성상이 있었기에 스타일 변화를 강행했다.
“지난 10년간 앞머리는 여러 스타일로 변신하는 수단으로서 헤어스타일을 얘기할 때 빠뜨리기 힘들죠.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연출할 수 있거든요.” 헤어 스타일리스트 루크 허시슨(Luke Hersheson)이 말했다. 그는 커리어 내내 수천 가지 앞머리 스타일을 선보였다. 본인의 이름을 딴 런던의 살롱 허시슨스(Hershesons)의 창립자다. 그의 살롱에서 이미 수백 시간을 보냈기에 제2의 집처럼 느껴진다. “앞머리로 정말 미묘한 차이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어요. 사람들은 앞머리 하나로 인상이나 캐릭터가 얼마나 바뀌는지 잘 모르죠.” 앞머리를 고수해온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정확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생겼다.
“앞머리만으로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이번 시즌 베르사체와 사카이 컬렉션에서 앞머리 트렌드를 다시 불러온 주인공인 혁신적인 헤어 스타일리스트 귀도 팔라우(Guido Palau)가 말했다. 그는 베르사체에선 1970년대 세련미를 담은 매혹적인 스타일을, 사카이에선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무심함이 깃든 스타일을 선보였다. “평범한 커트도 앞머리를 내리면 개성 있게 보여요. 이미 많은 팝 스타에게서 볼 수 있죠. 현대적인 핀업걸 스타일의 사브리나 카펜터는 섹시하고 레트로한 느낌을 줘요. 테일러 스위프트의 뱅은 훨씬 더 일상적이고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스타일이죠. 채플 론(Chappell Roan)은 더 짧고 에지 있는 중세 시대 느낌의 앞머리를 선보이고 있고요. 모두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앞머리 스타일링을 했죠.”
나는 오랫동안 여성이 뷰티를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는 방법에 매료되어왔다. 제품이나 시술을 좋아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얻는 자기 해방감이 있기 때문이다. “뷰티는 결코 겉모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에요.” 리디아 런치가 매거진 뷰티 칼럼을 위한 인터뷰 중 내게 말했다. (내게 영감을 준 사람에게 영감에 대해 질문하며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해보길!)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세요. 거기엔 비용도 전혀 들지 않죠. 립스틱과 염색약 하나씩···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도 않아요. 목소리, 머리, 외모 등 모든 것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죠.” 돌이켜보면 내 변화의 핵심은 앞머리인 셈이다.
첫 앞머리는 지금보다 길었다. 머리 길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앞머리 길이도 눈을 찌르는 길이에서 위로 올라갔다. 귀도는 이걸 입문자적 접근법이라 설명했다. 나는 거의 어깨 길이의 스타일에서 1920년대 영화 스타 클라라 바우(Clara Bow)처럼 짧은 앞머리의 보브 커트로 바뀌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길이에서 머리를 관리하는 건 그야말로 악몽에 가까운 일이었다. 눈썹에 앞머리가 닿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코로나 때와 같은 심각한 상황에서는 혼자 다듬어보기도 했지만 능숙하지 않아 결국엔 놀라울 정도로 미용실에 자주 가게 되었다(3주에 한 번씩 잡지를 잔뜩 들고서 말이다). 밀리미터의 작은 차이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앞머리가 딱 눈썹에 닿는 길이일 때와 눈썹 1~2cm 위일 때는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지죠.” 루크는 공감하며 손이 훨씬 덜 가는 스타일을 알려주었다. 영화배우 겸 모델 미아 고스(Mia Goth)처럼 옆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며 얼굴형을 부드럽게 감싸는 앞머리나 싱어송라이터 스티비 닉스(Stevie Nicks)처럼 질감이 살아 있는 곱슬머리를 연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무심한 듯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룩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참고로 나는 드라이를 잘한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원하는 스타일로 드라이하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 헤어 제품을 바르거나 헤어스프레이를 뿌리면 머리의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호텔에 갈 때마다 챙겨오는 평범한 플라스틱 빗과 기본 롤 빗이면 된다. 이 롤 빗은 고급 빗이 있다는 걸 알기도 전, 그런 빗을 살 여유가 없었을 때 구매한 제품이다. 패션 위크 때 비가 오고 아침부터 자정까지 여러 쇼를 오갈 때면 차에 헤어스프레이 대신 무선 GHD 판 고데기를 두고 다녔다. (보조 배터리로 충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배터리 걱정이 없었다.) 화장은 고치지 않았지만 앞머리는 늘 완벽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 앞머리는 패션 위크만 견딘 것이 아니다. 2023년 여름, 연휴 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팔이 부러져 9개월 동안 오른손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완벽한 스타일링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구글에서 찾은 장애인용 헤어드라이어 거치대와 다이슨 에어랩을 구매했다. 외딴곳에 있는 시칠리아 병원에 입원한 첫날 밤에 휴대폰으로 이 두 제품을 구입한 기억이 생생하다. 마취로 정신은 몽롱한 상태였고, 산산이 부서진 상완골은 몸에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다. 손은 가슴 위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내 마음대로 머리를 스타일링할 수 없다는 건 물론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런던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집에 찾아와 머리를 감겨주었지만 머리 말리기만큼은 내가 했다. 매끈하게 스타일링된 보브 커트 머리가 주는 차분한 단정함이 좋았기 때문이다. 차분한 스타일링이 오래가지 않더라도 첫인상만큼은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대로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팔까지 잃은 마당에 내 스타일링에 대한 통제력까지 잃을 순 없었다.
“헤어 스타일링에 꽤 까다로운 편이에요. 머리가 잘 안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고 전체적인 룩도, 사진도 망치게 되죠.” 마이크로 뱅을 유행시킨 팔로마 엘세서가 말했다. 팔로마의 아주 짧은 앞머리는 오드리 헵번의 우아함과 사회 관습에 대항하던 라이엇 걸(Riot Grrrl) 무브먼트의 반항적인 면을 모두 보여주었다. “앞머리로 룩에 우아함을 더하거나 기존 이미지를 깰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로워요. 하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보다 개성을 더 뚜렷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앞머리를 활용하게 되더라고요. 앞머리가 ‘나’라는 캐릭터에 느낌표를 찍어주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이게 바로 완벽한 앞머리 활용법이 아닐까? 앞머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머리를 통해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거나 삶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물론 내 인생에서 몇백 시간을 앗아갔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개성을 한층 강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머리를 관리하며 꾸준한 셀프케어 루틴도 생겼다. “누구든 자신에게 어울리는 앞머리가 있죠.” 루크가 말했다. 2025년에는 변화를 원하는 모두가 앞머리를 시도해보길 적극 권한다. “늘 ‘앞머리는 절대 안 내릴 거야’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죠. 앞머리를 내리든 안 내리든 결국 중요한 건 스타일을 연출하는 자신감이니까요.” 귀도가 말했다. 그리고 내게는 나쁜 소식이지만, 앞머리는 어쨌든 다시 자라니까! 그러니 이번 시즌에는 당신을 헤어 숍에서 만날 수 있길. (VK)
- 뷰티 디렉터
- 이주현
- 글
- Olivia Singer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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