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고와 수저게임
증강현실로 들어간 현실은 포켓몬이 뛰어노는 유토피아가 되고, 수저게임으로 들어간 현실은 인생 역전이 가능한 기회의 땅이 된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취하는 화제의 게임, 포켓몬 고와 수저게임을 해봤다.
포켓몬 고 속초행 평범한 수요일이었다. 인턴 기자가 다가와 말했다. “포켓몬 고가 속초에서 된다는데요?” 사실 나는 그때까지 포켓몬 고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소식을 국내 미디어가 도배하기 시작했다. 속초시 페이스북 관리자는 속초가 포켓몬 고의 성지라며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속초시장은 어서 몬스터 잡으러 속초로 오라며 인터뷰까지 했다. 간 김에 물회나 먹고 올까? 하는 생각에 기자 둘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포켓몬 잡으러 속초 갑니다”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툭 던졌다. 평소 몇 시간씩 자료를 찾아 열심히 쓴 글에 달리던 10여 개의 ‘좋아요’ 대신에 수백 개의 ‘좋아요’가 쌓여갔다. 거의 달나라에 가는 닐 암스트롱만큼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았다. 속초에 도착해서 첫 몬스터를 신고했을 때도 나는 SNS 스타가 됐다. 어안이 벙벙해질 때, 트위터 코리아에서 연락이 왔다. 포켓몬 고를 잡는 현지 생방송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같이 간 인턴기자는 동시 접속자 10만 명이 바라보는 가운데 페리스코프로 생방송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의 페리스코프 생방송보다 접속자가 많았다고 한다.
나는 포켓몬 고의 원작인 ‘포켓몬스터’ 세대가 아니다. 포켓몬스터가 국내 TV에 방영되던 2000년 즈음에 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20~30대에게 포켓몬스터는 특별하다. 포켓몬스터를 창작한 닌텐도의 ‘다지리 사토시’는 어린 시절 곤충 채집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포켓몬스터를 만들었다. 도시화로 인해 곤충 채집을 할 수 없어진 아이들에게 그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꿈이 포켓몬 고로 인해 이뤄졌다. 게임 속에서만 돌아다니는 게 아닌, 실제 도시를 뛰어다니며 가상의 곤충(몬스터)을 채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이라는 기술이 쓰였는데, 이는 현실과 가상의 그래픽 화면을 겹치는 기술의 일종이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지도 데이터와 결합하고, 전 세계의 유명 거점을 데이터화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따랐다. 그래서 닌텐도는 구글맵 개발자 출신이 설립한 ‘나이앤틱’에 게임 개발을 맡겼다. 나이앤틱은 전 세계 500만 개의 거점 데이터와 증강현실 기술, 지도 데이터를 모아 포켓몬 고라는 멋진 게임을 만들었다. 즉, 나이앤틱의 기술력, 닌텐도의 기획력, 포켓몬스터라는 대히트 브랜드가 만나 포켓몬 고가 탄생한 것이다.
저녁이 되자 퇴근 후 속초행 버스를 타고 온 젊은이들이 속초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조 배터리를 들고 속초의 밤거리를 헤매며 행복한 얼굴로 몬스터 사냥에 나섰다. 여성들도 많았고, 속초 현지 학생들도 많았다. 포켓몬 고의 또 다른 특징이다. 학습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게임 플레이가 간단하다. 주변에 몬스터가 보이면 다가가서 잘 조준한 뒤 포켓볼을 던지면 끝이다. 체육관 대결이나 트레이닝 시스템은 복잡하지만 그런 시스템을 몰라도 즐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포켓몬 고는 비싸고 어려운 게임이 아니다. 한국은 현재 정식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기에 속초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하지만 유행에 앞서가는 사람처럼 보이고, 쿨하며, 얘깃거리도 많다. 희귀한 상황(한국은 속초, 해외는 희귀 몬스터)을 SNS에서 자랑하기 쉽다. 이런 콘텐츠는 과거에도 있었다. 허니버터칩이 그랬고, 맥도날드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세트가 그랬으며, 최근에는 쉐이크쉑버거가 SNS를 휩쓸고 있다. 약간의 희소성, 사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성, 따라해보고 싶은 재미가 SNS에 메가트렌드를 만들어낸다. 오늘도 나는 속초에 가서 내 포켓몬 도감을 가득 채워 SNS에 올리고 싶은 욕망과 싸우고 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을까?
내일은 수저왕 연일 쏟아지는 사회 풍자 게임 중 요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수저계급론’에 입각한 게임이다. ‘골드 스푼 메이커’ ‘흙수저 키우기’ ‘만수르게임2 금수저’ ‘인생역전-흙수저 탈출’ ‘거지 키우기’ 등 이들 게임은 제목에서부터 지질한 현실 냄새와 향긋한 돈 냄새를 풍긴다. 성장 드라마로 유저들을 웃고 울게 했던 ‘프린세스 메이커’가 떠오르는 작명이지만 여기서 키워야 하는 건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돈주머니다.
‘골드 스푼 메이커’는 최저임금도 못 받는 편의점 알바생에서 시작해 삭신이 쑤시는 일용직 등을 거쳐 앞마당에 유전 터진 기름 부자가 되는 걸 목표로 하고, ‘흙수저 키우기’는 백수에서 과외 선생, 예능인 등을 이룬 뒤 김본좌까지 도달하면 엔딩이다. ‘만수르게임2 금수저’는 백수부터 중고나라 사기꾼, 스타 셰프 등 단계가 올라가다가 사장에 도달하면 그다음부턴 누군가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직업에 따라 등급은 계속해서 올라간다. 세 게임 모두 20~30여 개에 달하는 직업이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다. ‘인생역전-흙수저 탈출’은 아예 지구를 벗어난다. 달나라, 화성을 거쳐 타임머신까지 탑승한다. ‘거지 키우기’는 신분 상승에는 도리어 초연하다. 구걸로 돈을 모아 건물, 미술품, 기업을 사고 나중에는 도시까지 인수한다. ‘인생역전-흙수저 탈출’은 돈 버는 방법이 아예 처음부터 복권 긁기이고, ‘골드 스푼 메이커’는 분신을 보내 일을 시켜서 월급을 모은다. 이는 로또 1등 당첨 확률에 기대거나 초능력이 생기지 않으면 수저 간 이동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부동산을 사기 시작하면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 초반 신분 상승은 쉽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다음 레벨로 넘어가기 힘든 설정은 현실과 대단히 닮았다. 단시간에 돈을 뻥튀기하기 위해서는 ‘보석’ 같은 아이템이 필요한데 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광고를 봐야 한다. 불로소득을 위해서는 응당 비굴함이 따르는 법이다.
현실을 비트는 스토리에는 언어유희가 양념처럼 뿌려져 있고 이는 마치 만화책 읽듯 킥킥거리며 게임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나는 ‘거지 키우기’를 다운 받고 몇 시간 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50층 빌딩까지 사버린 뒤였다. 손목은 일주일 연속 야근을 한 듯 저려왔고, 라운드형으로 케어를 받은 손톱은 스퀘어형으로 닳은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플레이가 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근질했다. 돈을 벌면 내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나도 현실 세계에서 돈 좀 번다는 사람들처럼, 음반을 수집하듯 취미로 빌딩을 수집하고 싶었다.
아이러니한 건 수저계급론에서 출발한 게임이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가치를 증명한다는 사실이다. 게임의 흡입력은 ‘자수성가’에서 생긴다. 돈을 버는 방법은 ‘화면 클릭’이고 이는 ‘투자한 시간’과 정비례한다. 순발력이 달리고 요령이 부족하고 아이템을 구입할 생각이 없다면 열심히 하면 된다. 좌절이란 없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면 누구나 흙수저를 탈출할 수 있다. 모두 백수나 거지에서 시작하니 억울할 일도 없다. 게임에서 패배는 그냥 머무르는 것이다. 후임 없는 중소기업 대리에, 야광봉 팔이에 머무르면 그만이다. 방치해도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으니 게임은 유저들에게 언제든 일어설 수 있는 기회까지 주는 셈이다.
얼마 전 안방극장에서는 수저 뽑기를 통해 상속자, 집사, 정규직, 비정규직 4개 계급으로 나뉘어 1,000만원을 두고 벌이는 파일럿 프로그램 <인생게임-상속자>가 화제가 되었다. 이 게임의 승자는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며 우승에 목을 매던 휴학생이 아니라, 재미 삼아 게임에 참여한 1,000억대 자산가였다. 방송의 모티브가 된 보드게임인 ‘수저게임’ 역시 처음에 어떤 카드를 뽑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흙수저와 금수저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걸까? 나는 다시 ‘거지 키우기’ 앱을 실행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페이스쿡’도 인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 에디터
- 조소현
- 글
- 김정철("포켓몬 고 속초행", 편집장)
- 일러스트레이션
- 전하은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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