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BAG – 프롤로그
한국의 여러 분야를 대표하는 100명을 찍는 ‘100 Bag’ 프로젝트! 그건 순전히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에서 셀러브리티 6~7명과 함께 새로 론칭하는 가방 화보를 찍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정형화된 화보는 많이 진행한 데다 어딘지 모르게 식상한 느낌이라 이번엔 좀더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여러 의견을 주고받던 중, “백(Bag) 화보니까, ‘백백(100 Bag)’ 어때요?”라고 입 밖으로 꺼낸 순간! 카스텔바작 쪽에서 내 아이디어를 그야말로 덥석 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미팅 후 2~3일이 지난 뒤 전화가 왔다. 그렇게 진행해보자고 말이다.
이 기획에 참여한 100명의 모델료를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고, 사진을 찍는 나 역시 100명에 포함돼 재능 기부하는 것으로 기획을 가다듬었다. 개인적으로 기부에 대한 생각은 늘 갖고 있었다. 사회로부터 얻은 것을 어떻게 환원할지 고민해왔다. 사정이 어려운 조손 가정을 후원해 온 것도 그런 이유다. 사실 누군가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건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부터다. 그전에는 기부에 대한 생각을 못하다가, 내 아이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아이도 중요할 테고 그 아이들도 똑같이 모두가 누리는 교육과 같은 혜택을 받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처음에 조손 가정을 도운 이유는 나 역시 할머니 아래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부모와 아이들을 동시에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100 Bag’ 프로젝트 역시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길 원했다. 그러던 중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연결됐다. 그리하여 ‘100 Bag’ 프로젝트가 100인의 이름으로 빈곤과 사회적 악습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빼앗긴 아프리카 여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캠페인 ‘스쿨미(School Me)’에 기부하는 내용으로 구체화됐다.
다음 단계는 ‘100 Bag’ 프로젝트를 대중에게 널리 알릴 플랫폼을 찾는 일.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잡지는 무조건 <보그>였다. 그런 뒤 프로젝트의 목표가 아이들을 돕는 것이기에 촬영 컨셉을 동화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정했다. 이런 이미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매체가 <보그>라고 여긴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나는 <보그>가 창간한 1996년부터 사진을 시작했고, 또 <보그>와의 작업도 그때부터다. 나와 <보그>가 사진가로서, 패션 잡지로서 지난 20년을 패션계에서 같이 성장한 셈이니 그 인연도 창간 20주년 기념호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특정 분야에서 같이 커온다는 것,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100명 가운데는 함께 작업하지 않은 인물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촬영으로 나와 한 번쯤 인연을 맺은 사람들로 선정됐다. 아닌 게 아니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섭외 과정에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촬영 중간중간 스태프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인생을 헛살지 않았나 봐!” 아무리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다고 해도, 각자의 일터에서 분주하게 사는 사람들일 텐데 몇 시간씩 시간을 내주는 건 물론, 어찌 보면 전에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컨셉의 촬영에 흔쾌히 임하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우니 말이다. 사실 그들에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었다. 고맙게도 섭외할 때 지인들이 많이 도움을 줬다. 어느 지인은 여러 매니지먼트 회사에 직접 연락을 돌리고 전직 에디터였던 지인은 촬영 섭외 공문을 설득력 있게 작성했다. 내가 잘 모르는 과학·문학·미술계 사람들을 섭외해준 것도 모두 지인들이다.
‘100 Bag’ 프로젝트를 함께한 <보그>와 세이브더칠드런 역시 섭외에 혁혁한 도움을 줬다. <보그>에서는 패션계 주요 인사들을 섭외했다. 또 세이브더칠드런은 홍보대사 강혜정, 타블로를 비롯, ‘스쿨 미 컬러링 뮤직비디오’ 음악 작업에 참여한 타이거 JK, 윤미래에게 손을 내밀었다. 타블로는 홍보대사답게 멋진 참여 소감을 전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렇듯 즐겁게 사진 찍는 방식으로 기부할 수도 있어요. 단순히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이제까지 기부해온 건 아닙니다. 기부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에요. 제가 음악 하는 이유와 동떨어진 게 아니죠. 제가 즐길 수 있고 행복하면서도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패션 사진가 일을 하면서도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 혼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음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체득했다. 기부의 의미 역시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는 것 아닌가. 오히려 내가 ‘100 Bag’ 프로젝트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100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을 꼽으라고 나에게 질문한다면, 매 순간 온 마음을 다해 찍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열 장으로 구성된 화보가 아니기에 한 장을 찍더라도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진 찍힌 대상이 오히려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한 컷을 찍기 위해 세트며 옷이며 장소며 오래 준비했지만, 촬영 시간은 의외로 짧았으니까. 예를 들어 이준은 인어를 컨셉으로 물이 가득 찬 수조에 들어가서 촬영했다. 말 그대로 수중촬영이니 내 입장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컸으나, “벌써 끝난 거예요? 아쉽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엄정화는 “나는 멀리 가도 되니 말과 함께 찍을게”라며 먼저 제안해줘 몇 시간이나 이동해 실제 말과 촬영을 마쳤다. 이병헌의 경우 진짜 사자 박제와 함께 찍기 위해 심야에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서 촬영했다. “도네이션 화보를 찍을 때는 기존 화보에 비해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이 사진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큰 호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요. 취지가 나 혼자만을 위한 게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병헌의 사려 깊은 소감 역시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사실 나는 늘 사진을 찍다가 죽는 게 꿈이라고 말해왔다.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사진 찍는 사람이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간, 어떨 땐 촬영이 좀 지겹기도 했고 최근엔 옛날만큼 심장이 두근거리는 촬영이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00 Bag’ 프로젝트는 매번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내가 직접 컨셉을 정하고, 그 컨셉을 위해 피사체 개개인에 대해 연구하고, 또 결과물을 상상했으니까. 70~80명쯤 찍었을 땐 조금 지치기도 했다. 거의 한 달 내내 하루에 4~5팀을 찍어왔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함께 일하던 스태프가 촬영장에 놀러온 적 있다. “실장님, 후반 작품이 더 좋은데요?” 그의 말에 ‘내가 아직까지 게을러지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첫 마음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다.
비로소 100인 촬영을 끝냈다. 93명쯤 촬영할 무렵 끝이 보이니 왠지 허전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면 믿겠나? 오히려 아쉬운 점이 많이 생각났다. 두 달 만에 100명을 찍으려다 보니 놓친 부분도 많고 더 잘했어야 하는데 싶은 아쉬움도 크고, 더 다양한 장소에서 찍었더라면 하는 미련도 남았다. 그래서 마지막 촬영 후 회식 자리에서 나는 이런 말을 스태프들에게 던졌다. “이제 100인의 얼굴이라는 작업을 해볼까?”
- 글
- 조선희
- 포토그래퍼
- 조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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