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요즘 윤성호의 촉이 수상하다

2016.03.16

요즘 윤성호의 촉이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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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드라마의 기획과 연출, TV 영화 프로그램 MC 그리고 (한때) 영화감독. 요즘 윤성호의 촉이 수상하다. 화제가 되는 것에 죄다 크레딧을 걸치고 있고, 근래 뜨는 배우들은 대부분 데뷔작이 이 남자 영화다. 누구보다 바쁜 남자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생각할까. ‘골목 상권’ 콘텐츠 창작의 이런저런 이야기.

#1 요즘 촉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다름 아니라, 함께 일하던 배우 또는 내가 일찍이 협업을 청하던 연출자, 때로는 헤드 스태프이던 분들의 상당수가 요새 잘나가거나 점점 더 잘나가게 될 분위기인데, 그런 귀한 동료들과 나의 인연이 대개 그분들이 지금보다 무명이던 시절, 즉 그분들에 대한 러브콜이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덜하던 시절에 시작됐기 때문인 듯하다. 음, 재능 있는 동료들에 대한 비유를 이런 식으로 하긴 좀 멋없고 죄송하지만, 블루칩이 될 옐로칩들을 미리 알아봤다고나 할까.

#2 그런데 사실 나는 촉이 별로 좋지 않다. 내 촉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거기에 제대로 베팅했겠지. 매니지먼트를 차리든지, 그 인력들을 믿고 일을 더 크게 벌인다든지, 내 작품에 내가 투자한다든지. ‘은근 자랑해놓고 왜 딴소리냐’ ‘나름 괜찮은 카드들을 미리알고 꽃놀이를 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글쎄. 그게 정말 자신의 촉을 믿고 제대로 벌인 게임이었다면, 포기하는 것 또한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나는 이 패에 올인하겠어, 너희들이 쥔 패는 나랑 다른 정도가 아니라 틀렸어!” 정도의 기세를 부렸어야 되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우연찮게도 제 앞을 지나가는 카드들이 참 좋긴 한데, 뭐 여러분들한테도 역시 그만한 카드가 있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그냥 크게 안 노리고 소박하게 먹고 놀고 그러겠습니다’ 정도의 스탠스를 취해왔다고나 할까.

#3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의 게임은 몇 년에 한 번이 아니라 자주 벌여야 살림이 유지된다. 한 프로젝트에 올인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리거나 그냥 그런 지긋한 호흡이 성정에 맞는) 작가님, 감독님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자잘한 프로젝트를 이끌거나 관여하며 지내왔고, 그리하여 얻게 되는 무형의 자산이 바로 이래저래 아직 재능에 비해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창작자 또는 연기자에 대한 DB다.

#4 나는 꼬불꼬불한 시가지에서 직접 운전을 하는 판국이다. 골목 간판들을 모르면 낭패를 보게 된다. 근데 또 이게 고역이면 못한다. 그 간판들을 기억해두는 걸 재미로 생각하는 건 어느 정도 천성인 듯도 하다. 골목의 가게가 핫 플레이스가 되는 걸 예측하는 재미, 옐로칩이 블루칩으로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재미. 그러나 (그렇기에) 그 옐로칩들이 블루칩이 되어 거둬들이는 하이 리턴의 수확은 나의 몫과는 상관없는 게임.

#5 나는 눈치를 많이 본다. 눈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끼는 사람들을 존중하자는 당위도 있지만, 그 좋은 인력들의 기분을 거스르지 말자는 실용의 차원도 있다. 후자의 차원에서 눈치는 일종의 촉이다. 적어도 촉을 키우는 경로는 될 거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 때 눈치를 보는가. 특정 공간에서 제일 약한 사람일 때다. 또는 일시적으로 발언권이나 물리력에서 우세를 점했다 하더라도 언제라도 그 판도가 바뀔 수 있는 게임을 하고 있을 때다. 그러니까 내 앞날의 안위와 효율을 장담할 수 없을 때 눈치를 보는 거다. 지금 사실상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했다. 내가 이렇게 읽는 사람들 눈치까지 본다.

#6 약자일수록 뭔가 패턴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자신을 꾸미는 스타일로서의 패턴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 언제 어디서 재난이 닥칠지, 자원이 바닥날지, 공생하던 생태계 동료들의 태도가 바뀔지 모르니까… 해 질 무렵 하늘빛을 유심히 살피고, 풀숲이 흔들리는 템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어떤 이슈의 이해 당사자들이 자기 패를 꺼내놓기 전에 보이는 제스처를 기억해놓는다. 가령, 투자와 유통의 갑 중에서 나 같은 보따리장수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분들은 치밀하고 신중한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이 기본 매너는 지키되 의전보다 콘텐츠에 대한 대화를 우선하면… 아하, 이거 뭔가 잘될 징조다! 반대로 의전은 호들갑스럽게 챙겨주면서 정작 콘텐츠에 대해서는 두리뭉실한 덕담으로 넘어가는 갑을 만났다면… 이건 접어야 될 게임이다. 얼른 자리를 뜨는 게 맞다.

#7 한편 젊은 배우들과 자리를 하게 되면, 나를 비롯해 좌중이 상대에게 얼마나 귀를 기울이는지를 어느새 체크하고 있다. 채널에서의 대단한 기회나 개런티를 보장할 수가 없는 나는 이분들과 다 함께할 수 없다. 내가 집중해야 할 한 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인지도의 서열이나 화려한 외모나 동석한 사람들과의 히스토리가 꼭 관건은 아니다. 존재감이라고도, 아우라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일단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품고 있는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연장시킬 줄 아는 분들이 또 있다. 한마디를 해도 우리 귓속에 잘 들어오는 발성! 대화를 주도하지 않으면서도 분기점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화용과 눈빛을 지닌 상황에 대한 독해력! 무엇보다 나 같은 보따리장수와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싶어 하는 갈증(타이밍과 케미!).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이건 영업 비밀로 남겨놓자. 더 중요한 건 좌중이 그/그녀에 대해 느끼는 묘한 호감 또는 관심. 이건 사실 ‘큰 게임’에는 관건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처럼 골목 상권을 우주로 여기는 소심한 이에겐 중요한 이슈다. 중국 시장이 주목할 인재인지, 한류 스타가 될지 어떨지는 내 관심과 능력의 바깥. 그냥 아끼고 좋아하는 청춘들이 분포한 곳(가령 내가 성산동에 사니까 연남동에서 망원동까지?)에서 어울리고 싶은, 그런 분들의 촉에 어찌 보일지, 그 촉에 또 내 촉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련하고도 즐거운 나의 패턴. 그런 나의 패턴이 또 누군가의 촉에 들어갈 수 있기를.

    윤성호
    에디터
    정재혁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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