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심리 테스트 같은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천국보다 아름다운>(JTBC)의 해숙(김혜자)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 그는 생전에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일수업을 하면서 욕을 푸지게 먹은 터라 자기가 왜 천국에 왔는지 얼떨떨하다.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남편을 수십 년간 수발한 점, 도박쟁이 아빠에게 학대당하던 영애(이정은)를 식솔로 거둔 점 등이 참작된 듯하다. 그런데 해숙의 천국은 이상하다.

천국에서는 자기가 선택한 나이대의 모습으로 계속 살아야 한다기에 잠시 고민하던 해숙은 80대를 선택한다. 남편이 죽기 전에 “우리 마누라는 지금이 제일 예뻐요”라고 했기 때문이다. 정작 천국에서 만난 남편 낙준은 젊고 섹시한 손석구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해숙은 남편과 모자지간처럼 보이는 데 부아가 치밀고, 어리석은 선택을 해버린 자신이 밉다. 그래도 명색이 천국인데 해숙의 나이 든 몸은 예전 그대로 쉬 피로해진다. 낙준은 천국주민센터로 출퇴근을 하고, 주민센터에는 지위고하와 진상 민원인이 있고, 천국 주민들은 현실보다 개량된 버전의 주택에 살면서 샤워도 하고 오리엔테이션도 받는다. 나이를 바꿔달라는 해숙의 청원은 거절당한다. 해숙의 80대 외양 때문에 ‘왜 저걸 택했지?’라는 식의 미심쩍은 시선이 따르고, 낙준을 따르는 솜이(한지민)가 나타나자 해숙이 위기감을 느끼는 등 에이지즘과 사랑의 불안정성도 여전하다. 저런 게 뭔 천국이냐 싶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작가와 감독의 메시지가 뭔지 궁금해진다. 여기가 천국이라 불리는 건 해숙이 끝내 모종의 교훈에 도달하기 때문일까, 혹은 제목과 대사에서 반복되는 ‘천국’이라는 표현 자체가 일종의 트릭인 걸까.

이 천국이 이상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게 뭘까라는 궁금증은 제작진을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김석윤 감독은 <눈이 부시게>, <나의 해방일지> 등을 연출했다. 이남규, 김수진 작가도 <눈이 부시게>를 함께 작업했다. 이남규 작가는 최근 넷플릭스 힐링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참여했다. 모두 인간성에 대한 애정과 통찰, 깊은 위로가 담긴 작품들이다.
첫 주 에피소드에서는 아직 이 드라마의 주제가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도, 이 드라마는 자꾸만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각자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해숙과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당신은 몇 살 때의 모습을 택하겠는가, 즉 ‘당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까운 순간은 언제였는가’라는 질문이 그 첫 번째다.

2화에서 해숙이 남편 낙준을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여기가 왜 낙준의 천국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40년 동안 병상에 누워 지내면서 다시 달릴 날을 꿈꾸었다.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 아내에게 좋은 집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딱 그가 현실에서 꿈꾸었을 법한 일들이 천국에서 구현되었다. 왜 이 천국은 낙준에게만 좋고 해숙에게는 짜증 날까 생각해보면, 살아생전 해숙이 바란 전부가 낙준의 행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안타깝지만 해숙이 그린 천국의 모습이 맞다. 천국이 온전히 나에게만 좋은 세계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의 공존이 우선이고 그 공존을 위해 서로의 욕구를 타협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2화에서는 천국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들의 모습이 제시되기도 한다. 천국 주민센터에서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당연히 현실 세계의 개들처럼 귀엽지 않다. ‘이게 천국 맞아?’라는 의문이 다시 한번 든다. 하지만 주인을 만난 개들은 이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왜 천국의 개들이 인간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불편하다가, 그것이 천국의 보상이 아니라 인간에게 길들거나 쫓기며 살아온 동물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 혹은 그들의 바람이었을 수 있겠다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그 와중에 해숙의 고양이 쏘냐가 도도하게 구는 모습은 고양이 반려인들의 심금을 울릴 만하다. 이런 식의 독특한 상상력이 얼마나 더 펼쳐질까 궁금해서 작품을 주목하게 된다.

이런 초반 에피소드를 보면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천국’은 종교적 상벌의 공간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생전 소망을 반영하는 가상 세계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사후 세계가 아니라 현실, 죽음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드라마 초반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김혜자와 손석구의 앙상블이다. 이성을 향한 앙큼한 사랑과 질투를 연기하는 김혜자, 능글맞게 거기 보조를 맞추는 손석구 모두 새롭다. 수십 년 함께 산 부부라는 설정이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의 연기는 이미 성공이다.


동화처럼 귀엽고 만만해 보이지만 곳곳에 엉뚱한 상상력, 흥미로운 사색거리, 익숙한 배우들의 새 얼굴을 담고 있어서,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섣부른 평가 대신 응원을 보내고 싶은 작품이다. 온순한 표정으로 비범한 목소리를 내는, 흔치 않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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