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풍경
지상보다 물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소년은 물살을 가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정지우 감독이 수영 대표팀과 만나 그려 낸 영화는 화려하진 않지만 연약한 소년의 눈부신 꿈이다.
Q 영화의 시작이 궁금하다.
A 본래 수영에 관심은 있었다. 마침 수영에 관한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고 있었는데, 인권위원회에서 영화 제작을 한다기에 시나리오를 들고 달려갔다. 왜 수영이라고 하면 사각의 물이라는 이미지 뿐이지 않나. 소년의 수영을 통해 성장의 일면을 그려보고 싶었다.
Q 왜 하필 4등인가.
A 4등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진 않다. 보통 금, 은, 동 메달을 딴 선수만 주목을 받고, 나머지는 그저 후보 급 취급을 당한다. 그게 좀 싫었고, 1등이 아닌 소년들도 훌륭하다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Q 아역 배우인 유재상 군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A 그 친구는 본래 수영을 하는 소년이다. 연기가 먼저냐 수영이 먼저냐의 질문은 단연 수영이다. 연기는 내가 연출을 통해 표현을 커버할 수 없지만 수영은 단기간에 절대 해낼 수 없다. 일단 오디션으로 어리고 재능 있는 친구들을 훑었고, 그 안에서 더 눈이 가는 아이들을 골라냈다. 꽤 경쟁률 높은 오디션이었다.
Q 영화를 보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게 큰 광수에서 작은 광수로 폭력이 대물림 되는 거였다. 재능의 대물림과 맞물려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A 나도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그 대목이 가장 마음에 아팠다. 하지만 아무도 폭력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면 이런 걸 바라보는 시선은 고정될 거란 생각이 컸던 것 같다. 큰 광수가 걸레자루를 들고 작은 광수를 때리는 장면, 나아가 작은 광수고 또 더 작은 동생을 때리는 신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두 번째 폭력의 원인은 심지어 작은 수경 하나 때문이다. 어디에서 폭력이 기원하는가를 생각할 때 참으로 인간을 초라하게 하는 결론이었다. 계속 얘기하고 생각해야 길이 보이는 법이다. 사람이란 게 그냥 착하기만 하고, 그냥 나쁘기만 하긴 어렵다. 내면과 외면이 서로 엇갈리거나 닮았지만 다르기 마련이다. 속 마음을 단순화 시켜선 안 된다 생각했고, 논리적인 흐름만으로 소년의 마음을 재단할 수 없다고 봤다. 우리는 모순투성이다. 간단한 대화만 해봐도 말의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 있지 않나. 그게 당연한 거다. 인물의 통일성이라는 건 아마도 일종의 환상일지 모른다.
Q 수중 촬영은 아무래도 특수 촬영 기법이 필요했겠다.
A 우리나라에서 경험이 가장 많은 팀이 다리가 되어줬다. 평범한 장면이라면 10분 안에 뚝딱 가능하지만 물 속 장면은 찍을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많더라. 그리고 또 하나는 물과 공중의 경계를 잡는 거다. 카메라가 물속에 있다 올라왔을 때, 혹은 그 반대일 때 생기기 마련의 압력의 차이를 어떻게 담을 수 있냐가 고민이었다. 그리고 물을 사이로 한 경계는 소년과 성년의 구분이기도 하다. 섬세하지만 견고한 그 라인을 잘 연출하고 싶었다. 그 부분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난점이었다.
Q 광수 캐릭터를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나.
A 일종의 측은지심? 재능도 있고, 꿈도 있지만 현실과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눈물이 났다.
Q <은교>의 박해일, 김고은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배우들의 이미지가 겹친다. 주로 하얗고, 도화지 같다. 배우를 고르는 기준이 뭔가.
A 기질의 문제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을 텐데 김고은과 박해일은 그 기질이 잔잔한 호수를 연상시킨다. 이번에 출연한 유재상 군도 고요한 풍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재능과 기질을 두고 고르라면 난 단연 기질이다.
Q 수영장이란 공간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A 물과 가로, 그리고 세로밖에 없는 곳이라 연출을 할 때도 공간 구성에 애를 먹었다. 게다가 레인도 있지 않나. 앞으로만 가라고, 빨리 달리라고 종용하는 느낌을 준다. 예전에 어떤 영화를 봤는데 수천의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 있더라. 그리고 서로에게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 헤엄을 쳤다. 정말 장관이다. 게다가 레인을 거두었을 때의 해방감.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장소라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수영장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한 면으로 제시가 가능한 거 같다.
Q 2012년 <은교> 이후 4년 만이다. 2012년 <해피 엔딩> 이후부터 세면 4년 만이다. 매번 왜 이리 오려 걸렸나.
A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이 좀 있었던 것 같고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이젠 쉬지 않고 달려볼 예정이다.
Q 영화를 보면서 마음의 풍경이 보였다. 인물 심리 묘사를 하며 주안점을 둔 건 어떤 건가.
A 소년의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랐다. 세세한 결 그대로 희망과 꿈, 그리고 무엇보다 성장을 그리고 싶었다. 물의 풍경이란 게 워낙 스펙터클에서 거기에 최대한 기대려 했다. 물거품이 이는 부분이 환상적인 느낌을 주길 바란 것도 있다.
Q 큰 광수는 작은 광수를 극복했다고 생각하나.
A 아프다. 마음 아프지만 아니다. 하지만 상처라는 것이, 트라우마라는 것이 꼭 극복을 해야만 좋은 건 아닐 거다. 이마에 남은 멍 자국, 엉덩이에 난 핏자국이 곧 시간의 축적인 거다.
- 에디터
- 정재혁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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