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It, Just Beat It
‘비트 제너레이션’은 전설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잭 케루악과 앨런 긴즈버그 그리고 윌리엄 버로스의 자유와 열정이 회자되는 이유를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전시에서 찾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세상을 향한 인식의 문을 열어준 세 권의 책이 있다. 잭 케루악(Jack Kerouac, 1922-1969)의 <길 위에서(On the Road)>(1951),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1926-1997)의 <울부짖음과 그 밖의 시들(Howl and Other Poems)>(1956) 그리고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 1914-1967)의 <벌거벗은 점심(The Naked Lunch)>(1959). 이 세 권의 책은 당시 미국에서 벌어질 수 있었던 최악의 일을 그리고 있다.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강력한 기독교 사회인 미국은 당시 세계대전과 대공황 이후 유례 없는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일상의 게임만큼 즐기던 젊은 게이 청년 세 명은 반사회적, 반순응적인 문학적 재능으로 이런 시대에 대한 반란과 같은 작품을 써냈다. 그것은 이들의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문화 혹은 라이프스타일의 방식으로 인정받기 이전, 수 세대에 걸쳐 청교도적인 강박으로 만들어낸 모든 ‘아메리칸 드림’으로부터 자유로운,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친구들과 연인들 그리고 동반자들의 음모였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초기, 매카시즘 시대, 1940년대 말에 일어난 문학사조와 예술운동인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다. 매카시(McCarthy) 시대의 비동성애자인 미국인들을 아연실색하게 한 동시에 60년대 문화적, 성적 혁명과 라이프스타일의 대변화를 예고한 이들 말이다.
오늘날 안정된 미술계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와 문화계의 주역들은 필사적으로 이제는 이미 주류로 변질된 과거의 청년 문화에서 무엇인가 만들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비트 제너레이션의 신화적이고 감성적인 순간의 경험에 시각적 요소의 미술 작품을 끼워 맞추어 반문화(Counter-Culture)의 상징적 구성 요소와 결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신화나 영웅 등은 전혀 다른 의미다. 비트 시인과 작가들은 그들이 아무리 근사하다고 해도, 결코 록 스타의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전시 <Beat Generation(비트 제너레이션)>을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퐁피두 전시에서는 비트 세대의 정체성을 구성한 요소와 활약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현재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는 영화, 시, 그림, 조각, 인쇄물 등을 선보였다. 비트 세대가 낳은 결과물에서 공히 발견되는 필수적인 테마가 있다. 떠돌이 생활, 마약, 동성애, 무료 음악, 서정시 그리고 미국 중산층의 유토피아가 만들어낸 의식의 확장 등은 다른 도시에서 열린 비트 전시를 통해 전파되었다. 그 여정이 뉴욕에서 시작된 건 매우 일리 있다. 뉴욕이야말로 비트 세대의 탄생지인 동시에 음악과 글이 환각적인 리듬에 박자를 맞추며 새로운 목소리를 개발한 도시 아닌가. 그리고 전시의 부제인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뿐 아니라 멕시코, 탕헤르, 인도와 네팔까지, 전시는 비트 세대의 생의 업적을 품은 도시에 따라 배열되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의 원본을 보고 싶었던 관객들은 타자기로 친 37m에 이르는 긴 원고가 길처럼 펼쳐진 퐁피두를 찾았다. 주어진 종이 위의 공간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야기로 균열시키는 이 책은 마치 잊힌 기억의 어둠에서 구해낸 성스러운 유물과도 같다. 케루악은 글쓰기의 황홀한 경험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난 단번에 써 내려갔다. 잠재의식이 스스로 표출되게 하면서. 반쯤은 깨어 있고,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어가 계속해서 파도처럼 흘러나오게 놓아두었다.” 그가 만들어낸 거대한 내러티브의 길 위에 여정, 도시, 섹스, 마약, 재즈(로큰롤이 아니라) 등이 흩뿌려졌다. 잭 케루악은 보수적인 캐나다에 뿌리를 내린 예언자이자, 배우자 세 명을 둔 지극히 평범한 남자인 동시에 비밀스러운 동성애자였다.
한편 유대인 동성애자이자 자신이 쓴 시 때문에 감옥살이를 한 앨런 긴즈버그는 1960년대 중반에 턱수염을 기르고 ‘Flower Power(사랑과 평화, 반전을 부르짖던 1960~1970년대 청년 문화)’의 선봉에 선 불교 예언자가 되었다. 1960년 쿠바 아바나에서 알베르토 코르다가 촬영한 사진 속의 체 게바라처럼, 앨런 긴즈버그의 이 상징적인 이미지도 마치 로고처럼 당시 포스터와 잡지를 장식하곤 했다. 한편 사진 속 중산층 사무원용 회색 양복과 중절모 차림으로 위축된 듯한 윌리엄 버로스는 언뜻 멋진 복장의 동료들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약중독자에 총기 팬이었던 그는 저음의 목소리로 자신이 쓴 편집증적인 글을 읽긴 했지만, 비트 세대 운동의 전면에 나서는 대신 뒤에 물러나 있었다. 그렇게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그리고 윌리엄 버로스 3인조는 느슨하고도 팽팽한 원처럼 연결되어 있다.
비트 세대에게 뉴욕은 활동 무대가 서로 겹치지도 않고, 서로 간섭하지도 않는 활동가들의 독자적인 둥지였다. 추상적 표현주의자들은 비트족과 잘 어울리지 않았으며, 후에 등장한 대중음악가들이나 미니멀리스트들과도 마찬가지였다. 샌프란시스코의 화가들은 비트족과 잘 지냈지만, 미술에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 물론 비트족 주위에도 미술가들은 존재했다. 비주얼 아티스트 제이 드페오(Jay DeFeo), 영화감독 브루스 코너(Bruce Conner), 캘리포니아 팝아트 신을 이끈 월리스 버먼(Wallace Berman) 같은 아티스트들 말이다. 그들은 전혀 다른 의미의 ‘딜러(마약 관련한 이들)’들을 이용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존재를 예술의 영역에 깊이 끌어들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퐁피두 전시는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의 화가들을 비트 세대와 함께 세상에 드러냈고, 일부 서정적인 추상주의자들과 일종의 조합을 탄생시킴으로써 비트 세대의 정신과 개념을 시공간적으로 확장했다.
이를테면 비트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영국-캐나다 출신의 예술가이자 집필가였던 브라이언 지신(Brion Gysin)은 몇몇 그림에서 비트 세대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림이 1950년대 분위기를 깊숙이 반영하고 있다면, 비트 세대의 시(Beat Poetry)는 68혁명이 지니고 있던 일종의 참신함을 유지했고, 이것은 1970년대 반베트남전쟁 운동가들에게로 이어졌다. 또 비트족이 몸을 뉘었던 ‘비트 호텔’이라는 감성적 기념품은 (뉴욕이 현대미술을 훔쳐가기 전의) 전위적 도시였던 파리에 대한 기억, 그 영웅적 풍경의 순간에 늘 유령처럼 따라붙어 다닌다. 멕시코와 모로코에 있는 별관은 마약, 헤픈 청춘들, 칙칙한 풍경과 열정 그리고 유명 소설과 시의 배경이 된 이국적인 지점을 제공해왔다.
이번 퐁피두 전시는 턱수염, 천연 면과 오리털 배낭, 채식 같은 60년대 라이프스타일을 재탐색하고자 하는 힙스터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불교적인 의상과 철학은 이번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윌리엄 버로스, 이 성난 청년 세 명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영웅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책을 읽거나 앨런 긴즈버그가 <Howl and Other Poems>를 읽는 동영상을 유튜브로 찾아보는 일뿐이다.
지금은 무신론과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한 시대이지만, 음악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더 이상 전쟁으로 베트남에 갈 일은 없지만, 흑인 사회에 대한 경찰 폭력과 싸워야 할 시민권은 있다. 인종차별주의자와 이슬람 혐오자들의 손에 우리의 문화가 장악되지 않도록 말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우드스톡’으로 이어진 역사적 문화 운동의 창시자인 비트 세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사랑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외친다. 21세기에도, 전시가 끝난 지금도 비트 세대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다.
- 에디터
- 윤혜정
- 글
- 김승덕 (르 콩소르시움 디렉터)
- 포토그래퍼
- CENTRE POMPID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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