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고통이 행복에게 말을 거는 대화였다
2년 전 이때, 나는 단편을 마감 중이었다. 온전히 하루가 다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세월호 소식을 알게 되었다. 결국 쓰고 있던 단편은 끝내지 못했다. 몇 달 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20년 넘게 관성처럼 작동하던 기능이 갑자기 멈춰선 것이다. 못다 핀 청춘의 집단적인 죽음을 생중계로 보면서, 역설적으로 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지금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6개월 후에야 진료 가능하다는 인기 절정의 한의원 예약을 취소했고, 몇 개의 장기계획을 내려놓았다. 나는 당장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순간, 2년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발레 학원의 간판이 보였다. 사람의 인생이 한 권의 소설이라면 이 부분은 내게 ‘간절히 원하면’이란 제목이 붙을 것이다. 그 커다란 간판은 내 작업실 바로 맞은편 건물 4층에 있었다.
발레를 배우면 분명히 알게 되는 게 있다. 아름다움엔 고통이 따른다는 것. 발레는 일상생활에서는 전혀라고 해도 될 만큼 쓰지 않는 근육을 고도로 집중해서 써야 하는 운동이다. 쓰지 않는 근육을 쓴다는 의미는 곧 통증을 의미한다. 턴아웃이란 말은 발레를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인데, 온몸의 근육을 안이 아니라 밖으로 강하게 밀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턴인(Turn-In)된 채로 일상생활을 한다. 내 어깨 역시 장시간 글쓰기 노동으로 안쪽으로 말려 있고, 척추 역시 휘어져 바르지 않다. 우리는 대부분 허벅지 앞쪽 근육을 사용해 걷거나 뛴다. 하지만 발레는 허벅지 뒤쪽 근육을 써야 동작이 가능해지는 세계다. 발레의 기본인 발끝으로 서 있는 풀업 상태에서 점프를 하려면 당연히 코어가 잡혀있어야 한다. 코어가 잡혀 있지 않으면 발끝으로 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풀업을 하기 위해서는 복직근, 복사근, 복횡근, 등 근육이 필수다. 발레리나들의 우아한 팔 동작은 대부분 겨드랑이 근육인 전거근에서 나오는데 이것 역시 철저히 안 근육을 사용한다. 쓰지 않아 굳은 근육을 발레의 기본인 턴아웃 동작에 맞추려면 근육과 고관절을 최대한 늘이기 위한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나는 발레를 시작한 후 8개월 동안 심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골반이 열리는 데 1년이 걸렸고, 고관절을 유연하게 만들어 발레에 필요한 기본적인 스트레칭을 완성하는 데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여전히 발레 선생님에게 매번 지적을 받는다.
“박스가 찌그러졌어요. 척추 더 세우고 어깨 내리고, 풀업, 아라베스크 할 때 무릎을 더 펴세요.”
2년 동안 열심히 연습했지만 내 동작은 엉망이다. 점프와 턴이 완벽해지는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발레만의 시간으로 보면 1~2년은 다른 운동의 한두 달에 불과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오른쪽 발목을 두 번 다쳤고, 오른쪽 발가락에 약간의 골절상을 입었다. 계속 오른쪽만 다친다는 것도 심각한 점이다. 이쯤 되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너는 왜 발레를 하는가? 통증을 참아가면서까지 왜 그것을 멈추지 못하는가? 발레리나가 될 만큼 아름다운 토르소를 가진 것도, 아킬레스의 길이나 발등의 ‘고’가 완벽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발레로 대학을 갈 것도 아니고, 뒤늦게 발레단에 입단할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발레에 이토록 열중하는가?
소설가 줌파 라히리는 어느 날 이탈리어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어째서 부모의 언어인 인도 벵골어도, 모국어이며 자신을 작가로 성장시킨 영어도 아닌 이탈리아어였을까? 그녀는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난 이탈리아어로 나 자신을 표현할 단어를 많이 알지 못한다. 일종의 결핍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난 자유롭고 가벼운 느낌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필요에 의해서 글을 쓰지만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느꼈던 기쁨을 다시금 맛보았다. 누구도 읽지 않을 노트에 단어를 적어 넣는 기쁨 말이다. 나는 문장을 다듬지 않고 투박하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그리고 계속 불안한 상태다. 맹목적이지만 진실한 믿음과 함께 나 자신을 이해하고 이해 받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줌파 라히리의 이탈리아어가 내겐 정확히 발레였다. 온 세상이 ‘자기계발적’이며 실용적인 것을 찾아 헤맬 때, 나는 이토록 무용한 세계가 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체지방 지수를 낮추고 근육을 만들거나 다이어트를 위해 발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 때문에 발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아메리카 발레 시어터의 수석 무용수 서희는 인터뷰에서 발레를 비인간적인 무용이라고 정의 내렸다. 발레의 기본인 턴아웃은 직립보행의 인간에게는 그토록 부자연스러운 행위인 것이다. 발끝으로 서서 턴을 하거나 점프하는 것 역시 중력을 무시한 행위다. 발레를 할 때의 나는 이전의 보행 습관과 근육 사용법을 버려야 한다. 내 몸이 오랜 시간 축적한 흔적을 깨끗이 지워 백지상태로 만든 후 새롭게 모든 걸 다시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낯선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새로운 어순과 동사 변형, 발음을 익히며, 온몸으로 낯선 세계와 마주서는 법을 새롭게 익히는 것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동사 변형, 발음, 관용구이므로 매일 틀리고 자주 잊고 멈칫거리다 실수한다.
히브리어의 어떤 동사는 60가지 이상으로 변형된다. 발레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히브리어 계통의 외국어만큼이나 어렵다. 원어민이 아닌 이상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게 불가능한 세계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발레를 배우면 아름다움과 고통에 대한 새로운 문법과 언어를 갖게 된다. 나는 그것을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순서를 알게 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고 발음할 때 온몸으로 감각되는 아름다움의 육체를 온몸이 뭉클해지도록 껴안는 것 말이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뛰어들듯 그렇게 와락 아름다움을 껴안는 것이다.
잠들기 전 책을 읽는 건 20년이 넘은 내 오랜 습관이었다. 요즘엔 발레 동영상을 자주 본다. 발레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가 보내준 <라 바야데르>의 동작을 반복해서 본다. 아름답다는 동사 변형을 매번 새로운 외국어로 다시 익히는 기분이다.
- 글
- 백영옥(소설가)
- 에디터
- 정재혁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 모델
- 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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