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여성 건축가’ 이상의 자하 하디드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세상을 뜬 지난 3월 31일, 소속사는 트위터에 살아생전 그녀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올렸다. “‘이 정도면 됐어’라는 말로 절대 나 자신을 안심시키지 않을 겁니다.” 지난 2014년 DDP의 오픈을 맞아 서울에 왔을 때, 한국 언론의 거센 폭격을 맞으면서도 그녀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당신이 건축을 하면서도 괜찮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당신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예요.”

세상을 뜨기 불과 몇 주 전, BBC의 인기 라디오 쇼 에서 출연해 건축가로서의 삼중고를 언급한 바 있다. “우선 저는 여자입니다. 이 점이 많은 사람에게 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또 제가 외국인이라는 것도 문제였어요. 그리고 제가 선보인 평범하지 않은 작업, 이것 역시 가끔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종류의 작품이 아니었죠.”
Heydar Aliyev Center, Baku(Photo by Hufton+Crow)

그녀는 여성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2004년 프리츠커상을 받았고, 건축계 최고의 상으로 불리는 영국 왕립건축가협회에서 스털링상(금메달)을 두 번 수상했다(역시 여성 건축가로서는 처음이다). 남성이 지배적인 건축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중동 출신의 여성(그녀의 고향은 이라크 바그다드다)으로서 성공한 자하 하디드는 디자인 뮤지엄의 <성공한 여성들> 전시에 등장하기도 했고, 작년에는 ‘여성을 위한 여성’ 자선 캠페인을 위해 드비어스와 손잡고 매리 맥카트니의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다.
DDP, Seoul(Photo by Virgile Simon Bertrand)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은 어디에 있든 몽골 고비사막에 착륙한 <스타트렉> 우주선처럼 보였다. 유려하고 대담한 곡선, 혁신적인 공간 해석과 활용, 이를 현실화하는 창의적 기술은 그녀만의 인장이었다. 비트라 소방서는 고전적인 레퍼런스이고, 그 후에도 BMW의 라이프치히 공장, 두바이 오페라 하우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90m 스키 점프장과 이스탄불의 1400에이커 규모의 산업 공간, 런던 올림픽 수영장, MAXXI 이탈리아 로마 현대미술관까지.
Messner Mountain Museum, Corones(Photo by Indexhibit)

<보그> 미국판에 따르면 그녀의 절친한 동료 피터 쿡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파울 클레가 선을 그어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면, 자하는 그 선이 그려진 공간 자체를 끌어내 실제 형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하나의 또 다른 공간으로 도출해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동대문 성곽을 끼고 앉은 DDP를 떠올려보라.
Heydar Aliyev Center, Baku(Photo by Hufton+Crow)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BRUCE WE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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