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책과 글쓰기
힙스터인가?
그런가? 새로운 걸 좋아하긴 한다. 구글 검색하다가 힙스터에 관련된 신조어나 용어가 등장하면 나도 모르게 그 페이지에 오래 머무른다. 최근에 영화감독이자 예술가인 미란다 줄라이에 관한 연구서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읽었는데 소개 글에 ‘신경증적 힙스터리즘(Neurotic Hipsterism)’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 새로운 용어를 좋아한다.
〈프로듀스 101〉의 예술적 신체부터 흑인 여성을 위한 독립잡지, 알라스 데어 맥렐란, 할리 위어 같은 포토그래퍼와 퍼포먼스 아트까지 관심사가 다양하다. 글도 쓰고 책도 읽어야 하고 강의도 해야 하는데 언제 이 많은 정보를 다 취하나? 잠은 자나?
내가 좀 잡지적 신체 같다. 어릴 때도 하나를 집중해서 보기보다는 여러 개를 펼쳐놓고 동시에 봤다. <게임월드>도 봤다가 <월간 우뢰매>도 봤다가 만화도 봤다. 대학원 전공인 영상 커뮤니케이션학과도 사진, 미술사, 예술사회학 등을 조금씩 공부하는 통합적인 과였다. 수집하는 것도 좋아하고 또 수집한 걸 잘 못 버린다. 집에는 아직도 <상상>이나 <리뷰> 같은 90년대 문화·예술 계간지가 있다. 잠은 좀 잔다. 하루에 5시간 잔다.(웃음)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
지금 쓰는 책 주제로, ‘팝’이라는 감정을 연구해보려고 한다. ‘팝’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미술에서 쓰는 팝과 대중음악을 뜻하는 팝,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이 인문학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쓴 ‘팝’도 있다. 감정사회학를 연구하다 보니 ‘팝’이라는 것 자체를 감정으로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올해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주제는 ‘페미니즘’이다.
섬세함이 가진 오류, 우울의 권력 등 평소 우리가 사회 및 인간관계에서 찝찝함을 느꼈지만 설명하기는 힘들었던 그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그게 감정사회학인가?
감정사회학에서 그런 걸 다루는진 모르겠다. 다만 그런 것이 사회적으로 공유할 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팠던 것 같다. 감정사회학에서는 감정적인 것, 덜 합리적인 것, 충동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학은 보통 개인보다는 구조나 집단에 관심이 많은데 내가 생각하는 감정사회학은 사회에 속박되지 않은 개인을 지킬 수 있는 재료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나는 집단주의에 관심이 없다. 개인주의, 싱글 라이프, 고독한 사람, 방랑하는 사람들, 마음이 맞는 소수의 네트워크 등에 관심이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 말고 직관적이고 충동적인 감정도 우리 삶을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삶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내향성의 사회학’이다.
왜 그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편집자 생활을 몇 년 한 적이 있다. 편집자가 저자나 작가를 만날 때는 섬세함을 발동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입사하기 전에 덜렁거린다는 평가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입사하고 보니 디테일이 좀더 필요한 사람, 직업적인 감정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게 뭐지?’ 싶어서 그 사소하고 섬세한 감정에 대해 연구하게 됐다. 디테일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을 한참 만나고 다니면서 그들의 행동을 수첩에 적고 그랬다.(웃음)
당신이 만든 감정사회학 연구 기관 ‘김샥샥연구소’에는 김샥샥 씨 혼자 있는 건가?
그렇다. 나 혼자다.(웃음) 나 자신을 희화화해서 김샥샥이라고 지었다. 김샥샥이란 이름은 친구들이 나보고 싹싹하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내가 좀 비서형 자아다. 군대에서 의전 일을 했고 영화 틀어주
는 일도 했다. 편집자로 일한 것도 그런 성향의 발로였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아보려고 글을 쓴다.
비평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내 글을 누군가가 읽고 ‘감정적으로 나아지고 있구나, 이제 덜 듬성듬성하게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면 좋겠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예민함을 갖추게 된다고 해야 하나. 내 글을 읽고 감정적으로 품격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 시대의 글쓰기 방식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봤나?
요즘 유난히 에세이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 많이 등장한 것 같다. <브런치>라는 매체나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서 짧든 길든 자기만의 아포리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감각적인 사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에세이적 글쓰기에 능한 인간이 앞으로 더 요구될 것 같다. 그중 내가 특히 관심 있는 건 비평적 에세이다. 자신의 체험이 들어가 있지만 사소한 주제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나 사회의 영역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는 비평이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통해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감정이다”라고 말한 사회운동가 겸 작가 파커 J. 파머가 쓰는 글이 그렇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쓴 리베카 솔닛도 닮고 싶은 비평적 에세이스트다. 할리우드 영화 보면 자기가 쓴 글을 발표하는 장면이 많던데, 그런 환경에서 교육받아 미국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은 건가?(웃음)
오늘 가져온 책은 무엇인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으로 문장 하나하나마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들어 있어 좋아하는 책이다. 감정을 유난히 풍부하게 잘 쓰는 소설가들을 좋아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도 남의 감정을 잘 알아채는 캐릭터가 등장해 좋아하는 소설이다.
책이 없는 미래 사회에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해보자. 어떤 직업으로 살아갈 건가?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처럼 음향 기사를 하고 싶다. 어릴 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이성적인 소리 말고 덥석 던진 말 같은 직관적인 감정의 소리를 녹음해서 아카이브해보고 싶다.
얼마 전에 끝낸 대학원 논문 주제는 뭐였나?
한국 근대문학이 만들어질 때 기독교의 상상력이 어떤 영향을 줬는가에 대한 거였다. 선생님들도 너무 어렵고 낯설다고 했다.(웃음)
왜 그런 어려운 생각을 하게 됐나?
한국의 모더니스트들은 왜 나중에 낭만적으로 전향하는지 궁금했다. 시인들을 신비화하는 이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왜 한국은 문학이 감정 중심적일까도 궁금했다. 근대문학 이전엔 영혼이란 개념이 없었다. 시에 영혼이 있고 정신이 있다는 얘
기를 하게 된 것도 다 기독교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본 거다. 시와 소설을 좋아하지만 작가를 신성화하는 문화는 이해가 안 됐다. 인스타그램에 멋진 말 쓰는 문화도 그렇고. 거기서부터 시작한 것 같다.
근데 김현의 글을 읽고 울었다던데?
맞다.(웃음) 김현의 비평을 보면서 많이 감동했다. 지금도 글이 안 풀릴 때면 그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롤랑 바르트의 비평을 읽으면서는 글을 쓰는 게 참 좋은 일이구나 생각도 했다. 하지만 김현의 경우 ‘공감의 비평’이라고 알려진 한쪽 측면만 계승돼왔다고 생각한다. 문학 이론가로서 뛰어난 사유를 보여준 지성적인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김현을 좋아하지만 김현 역시 신비화된 게 있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스승을 깨면서 시작해야 한다. 최근의 신경숙 사태도 그런 현상의 결과다. 한 작가를 신격화하는 작업이 자본 문제와 결합하다보니 생긴 문제다. 아, 이거 너무 재미없는 얘기인가?(웃음)
신경숙을 옹호하는 평론가들을 ‘문학주의’라고 비판한 글도 썼다. 눈치는 전혀 안 봤나?
이제 그런 눈치는 안 본다. 이건 문학적인 문제라기보다 제도적인 문제다. 어떻게 보면 나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신경쓰이고 눈치 보이는 게 있다면 내가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다.(웃음)
책을 많이 읽어서 평론가가 됐나?
중·고등학교 때 허세가 있어서 어려운 철학책을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읽었다.(웃음) 아버지가 영문과 출신이어서 집에 소설책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읽는 게 버릇이 됐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서 된 것 같진 않다. 대신 꼼꼼하게 읽었다. 그리고 계속 질문했다. 비평은 기본적으로 질문인 것 같다. 어떤 질문을 잘 던지느냐가 중요하고 거기서 독창성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배나 동료가 내 글을 보고 어렵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뭘 그렇게까지 따지고 드냐고. 처음 비평 형식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작품은 무엇이었나? 김훈의 <화장>이었다. 대학교 때 김훈 소설을 좋아해서 학교 문집에 원고를 냈는데 당선이 됐다. 왜냐면 나밖에 안 냈기 때문이다.(웃음) 아무도 비평을 하지 않았고 편집장이 친구였다.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이 시대의 문학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국문과 학생들에게 문학을 강의하고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작품을 안 읽었더라. 그들은 웹툰, 영화, 미드에 더 익숙한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 강의하면 문학은 죽으면 안 된다고 반발한다. 근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특히 한국 문학을 굳이 그렇게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서구 소설이 한국 소설보다 훨씬 뛰어나다. 한국 소설이 창작되는 방식, 등단 제도에 문제가 있다. 단편 위주로 돌아가는 것, 문예창작학과 위주로 작가가 양성되는 점, 시장이 좁다는 점, 한정적인 경험 등등. 보호해야 한다고 자꾸 그 구조를 지키려고 하면 계속 이 단계만 반복될 것 같다. 오히려 내버려두면 신기한 소설, 새로운 소설도 나올 수 있다.
그럼 비평에 관한 한 믿고 있는 문장이 있나?
한국 문학 평론은 작가를 설명하는 데 그치거나 작가를 띄워주기 위한 용도로 변모한 것 같다. 김현이 ‘비평의 방법’이란 글에서 “문학 비평은 문학 비평이 문학 비평으로 남을 수 있게 싸워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비평이 무엇인지 사유할 때가 되었다는 얘기를 그가 1980년에 이미 한 것이다. 그간 비평은 시와 소설, 문학이 무엇인가만 얘기하고 정작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처럼 되묻지 않았다는 거다.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비평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김현의 문장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큰 화두다.
후장사실주의자 그룹에 속해 있다. 창작자인 소설가 친구들로부터 받는 영향도 있나?
그들의 태도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기 작업을 신격화하지 않고 다른 작가들을 대단하게 안 본다. 그들은 내가 <문학과 사회> 편집 동인이라고 해서 내 앞에서 문학과 지성사 욕을 안 하지 않는다. 보통 문학은 좀더 순결하고 고귀한 거라는 인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어서 불합리한 걸 보더라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친구들은 그런 얘길 서슴없이 다 한다. 만나면 일단 남 욕부터 시작해서 문학 얘기, 영화 얘기를 열심히 하니까 좋다. 최근에는 이광수의 <무정>과 <태양의 후예>를 가지고 얘기했다. <태양의 후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남은 보수적인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로 <무정>의 구조와 굉장히 비슷하다.
오늘 가져온 책은 무엇인가?
김혜순 시인의 <피어라 돼지>다. 젊을 때 모던한 시인들이 나이가 들면 서정적으로 변하거나 삶에 대한 진리를 얘기하는 쪽으로 변하기 쉽다. 말 그대로 선생님이 되는 거다. 김혜순 시인은 시에 대해 엄격하며 지금 이 시대에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사유한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해보자. 어떤 직업을 택할 건가?
백수가 되려나? 팟캐스트든 방송이든 문학에 대해 말로 얘기하는 직업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들 좋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있을 테니까.
책 얘길 너무 많이 했다. 좋아하는 영화나 미드가 있나?
길티 플레저 같은 건데 아론 소킨의 <웨스트 윙> 같은 드라마를 좋아한다. 오글거리긴하지만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다가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드라마를 보고 ‘그래 역시 세상은 더러운 거야’ 하기도 한다. 장뤽 고다르와 알랭 레네도 좋아한다. 그리고 <스타워즈>! 어릴 때부터 그 어두운 세계를 좋아했다.
왜 글을 쓰나?
먹고살려고 쓴다. 왜 글을 쓰게 됐는지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있는데 너무 길다.
스스로 왜 삼류 서평가라고 하나? 일류 서평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나?
책에 대해 글을 쓰지만 딱히 평론가는 아니라 서평가로 불리게 됐는데 서평가라는 말 자체가 좀 이상하다. 사람들이 그것도 직업인가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출판사 직원을 만났는데 서평가라고 소개하니까 “그럼 인터넷 서점에 리뷰를 올리는 거예요?”라고 묻더라. 삼류 서평가는 첫 번째 책 <서서비행>이 출간됐을 때 출판사에서 붙인 말이다.
서평가지만 책 자체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를 얘기할 때 굳이 본인의 패딩 구입기를 쓰는 건 무슨 이유에선가?
알라딘 MD로 일하면서 서평을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 것 같다. 요즘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면 책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다 있다. 그래서 나도 재밌고 읽는 사람도 재밌는 글을 쓰자고 생각하게 됐다. 책을 하나의 요리라고 한다면, 기존의 서평은 그걸 맛보고 레시피나 감상을 얘기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흉내 내면서 비슷하게나마 요리를 해보는 거다. 책에대해 말하기 가장 좋은 방식은 책을 똑같이 다시 한 번 쓰는 거다. 내 서평을 읽고 ‘도대체 뭐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두 번째 책 〈난폭한 독서〉의 글은 처음에는 서평처럼 보이지만 나중엔 독자적인 문학의 형태로 느껴진다. 그런 의도가 있었나?
맞다. 어릴 때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란 책을 좋아했다. 콜린 윌슨은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으로 공장을 다니다가 일이 재미없어지자 때려치우고 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아웃사이더>는 그가 실존주의 문학을 읽고 아웃사이더란 테마를 잡아서 여러 작가와 예술가에 대해 평론도 아니고 비평도 아닌 형식으로 쓴 책이다. 그런 식으로 우스운 소설을 쓰고 싶었다. 우스운 소설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쓰지 않은 소설 〈에고 뮤직: 개를 위한 파라다이스〉에 대한 서평도 쓴 적있다. 소설을 쓰고 싶진 않나?
장난이었다. 서평은 항상 책이 먼저 나온 다음에 나온다. 서평을 먼저 쓰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어릴 때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습작 소설을 써본 적도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공모전에서 떨어진 <아내와 마구로>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알라딘을 그만둘 때도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게을러서 안 썼다. 지금은 내가 쓰는 글이 소설과 딱히 구별되지 않는 것 같다. 반(半)소설이다.
직업 특성상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다. 평소 책 읽는 습관은 어떤가?
예전엔 한 번에 한 권을 끝까지 읽었다. 언젠가부터 이것 조금 읽고 저것조금 읽는다. 어떤 책을 읽다가 너무 재밌으면 안 읽고 덮는다. 재밌는 거 알았으니까 다음에 읽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재미없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B급 영화가 나오면 그냥 보다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나오면 다른 채널로 돌리는 것과 같다. 어떤 책을 읽어도 예전만큼 재밌게 못 읽겠다는 생각이 있어 그 순수한 즐거움을 망칠까봐 나중으로 미루는 것 같다.
오늘 가져온 책은 무엇인가?
러시아 작가 세르게이 도나토비치 도블라토프가 쓴 <여행가방>이다. 구소련에서 60~70년대에 활동하다가 국가의 탄압을 받고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 작가가 그 망명 가방을 싸는 내용이다. 로맹 가리의 <내 삶의 의미>도 가져왔다. 인생을 서사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라서 적절한 의미와 유머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서술하고 있다. 전혀 고상하지 않게! 우리가 잘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찰스 부코스키의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래서 그럴까, 유머가 주제나 형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농담은 글쓰기에 대한 당신의 태도인가?
오늘 어느 트위터를 보니 농담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신빙성이 있는 얘긴진 모르겠는데 그런 사람들은 전두엽에 이상이 있다고 한다. 나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웃음) 사실은 농담만큼 진지한 것도 좋아하지만 진지한 글이 좋은 글이 되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다. 내가 쓴 진지한 글을 못 견디겠다. 보통은 시시해지기 마련이니까.
머릿속을 오랫동안 맴도는 문장이 있나?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뇌는 문장이 있다.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는 틈날 때마다 자주 들춰 보는 책이다. 그 책에 나온 “시도하기 위해서 희망할 필요도 없고 지속하기 위해서 성공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하고 싶으면 하고 망하더라도 또 해도 된다는 거다. 글 쓰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지’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걸 써야지’ 같은 희망이 껴들어서 그런 것 같다. 후장사실주의자들과 얼마 전 도쿄로 여행을 갔다. 새벽 1시쯤 취해서 영어로 “I’ll never speak Korean again”이라고 선언을 했다. 그러다가 다 같이 새벽 5시까지 영어를 썼다. 다음 날 일어나서 어젯밤을 생각하니 민망하기도 한데 또 좋은 거다. 술 취해서 한국말을 하면 안 해도 될 말을 하면서 실수를 한다. 영어를 쓰니까 그럴 일이 없는 거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쓴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 출신으로 유치원생 수준의 프랑스어를 구사했다. 문장을 보면 모두 단문이다. 그렇게 지금의 나를 깨고 싶은데 한국어라는 관습 속에 너무 물들어서 생각이 끌려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어가 싫다. 정치인들이 한국어를 쓰기도 하고.
서평가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 인물을 ‘스페셜 땡스 투’로 말해본다면?
소설가로는 오에 겐자부로, 레이먼드 챈들러, 찰스 부코스키, 로베르토 볼라뇨가 있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다. 바르트는 규격에 얽매이지 않는 글쓰기를 한 사람이다. 그 정도로 유명한 지식인이면 자기가 만든 패러다임 안에서 만족할 수 있었을 텐데 기호학으로 시작해서 구조주의 등 계속 영역 바깥으로 넘어간 사람이다. 서평의 아이러니, 비꼼, 블랙 유머는 테리 이글턴으로부터 배웠다. 그의 서평집 <반대자의 초상>을 보면 어려운 책도 나오지만 베컴 자서전처럼 웃긴 이야기도 있다. 근데 너무 거창한 인물들이라 욕을 좀 먹을 것 같다. “네가 뭔데 그러냐, 네가 같은 급이냐?”라고.(웃음)
책이 없는 미래 사회에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해보자. 어떤 직업으로 살아갈 건가?
택시 운전사. 택시를 너무 좋아한다.
평생 한 권의 책만 서평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나?
성경. 얘기할게 무궁무진해서 평생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
- 글
- 나지언(프리랜스 에디터)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KWAK KI GON
- 스타일리스트
- 김미미
- 헤어 & 메이크업
- 장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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