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셰프 매니지먼트사의 탄생
최현석, 오세득 등 스타 셰프를 주축으로 셰프 매니지먼트사 ‘플레이팅’이 활동을 시작했다. ‘개인플레이’를 종족 특성으로 타고난 요리사들이 모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일어나야 할까?
태초에 길드가 있었다. 문명이 팽창하던 중세 시대 상공업자들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끼리 서로 돕고 우리끼리는 해치지 말자’는 의도로 만든 이익집단이다. 청담동에는 ‘그랜드테이블협회’가 있었다. 청담동이 활황이던 2005년, 레스토랑 오너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지역 상인회’다. 길드와 마찬가지로 서로 돕고, 서로 해치지 않는 이익집단. 이 협회엔 까사델비노, 미 피아체, 시안, 타니, 일마레, 빠진, 시즌스, 그릴에이치 등 청담동 간판스타였던 30여 레스토랑이 소속돼있었다.
이 현대적 길드는 간단히 축약하기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냈다. 그랜드테이블협회는 뉴욕의 ‘레스토랑 위크’를 벤치마킹해 ‘그랜드 테이블 레스토랑 위크’를 만들었다. 평소 가격 장벽에 가로막혀 다이닝 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고객에게 반값에 메뉴를 제공하는 이벤트였다. 오너들이 모였기에 손해를 감수하고 같은 음식을 저렴하게 맛 보이고, 품앗이로 각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레스토랑&바 29+1>을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제작해 신규 다이너들의 가이드 역할도 해냈다(SK텔레콤과 씨티은행이 스폰서로 나섰다). 협회에서 와인 공동 구매(공동 구매로 가장 득을 보는 품목!)도 진행하고, 식재료 공동 구매도 구상했다. 동시에 자선 행사를 열어 조성한 기금으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돕기도 했다. 오손도손 동네 사람끼리 모여 ‘잘살아보세’를 외친 아기자기한 모임이었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었지만 2008년 경기가 급락하며 생겨날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흐지부지 활동을 멈췄다.
까사델비노 은광표 대표는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엔 청담동뿐 아니라 레스토랑 업계에 오너 셰프가 거의 없었어요. 대부분 레스토랑 안에 오너와 셰프가 있었죠. 그랜드테이블협회는 오히려 그래서 더 생겨나기 쉬운 협회였죠. 모임, 협회라는 건 기본적으로 모여서 얻는 이득이 본질이에요. 그랜드테이블협회는 레스토랑 오너들의 마케팅 풀이라는 이득이 있었죠. 셰프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주방에서 바쁜 사람들이라 모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특히나 오너 셰프가 아니라면 다른 레스토랑 요리사들과 교류할 물리적 여유 자체가 없죠.”
시대가 바뀌었다. 그 사이에 다이닝 신은 내적 성장기를 거쳤고, 현대카드 ‘고메위크, ‘서울 고메’, ‘블루리본 어워드, ‘코릿’ 같은 행사가 생기며 레스토랑 업계의 풍경에 새로운 디테일을 첨가했고,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유학파 요리사들과 젊은 오너 셰프들이 약진을 거듭했다. 그리고 풍경 변화 중 가장 급격하고도 주요한 것으로 2015년의 ‘쿡방’ 열풍이 있었다. ‘셰프테이너’, ‘쇼 셰프’라 불리는 대중의 미식 전도사들은 미식의 풍경을 많이도 바꿔놓았다. 마치 TV에 출연한 고든 램지가 벌건 얼굴로 욕설을 쏟아내고(미국에서) 제이미 올리버가 요리 재료를 집어 던지며 ‘러스틱’한 15분 속성 레시피를 읊은(영국에서) 이후 일어난 변화처럼.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에 마음을 열었고, 급기야 그들이 마음에 품은 스타의 레스토랑에 가서 돈을 쓰기 시작했다. 다이닝 시장엔 새로운 고객층이 유입됐다.
다이닝 시장의 성공한 상공업자, 그러니까 스타 셰프들이 얼마 전 서로 돕고 서로 해치지않는 ‘셰프 길드’를 만들었다. 최현석(엘본 더 테이블), 오세득(줄라이), 신동민(슈밍화미코), 남성렬(테이블스타), 김소봉(아자쓰), 장명식(라미띠에) 등이다. 그런데 좀 특수하다. 일단 쇼 셰프들의 방송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매니지먼트 사업 분야가 있다. 언뜻 보면 쇼 셰프들의 연예 매니지먼트 같아 보이는 플레이팅의 김진표 대표 말에 따르면 매니지먼트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사업 분야”다. 이미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요리사들이 다수이고, 그들이 방송에 나가기까지 필요한 헤어 메이크업과 스타일링부터 이동 차량, 계약서, 섭외 의뢰에 대한 응대와 조율 등 수많은 ‘자질구레하고’ 감당이 안 되는 일을 대신해준다. 이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 할 것이었다면 굳이 플레이팅이 생길 이유는 없었다. 훨씬 더 많은 노하우를 가진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더 잘할 일이다.
앞서 협회라는 건 기본적으로 모여서 얻는 이득이 본질이라고 했다. 플레이팅이 추구하는 ‘이득’은 다른 데 있다. “얼마 전엔 플레이팅이 한 IT업체와 손잡고 ‘노쇼 방지 캠페인’을 펼쳤어요. ‘노쇼’는 그간 요리사들을 가장 괴롭혀온 문제인데 전에는 목소리 낼 기회가 없었고, 낸다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젠 ‘최현석이 노쇼 하지 말자고 한다’로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됐죠. 오세득 셰프는 전부터 교도소 교화 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방송 출연 전에는 하고 싶어도 할 기회가 없었죠. 그런데 인지도가 생기니까 이제 교도소에서 부탁해요.” 요리사는 그간 인식의 음영 지역에 있던 전문직이다. 마땅한 존중을 받지 못했고, 업계엔 산업으로서의 문화나 기틀이 부족했다. 플레이팅은 더 나아진 인식을 바탕으로 요리사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내는 확성기 역할부터 시작했다. 제이미 올리버가 아무리 실력 있는 요리사라 한들, TV를 통해 대중의 스타 자리를 갖지 못했다면 학교 급식 혁명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끝났을 것이다.
플레이팅 소속 요리사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득’은 더 너머에 있다. “특히 최현석 셰프 등 많은 요리사들은 예전부터 후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갓 졸업한 학생들이 주방 현장에 오면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현장의 업무가 너무 유리돼 있다는 갑갑함을 많은 요리사들이 느끼고 있었어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현장의 경험을 가르치고, 당장 자신의 주방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력을 직접 길러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요리사들이 모여 자신들이 꿈꾸는 후배를 직접 길러내는 학원을 준비하고 있어요. 올 상반기 중 개원할 예정이죠.”
물론 ‘자기들끼리’라는 비난은 존재한다. 플레이팅이 배타적이든, 그렇지 않든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하다. 모든 모임과 집단은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돕고, 자기들끼리 서로 해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그건 중세에도 그랬다. 실제 길드는 비조합원들을 배척하며 사회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간단한 일이다. 너는 너, 나는 나. 또 다른 길드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레 균형이 잡힌다. 플레이팅뿐 아니라 더 많은 셰프테이너들, 그리고 방송을 하지 않는 수많은 훌륭한 요리사들에게도 그들만의 길드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덕분에 더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더 많은 스펙트럼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요리 업계엔 아직 더 많은 이득과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니까.
- 글
- 이해림(프리랜스 에디터)
- 에디터
- 조소현
- 일러스트레이터
- 심재원(C.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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