땋은 머리의 신세계
생토노레 거리에 위치한 파리의 멀티숍 꼴레뜨. 지난 패션 위크 때 아주 특별한 팝업 행사가 진행됐다. 이름하여 ‘르 브레이드 바’! ‘머리를 땋는다’는 의미의 브레이드(Braid)에서 짐작했듯 꼴레뜨 매장 한쪽에선 런던의 ‘더 브레이드 바’ 소속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이 꼴레뜨를 방문한 여자들의 머리를 총총 땋아주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때마침 파리에 머물던 모델 겸 배우 이성경도 이곳에 들러 머리를 땋았고, 그녀의 인증샷은 꼴레뜨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 1층에 가면 언제든 원할 때 머 리를 땋을 수 있는 브레이드 바 매장이 마련돼 있다. 예약자에 한해 한 타임에 두 명씩, 원하는 형태로 머리를 땋을 수 있으며 온라인 몰(braidbar.co.uk)에선 셀프 연출을 위한 방법과 헤어 지침서 <더 브레이드 북>을 판매한다. 물론 세계 4대 도시에서 열린 2016 S/S 쇼에서도 땋은 머리의 유행 조짐이 포착됐다. 대표적인 쇼로 말할 것 같으면 루이 비통, 발렌티노, 에르베 레제 등등. 하지만 성인 여성에게 땋은 머리가 어린 시절 ‘인형 놀이 머리’에 불과하단 편견이 무너진 순간은 따로 있었다. 얼마 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루니 마라의 레드카펫 헤어와 <아가씨> 시사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민희. 다들 ‘땋은 머리’라는 공통분모를 지녔으니 이쯤되면 땋은 머리가 트렌드라는 사실.
사실 오래전부터 땋은 머리는 립스틱과 더불어 여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발랄함, 강인함, 청순함을 나타내는 만능 헤어스타일이다. 팝 가수 알리샤 키스의 전속 헤어 스타일리스트 니키 터커는 열세 살 때 사촌 동생의 머리를 땋는 순간 브레이드 헤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고백한다.“땋은 머리는 왕관 같아요. 그 자체로 포인트가 되죠.” 모로칸오일 교육부 카이 정도 비슷한 의견이다. “값비싼 장신구를 사용할 수 없던 조선시대 기녀들은 머리를 땋아 올려서 화려한 스타일을 연출하지 않았나요?”
한동안 잊고 지낸 땋은 머리의 매력을 되찾기 위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땋은 머리’ 네 글자를 치자 온갖 연출법이 떴다. 마이크로 브레이드, 콘로우, 피시테일 브레이드, 블록키 브레이드, 브레이드 번, 트위스트 브레이드, 프렌치 브레이드 등등.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에 포스팅에 올라온 사진은 하나같이 눈부신 금발 미녀들이다.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혜영은 “동양인의 검은 머리 특성상 잘못 땋았다간 고전적 느낌을 줄 수 있다”며 무작정 따라했다간 실패 확률이 높다고 단언한다. 격투기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홍일점 춘리를 떠올려보라. 가운데 가르마에 양쪽으로 말아 올린 블랙 헤어란! 땋은 머리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니 한국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땋은 머리 스타일이 뭔지 궁금해졌다. 많은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은 한결같이 ‘피시테일’을 권한다. “머리를 낮게 내려 두 가닥이나 세 가닥으로 나눠 땋은 뒤 한쪽으로 내려주는 스타일입니다. 동양인의 경우 목이 짧고 두상이 서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머리를 올려 연출하는 것보다 아래로 내려 길어 보이게 표현하는 게 적절하죠.” 카이 정의 설명이다. 원하는 분위기에 따라 땋는 방식과 위치는 180도 달라진다. 먼저 청순함을 맡고 있는 ‘사이드 브레이드’는 거울을 보며 땋을 수 있기에 초보자도 쉽게 연출할 수있다. 양쪽 얼굴 중 더 자신 있는 방향으로 위치를 정한 뒤 앞머리와 옆머리를 모아 세가닥으로 나눠 얼굴선을 따라 흐르듯 땋아주면 끝이다.
촘촘하게 땋는 ‘디스코 브레이드’는 발랄해 보이는 데 그만이다. 움직임이 많다거나 바람이 많이 불어도 흐트러짐이 적어 격렬하게 운동할 때 유용하며 무엇보다 머리를 땋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볼륨이 생겨 뒤통수가 예뻐 보인다. 그렇다면 짧은 머리에게 땋은 머리는 넘지 못할 산일까? 실망하긴 이르다. 앞서 말한 사이드 브레이드, 일명 ‘벼 머리’는 단발을 위한 최적의 헤어스타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성파라면 지금 인스타그램을 터치해 ‘#braidoftheday’를 찍어보시라. 이제껏 모르고 지낸 땋은 머리의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알고 보면 머리 땋기의 성패는 밑 작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모스프로페셔널 교육팀의 비법은 머리를 땋기 전에 넣는 웨이브. “컬만 넣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덩어리(땋은 부위)가 늘어지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방법은 간단하다. 고데기나 드라이어를 이용해 모발 전체에 가벼운 컬을 넣고, 스타일링 제품과 에센스를 적당히 바르면 땋은 부분이 흐트러지지 않아 처음 상태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컬을 넣을 여유가 없다면 모발 정돈에 신경 쓰길. 넓적한 패딩 브러시로 머리를 곱게 빗어주는 게 첫 단계. 그런 뒤 모발 전체에 컬 크림을 얇게 발라 머리카락에 윤기를 주고 부드럽게 만들면 된다. 사소한 팁이지만 결과의 차이는 크다. 흔히 저지르는 실수로 지속력을 높이기 위해 마무리 단계에 스프레이를 뿌려 고정하는데 이거야말로 구시대적 방식.“잔머리를 꼭꼭 숨기는 시대는 끝났어요. 헤어라인이나 자연스럽게 삐져나오는 잔머리를 살려두는게 훨씬 매력적입니다.” 이혜영의 설명이다.
오늘따라 어중간한 머리 길이가 유난히 마음에 안 들고 제멋대로인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손쓸 방법이 없다면? 커트 예약만이 해답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을수록 ‘슈퍼시크’해지는 건 기본이요, 여성스러운 분위기는 보너스. 게다가 기분 전환까지! 머리만 땋아도 일석삼조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 에디터
- 이주현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 모델
- 한예지, 권지야
- 헤어
- 박규진
- 메이크업
- 이자원
- 네일
- 최지숙(브러쉬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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