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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도 않는 책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면? 당신은 ‘츤도쿠’

2025.04.23

읽지도 않는 책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면? 당신은 ‘츤도쿠’

츤도쿠: 책을 쌓아두는 아름다움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10월의 양귀비(Amapolas en Octubre)’라는 책방을 운영하는 사서이자 작가 라우라 리뇬 시레라(Laura Riñón Sirera)는 집 안 곳곳에 책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읽지도 않고 산처럼 쌓여 있는 책이 곧 독서에 대한 애착을 나타낸다고 설명하죠. 만약 라우라의 말처럼 책상부터 침대 옆 탁자, 소파까지 전부 책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츤도쿠(Tsundoku, 積ん読)’가 되어버린 걸지도 모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집. Getty Images

사회심리학 및 정신의학 전문가 발레리아 사바테르(Valeria Sabater)는 츤도쿠의 어원을 알기 위해선 일본 메이지 시대(1868~1912)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며 일본인이 다양한 책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서구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그들은 읽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죠. 물론 책을 수집하던 사람들이 메이지 시대부터 등장한 건 아닙니다. 원조 츤도쿠 버지니아 울프는 개인 서재에 약 4,000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움베르토 에코 역시 많은 책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고요.

사바테르는 책을 쌓아두는 일이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이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온라인 심리 상담 서비스 우노브라보(Unobravo) 소속 심리학자 마테오 마수카토(Matteo Mazzucato)는 진정한 독서 애호가라면 집 전체를 책으로 뒤덮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점, SNS는 물론 주위 친구들로부터 받는 ‘책 추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죠. “츤도쿠란, 쌓는다는 뜻의 ‘츠무(積む)’에서 파생된 ‘츤(積)’과 읽는다는 뜻의 ‘도쿠(読)’를 합친 단어입니다. 당시에는 사회적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지금은 습관을 뜻하죠.” 그는 츤도쿠의 어원을 설명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단어의 용도가 바뀐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사바테르는 츤도쿠들이 ‘로맨틱한 사랑꾼’이라고 말합니다. 책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쌓아둔 책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물론 아직도 발견할 세계가 무한히 남아 있음에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죠. “독서는 감정적인 행위죠. 결국 책을 구매하는 일과 쌓아두는 일 뒤에는 독서를 향한 열망이 숨어 있습니다.” 그녀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독서와 관련된 좋은 기억이 떠오르며 뇌를 자극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책을 쌓아두는 습관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사바테르는 많은 책이 결국 한구석에 방치된 채 잊히곤 한다고 비판했는데요. 그녀는 SNS의 보편화와 함께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공유하려는 강박이 커지는 문제를 짚었습니다. 사바테르는 이런 사람들을 ‘전시형 독자(Shop Window Readers)’라고 부르며, 그들이 서재를 ‘멋있어 보이는 책’으로 채우고 책을 사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만 급급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전시형 독자들은 “책장을 넘길 때 풍기는 냄새를 즐기지도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진정한 츤도쿠라고 할 수 없다”고도 말했죠.

강박적인 수집증

Getty Images

누구나 한두 번쯤은 충동적으로 책을 사본 적 있을 겁니다. 책을 사는 행위가 일시적인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다 보니, 감정적인 허기를 달래는 임시 처방처럼 활용하는 거죠. 사바테르는 읽지도 않은 채 쌓여 있는 책이 어쩌면 우리의 심리 상태를 반영할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마수카토는 포모(FOMO, 뭔가를 놓치거나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가치 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불안감) 현상 탓에 책을 강박적으로 수집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사바테르와 마수카토는 지나치게 많은 책을 수집하는 습관은 심리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점점 쌓여가는 책 더미를 보며, ‘내가 이렇게 시간 관리를 못했나’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책을 읽지 못할 거라는 걱정도 생길 수 있고요. 마수카토는 읽지 않은 책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할 일’ 혹은 ‘이루지 못한 목표’를 떠올릴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행복한 츤도쿠 되기

책 더미를 보며 불안이나 압박이 아니라 행복과 설렘을 느끼도록 도와줄 ‘질문 리스트’입니다. 새 책을 사기 전, 자신에게 꼭 이 질문을 던져보세요!

#1. 나는 이 책에 정말 관심이 있나? 불안감 때문에 혹은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건 아닐까?
#2. 이 책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3. 나는 이 책을 언제 읽을까?
#4. 읽어야 할 책이 몇 권이나 남아 있나?
#5. 최근 산 책을 읽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
#6. 내 서재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나?

사바테르는 구매 목록과 독서 목록을 작성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작은 노트에 최근 구매한 책, 읽은 책 목록을 정리하는 거죠. 지난달에 구매한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면? 이달에는 책 사기를 멈추고 방치해둔 책을 먼저 읽는 겁니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같은 책을 읽는 것도 동기부여에 도움을 줄 수 있고요. 마수카토는 건강한 독서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했는데요. 오롯이 독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에서 매일 일정 시간 책을 읽는 등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겁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집 안이 온통 책 더미로 가득 찼다면, 먼저 왜 책 사는 걸 멈출 수 없는지부터 돌아보세요.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독서에 대한 (건강한) 집착을 갖고 진정한 츤도쿠로 거듭나는 길입니다.

María Quiles
사진
Getty Images
출처
www.vogu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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