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와인의 값

2016.07.05

와인의 값

원산지, 품종, 빈티지, 생산자 등 와인을 고르는 조건이 다양해질수록 머릿속은 하얘진다. 이때도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가격. 하지만 늘 의문은 남는다. 와인의 가격표는 과연 제값을 하는 걸까? [ 액세서리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 트레이는 크리스토플(Christofle). ]

원산지, 품종, 빈티지, 생산자 등 와인을 고르는 조건이 다양해질수록 머릿속은 하얘진다. 이때도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가격. 하지만 늘 의문은 남는다. 와인의 가격표는 과연 제값을 하는 걸까?
[ 액세서리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 트레이는 크리스토플(Christofle).]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3만원 미만에 판매되는 샤토 탈보(Château Talbot) 와인이 국내 소비자가격 15만원에 책정되어 있으며 국내 와인 수입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라는 기사가 나온 적 있다. 기사를 본 국내 와인 전문가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 가격에 탈보를 구해와봐라. 내가 팔레트(Palette, 약 600병)로 구매할 테니”라고 대꾸하면서. 해외에서 판매되는 탈보 가격이 왜 3만원 미만으로 공식 발표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해외 평균 가격은 2013년 빈티지 기준으로 세금을 제외하고 9만5,594원이다. 게다가 샤토 탈보는 와이너리와 직거래가 불가하며 보르도의 네고시앙을 통해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유통 구조상 독점 판매가 불가해 큰 마진을 볼 수 없는 와인인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현지가보다 국내 가격이 저렴한 경우도 허다하다는 거다. 샤토 탈보는 국내에서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는 와인이라 수입사에서 역마진을 보더라도 미끼 상품으로 판매한다. 이렇듯 뉴스를 보면 국내 와인 가격을 두고 논란이 많다. 와인 가격에 여전히 거품이 있는 걸까? 맛있는 와인은 비싼 와인일까? 싸고 맛있는 와인도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와인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와인 가격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은 와인21닷컴(www.wine21.com)이다. 이 사이트에는 와인 수입사가 제공하는 소비자가격이 나와 있다. 문제는 소비자가격을 제대로 다 주고 사면 어쩐지 ‘득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호가들은 해외에서 판매 중인 가격을 다시 검색한다. 전문가들도 많이 이용하는 해외 가격 정보 사이트는 와인서처(www.wine-searcher.com)다. 여기서는 각국의 세금을 제외한 와인 가격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와인 가격에는 관세 15%, 주세 30%, 교육세 10%, 거기에 또 한 번 부가세 10%가 붙는다. 이렇게만 해도 가격은 껑충 뛰어오른다. 국내 세금 체계는 와인 단가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즉 종가세가 적용된다. 와인 가격이 저렴한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양에 비례하는 종량세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같은 와인이 왜 국내에서 가격 차가 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또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은 유통시장 논리다. 연간 국내 와인 소비량은 한 사람당 0.7L 수준이지만 미국은 10.3L, 일본은 2.7L다. 생산량이 적은 와인의 경우 여섯 병, 열두 병 단위로 수입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섯 병을 수입했는데, 심지어 그중 한 병은 식약처의 검사용 샘플로 빠져야 하니 와인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렇게 세금 체계가 다르니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해외 구매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니다. 국내에도 가격 경쟁력이 있는 와인이 얼마든지 있다. 특히 10만원 미만의 데일리 와인일 경우 이렇게 와인을 팔아서야 업계 사람들은 어떻게 밥을 먹고사나 싶을 정도로 좋은 조건에 판매되는 와인도 많다.

2016년 상반기 와인 시장을 발칵 뒤집어놓은 히트 상품, 고스트 파인만 봐도 그렇다. 이 와인은 홈플러스가 프리미엄 와인 시장의 포문을 열고자 연중 프로젝트로 계획한 ‘슈퍼스타 4 프로젝트’의 첫 주자로 출시됐다. 올해 시범판매 기간 4일 동안 1,000병이 팔렸다. 놀랍게도 가격은 미국 현지 마트 가격 25달러보다 저렴한 1만8,900원이다. 와인 애호가들은 입을 모아 칭찬하며 보이면 일단 쟁여놓는다. 어떻게 현지보다 낮은 가격에 출시가 가능했을까? 홈플러스 관계자는 “제조사인 갤로사와 업무 협약을 체결, 사전 물량 확보 및 양 사 자체 가격 투자를 통해 모두가 양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칠레에서 7대째 포도밭을 일구어 와인을 만드는 페드레갈(Pedregal) 가문과 전설의 와인메이커 파스칼 마티(Pascal Marty), 신세계 L&B가 손잡고 선보인 브랜드 G7도 좋은 예다. “수입 와인의 가격 거품을 제거하고 와인 대중화에 기여하겠다”는 회사 설립 취지에 맞게 750mL 한 병의 가격을 6,900원에 책정했다. 수입 와인은 현지 인건비 상승이나 환율 변동에 따라 1~2년마다 가격 변동이 생길 수 있지만 G7은 론칭 이후 지금껏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 출시 후 5년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 병을 돌파했으며 2014년에는 한 해 동안 이마트에서 100만 병이 팔렸다.

와인 숍과 레스토랑에서 눈에 띄는 와인은 에쿨라 모나스 트렐이다. 5만원 이내로 해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와인인데 이 와인의 2004년 빈티지는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할 1001 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선 생산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쿨라 지역은 유명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가격 대비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지역이다. 와인 애호가였던 수입사 WS통상 대표의 노력으로 가능했던 가격이다.

국내 와인 가격은 결국 생산지에서 정한 가격을 토대로 결정된다. 그리고 생산국의 와인 가격은 기본적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귀부(貴腐)와인의 경우 기후의 영향이 커 인위적인 생산이 불가능하며 곰팡이가 앉은 포도알을 일일이 손으로 선별해서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간다. 생산 원가가 많이 들어가는 와인이다.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와인 역시 공급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면 가격은 상승한다.

물론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과연 10만원짜리 와인보다는 50만원짜리 와인이, 50만원짜리 와인보다는 100만원짜리 와인이 맛있을까?’ 하는 점이다. 단순한 대답은 “그렇다, 비싼 와인은 맛있다”. 하지만 ‘비싼 와인=맛있는 와인’이라고 공식화할 수는 없다. 와인에서 정의하는 훌륭한 와인은 밸런스가 잘 잡혀 있고 복합미가 좋은 와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를 자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평소 모스카토를 ‘애정하는’ 와인 초보자는 프랑스 그랑 크뤼 올드 빈티지를 접하고 어떤 점에서 감동을 느껴야 하는지 전혀 포인트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맛이라는 건 개인의 취향이다.

와인 가격에 대한 비밀을 풀고 나서도 여전히 우리는 와인 앞에서 망설인다. 와인은 어떻게 고르면 좋을까? 와인365 분당점 김현욱 점장은 “고기도 굽기 정도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듯 와인 역시 본인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선호하는 국가, 품종 등의 상세 정보를 기억했다가 점원에게 이야기하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맛있게 마신 와인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쉽게 비슷한 성격의 와인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엄마가 해준 김치 맛, 집밥을 기억한다. 또 밀떡이나 쌀떡, 국물 떡볶이나 기름 떡볶이 중 어느 쪽이 내 취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와인이라고 다를까? 끊임없는 도전이야말로 와인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양진원(와인 전문 기자)
    에디터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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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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