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아 리키엘을 추모하며
2008년 10월, 파리 외곽의 어둑한 생클루 숲에는 축축한 적막이 감돌았다. 하지만 곧 눈부신 조명과 함께 ‘빵!’ 하며 사이키델릭한 조명이 터졌다. 이윽고 시끌벅적한 음악, 완벽한 프렌치 정찬으로 세팅된 수백 개의 테이블은 물론 형형색색 의상으로 한껏 꾸민 모델들로 꽉 찼다. 이 패션쇼 덕분에 고요했던 생클루 숲은 금세 활기가 넘쳤다. 바로 소니아 리키엘 40주년을 기념한 패션 잔치의 한 장면이다. 쇼가 끝날 때쯤 연출된 후배 디자이너들의 헌정 패션쇼는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느껴지는, 패션사에 길이 남을 만큼 감동적인 패션 모먼트.
스트라이프 니트부터 헐렁한 팬츠, 색색의 시폰 드레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파리지엔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 니트의 여왕이요, 빨간 머리카락을 지닌 인물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여자. 그런 그녀가 지난달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늘 예술을 즐기기 위한 여유와 감성으로 충만해요. 언제나 나를 매료시켜온 것은 이런 파리지엔의 정신입니다” 40주년 기념 쇼 직후 유일하게 <보그 코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리키엘 여사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당시 그녀 나이 78세). 처음으로 니트를 선보인 1968년부터 지금까지 마담 리키엘은 그녀 자신처럼 지적이고 보헤미안 성향의 파리지엔 이미지를 구현해내기 위해 거침없이 달려왔다.
길고 낮은 소파에 앉아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패션 거장이 살고 있는 집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살림살이로 채워진 아늑한 살롱이었다. 수많은 책과 음반, 그림, 크고 작은 장식품과 앤티크 가구로 채워진 거실은 화려하지만 결코 젠체하지 않았던 그녀의 스타일과 닮아 있었다.
마담 리키엘은 지성의 소유자기도 했다. 그녀의 예술적 놀이는 책과 음악으로 채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거실 한쪽 벽을 가득 차지한 수많은 책이 이를 증명한다. “나는 늘 문학을 사랑했고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써왔어요. 가끔 단어 하나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있죠.” 그녀가 아꼈던 삼원색, 꽃과 보석 그리고 스트라이프. “내게 있어 스트라이프는 영원해요!” 스트라이프는 절대로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다. 그녀가 창조한 ‘시크’한 멋처럼.
- 에디터
- 손은영
- 포토그래퍼
- GETTY IMAGES / IMAZINS,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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