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frica
루피타 뇽은 아프리카를 위한 사명감으로 배우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보이는 사려 깊은 작품 선택 이유, 캐릭터를 대하는 진중함,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방식이 우리로 하여금 아프리카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동아프리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퀸 오브 카트웨〉에서 루피타 뇽은 ‘희망’이라는 가치를 연기한다.
루피타 뇽(Lupita Nyong’o)은 실제 키보다 훨씬 더 커 보이게 등을 꼿꼿이 펴고 걷는다. 어머니 도로시는 가족들이 그 걸음걸이를 평생 놀릴 거라고 말한 적 있다. 루피타의 키는 165cm지만 183cm는 된다고 믿는 것 같다. 브루클린의 작은 식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도 그 걸음걸이를 알아챘다. 그녀는 다른 미국 젊은이들과 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쿨하고, 신중했고, 등이 꼿꼿했다. 루피타는 그린 에그와 양고기를 주문했고, 불필요하게 웃음을 유도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농담이 흘러나오게 했다. 그러나 일 얘기를 시작하자 완전히 집중했는데 공적인 루피타를 잊고 스토리와 캐릭터 속으로 빠져들어 몰입하는 듯했다.
2014년 크리스마스 무렵 루피타는 미라 나이르(Mira Nair) 감독으로부터 <퀸 오브 카트웨(Queen of Katwe)>의 대본을 받았다. 우간다의 슬럼가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소녀 피오나 무테시가 세계적인 체스 대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나이르 감독은 그녀가 피오나의 어머니 해리엇 역할을 맡아주길 바랐다. “대본을 5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매니저에게 ‘꼭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메일을 썼어요”라고 루피타는 말했다.
“우간다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네 아이의 강인한 어머니 역할이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제안 받을 거라고 한 번도 예상해본 적 없는 역할이기도 했어요.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일어난 희망찬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대본 속에서 저의 모든 꿈이 실현되고 있었어요.”
나는 얼마 전 다나이 구리라(Danai Gurira)의 브로드웨이 연극 <이클립스트(Eclipsed)> 무대에 오른 그녀를 보았다. 루피타는 라이베리아 군사령관의 첫 번째 아내와 세 번째 아내와 살고 있는 열다섯 살짜리 라이베리아 소녀를 연기했다. AK-47을 든 전사인 두 번째 아내가 등장해 전투에 참가하라고 설득할 때까지 소녀는 네 번째 아내가 될 것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루피타는 이 연극에서 뛰어오르고, 울부짖고, 숨고, 아이의 순진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등 놀라운 몸 연기를 선보였다. 구리라는 “루피타는 작업할 때 엄청난 지성을 발휘해서 아주 심오하고 복잡한 결정을 내립니다. 캐릭터의 진정성과 특별함을 구현하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어요”라고 말한다. “엄청난 사전 준비로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때문에 매 순간 능력의 150%를 발휘합니다. 작가가 꿈꾸는 이상적인 배우죠.”
지난 2014년은 루피타에게 동화나 할리우드에서만 일어날 일로 가득한 해였다. <노예 12년>에 출연한 31세의 배우가 순식간에 패션, 뷰티, ‘쿨’의 아이콘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우아함과 장난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피부색의 장벽을 깬 스타. 오스카 시상식으로 이어진 6개월 동안 그녀는 66개의 레드 카펫을 돌았고 <피플>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선정되었으며 수많은 잡지의 커버를 장식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연기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노예 12년>의 감독이자 아티스트인 스티브 맥퀸은 루피타에게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했다. “첫 영화를 보았을 때나 처음으로 멋지게 차려입었을 때로 돌아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상기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것으로부터 유혹당할 수 있어요.” 루피타는 <이클립스트>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자신에게 생긴 오스카 파워를 이용했다. 그리고 <퀸 오브 카트웨>와 앞으로 선보일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의 <아메리카나(Americanah)>를 각색한 영화에서 세상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자신의 지명도를 이용한 것이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해적 마즈 카타나, 마블 <블랙 팬서>의 나키아, <정글북>의 엄마 늑대 락샤 같은 가공의 캐릭터들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루피타는 아프리카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배우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유기적으로 일어났다.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확장하고 다양화하기 위해 저의 위치를 이용하는 것이죠. 이 일에 큰 열정을 느끼고 있기에 의도적이고 의미 있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마치 새로운 명성이 가져다준 특권과 짐을 침착하게 감당하며 메신저로 활동하도록 지명 받은 것 같다. 미라 나이르 감독과 루피타는 마치 모녀간처럼 알고 지내는 사이다. 나이르의 남편인 우간다의 정치학자 마흐무드 맘다니는 60년대 후반 마케레레 대학에서 학생 운동을 할 때부터 루피타의 아버지와 친구였다. 루피타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랑(The Namesake)>을 찍을 때 나이르의 인턴으로 활동했다. 나이르가 캄팔라에서 동아프리카 영화감독들을 위한 실험실인 마이샤(Maisha)를 만들고 있을 때 루피타는 제작 코디네이터로 합류했다. 물론 당시에도 많은 젊은 감독들이 그녀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주길 원했다. “루피타는 자신의 뿌리를 알고 있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녀는 가족과 유랑 생활을 하면서 삶의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덕분에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과 자신이 대변하는 대의에 명민하게 접근합니다”라고 나이르는 말했다.
다음 달에 나는 케냐로 루피타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루오족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났다. 빅토리아 호수 인근에 있는 마을이다. “우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방문하고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어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촌들이 전 세계에서 이곳으로 모였죠”라고 루피타는 말했다. 그녀는 베이비 블루 홀터 드레스에 인도네시아의 머리 두건인 우뎅을 두르고 있었다. “남자들이 우뎅을 두른 걸 보고 제게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약간 문화적 도용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상당히 만족한 듯 말했다. 우리는 그녀가 머물고 있는 아카시아 프리미어 호텔에 있었다.
오후에는 가족 소유의 땅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리는 철로와 지평선 위에 균형을 잡고 있는 스톤헨지 규모의 이상한 바위들을 지나갔다. 그중 가장 유명한 바위는 ‘키트 미카이(Kit Mikayi)’인데, 루오 말로 ‘첫 아내의 묘비’라는 뜻이다. 루오란 루피타의 가족이 속한 부족의 이름이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한다. 루오족은 케냐 전역, 남수단, 우간다, 탄자니아 등지에 퍼져 살고 있고, 이 바위들이 있는 곳은 그들에게 여전히 성스러운 순례지이다.
루피타는 케냐의 명망 있는 가문의 여섯 자녀 중 둘째 딸이다. 어머니는 아프리카 암 재단을 운영하고 있고, 아버지는 상원의원이자 정치 운동가이며 전직 대학 강사이다. 루피타와 형제자매들은 사람들의 시선, 특권, 정치 상황 사이를 오가면서 성장했다.
마을에 위치한 샘물에는 고조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조부모 소유의 땅에는 이 지역 최초의 성직자였던 루피타의 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작고 위엄 있는 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고 마을에 기독교를 전파했으며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루피타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할머니는 이 지역 출신의 고아 소녀들을 위한 기숙사를 지었다. 소녀들이 구혼자나 집안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루피타의 아버지 피터는 안뜰에서 과거 자신의 정치 활동에 대해 아주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시위를 주도하고, 구금되어 심문을 받고, 케냐 대통령 다니엘 아랍 모이의 집권 시절 비밀 요원들이 집을 수색했던 이야기까지. 그의 동생 찰스는 겨우 26세의 나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족들은 그가 페리에서 바다로 던져졌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간접적인 형벌이었어요. 파시스트 정권은 당사자를 잡을 수 없으면 대신 아내나 삼촌을 잡아갔습니다”라고 피터는 말했다.
1981년, 피터와 도로시는 첫째 딸 자와디를 데리고 자진해서 망명했다. 그는 멕시코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루피타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딸에게 ‘새벽에 태어나다’라는 의미를 담은 루오식 이름 ‘아몬디’도 지어주었다. 가족들이 나이로비로 돌아왔을 때 고난도 함께 돌아왔다. 피터는 악명 높은 고문실인 냐요 하우스로 보내졌다. 더럽고, 춥고, 배고프고, 매일 심문을 받는 나날이었다. “고문은 인간성을 말살시킵니다.” 자녀분들도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나요?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아이들에게 모두 얘기했어요. 자와디는 트라우마에 시달렸어요. 그런 상황이 그 아이로 하여금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루피타도요? “그런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루피타의 문제는 자와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거예요. 자와디 때문에 공포에 떨었지요. 자매니까요. 루피타가 자신의 개성을 발견할 때까지 그랬어요.”
루피타는 유치원생 때 이미 연기를 하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했다. 나이로비에 있는 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시절, 웬만한 뮤지컬에 모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제가 그곳에 갔을 때 ‘루피타가 어쩌고, 루피타가 저쩌고’ 하는 얘기가 계속 들렸어요. 그래서 슈퍼모델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어느 케냐 프로듀서가 말했다. “모든 사람이 그녀에 대해 얘기했어요. 걸음걸이가 특이했거든요.”
나는 루피타의 가족과 겨우 하루를 보냈지만 그녀의 자신감과 자유로움의 근원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머니 도로시는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정치 활동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그늘이 되어준 나무였다. 그러면서 자녀들의 관심사를 개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다. 루피타가 14세 때 이모는 나이로비의 유일한 레퍼토리 극단인 피닉스 플레이어스(Phoenix Players) 오디션을 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루피타를 리허설에 데려가고 나이로비 배우계에서 이름을 굳힐 수 있도록 차에 앉아 자신의 일을 하며 기다린 건 도로시였다. “어머니는 꿈 차트를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단기, 장기, 중기적으로 뭘 하고 싶니?’라고 묻곤 하셨어요. 꿈을 밖으로 공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믿으셨지요”라고 루피타는 회상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퀸 오브 카트웨>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소녀들처럼 피오나도 물을 길어오기 위해 몇 킬로미터씩 걸었고 어머니를 도와 하루 종일 빨래와 요리를 했다. 밤이 되어서야 체스를 공부할 짬이 났고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해리엇은 피오나를 위해 등유를 사려고 자신의 옷감을 판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부모가 어떻게 자녀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는지 보게 됩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시야가 좁기 때문이지요.” 이 말을 하면서 루피타는 양손으로 눈 옆을 가렸다. 반면 루피타의 가족은 극적이고 분명한 행동을 갈망하는 리더를 키워냈다. 19세에 그녀는 머리를 밀었다. 당시에 그것은 아주 소수의 소녀들만 감행하던 행동이었다. “제 두상이 어떤지 알고 싶었어요” 미용실에 가는 것도 지겨웠다. 머리를 자라게 놔두면 매주 스타일링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은 두피에 화상을 입히고, 딱지와 가려움증을 유발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잊으셨지만 사실 아버지 말씀을 따른 거예요. 언젠가 아버지는 머리를 손질하라고 돈을 주시며 ‘머리를 몽땅 자르는 건 어때?’라고 하셨거든요.” 아버지는 바빠서 2주 동안 알아채지 못하다가 뒤늦게 깨닫고 깜짝 놀랐다. “머리카락은 어디 갔니?” “아버지가 자르라고 하셨잖아요!” 그녀는 허벅지를 치면서 웃었다.
아마도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다. 흑인 미국 대통령,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헤어 문제. 루피타의 헤어스타일이 대륙 전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건 분명하다. 삭발한 머리는 아름답다. 바짝 자른 머리, 커다란 귀고리, 오바마 라인으로 불리는 땋은 익스텐션이나 땋은 헤어를 머리에 빙 두른 벤소우다 스타일과의 대비. 동네 미용실의 미용사는 4년 전까지만 해도 머리를 민 소녀들이 드물었다고 말했다. 삭발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루피타가 그걸 바꿨어요”라고 말했다.
새로운 지평을 여는 건 힘든 과정이다. 그 과정은 때로 아주 강인한 사람조차 상처를 입힌다. 2014년 4월에 한 할리우드 잡지는 오스카 이후의 루피타에 대해 충격적인 분석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는 그녀의 미래가 불투명하며 그녀의 검은 피부가 보다 밝은 피부를 선호하는 영화계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트레이시 크리스찬이라는 연예 에이전트는 “비욘세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피부가 좀더 밝다면 더 많은 사람이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루피타에게는 2년 반에서 3년 정도 시간이 남은 것 같다. 그 사이에 시리즈물, 즉 크로스오버 대작에 출연하거나 중요한 감독에게 캐스팅된다면 성공할 것이며 스스로 독특한 궤도를 만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빅토리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아카시아 프리미어 호텔에 있었다. 루피타는 히아신스가 피면서 호수가 녹색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 식물이 아름답긴 하지만 수질오염의 징후이며 물고기 부족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찬이라는 여자의 말에는 귀를 막아야 해요. 저는 살아 숨 쉬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제가 아침에 무엇을 먹었고, 그것이 어떻게 제 위에 들어 있는지, 그리고 왜 제가 그 오디션을 잘해내지 못했는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저는 제 자신과 피부색, 혹은 보다 큰 사회와 그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도망칠 수 없어요. <에센스>(미국 흑인 여성들을 위한 월간지) 시상식에서 사람들과 공감하며 깨달은 거예요.”
“유럽의 미적 감각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녀는 불쑥 말했다. “2000년대 초반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 못한 여성이 나오는 TV 광고를 본 적이 있어요. 그녀는 광고하는 제품을 사용하고, 피부가 더 하얘진 뒤 직업을 구하죠. 나이로비에서는 성장할 때 밝은 피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입니다. ‘검은 맘바(아프리카산 독사)라고 불리는 것.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더 낫다고 여겨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서서히 타오르는 분노를 상상할 수 있나요?”
더 이상 그것이 더 낫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런웨이에 ‘밤처럼 검은’ 남수단 출신 모델 알렉 웩이 등장했고 잡지와 TV는 그녀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루피타는 자신과 아주 똑같이 생긴 여성을 두고 세상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걸 보며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문을 본격적으로 활짝 열어젖힌 건 루피타다. <퀸 오브 카트웨> 제작에 참여한 한 우간다계 영국 여성은 루피타에게 “당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저에게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과거에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오디션 요청도 받고 있어요. 모두 당신이 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감정을 과장되게 드러내지 않고 사실만 나열한 발언이었다. “알렉 웩은 흑인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어요. 제가 누군가를 위해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루피타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의 장점을 설명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를 들어 그녀는 랑콤 광고를 따낸 최초의 흑인 여성이다. “그 일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사진 찍히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렇죠?”
루피타는 이미지, 말, 그 말의 실천, 인내심의 힘을 직접 경험했다. “저는 아버지가 연설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아버지는 상당히 뛰어난 연설가입니다. 정치는 행위 예술입니다.” 형제자매들과 아버지 선거 유세를 다니고, 당가를 부르고, 춤동작을 만들고, 유권자들에게 연설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녀는 반대의 경우도 맞다는 걸 알 만큼 영리하다. 그래서 코끼리를 구하고 출산 때 산모의 사망을 종식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었다. 살리마 비스람이 시작한 아동용 백팩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충전용 전지와 태양열 전지판이 장착된 아동용 백팩인데, 아이들이 학교까지 걸어가는 동안 배터리가 충전되는 방식이다. 이 백팩이 있다면 아이들이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끝낸 늦은 밤 배터리가 LED 램프에 전기를 공급해서 공부를 할 수 있다. 루피타는 이런 발상이 마음에 들었고 백팩을 위한 문구 ‘Power Is in Your Step’도 직접 고안했다. 지금까지 비스람은 500개의 백팩을 만들었고 현재 3,000개를 만들고 있다.
“다른 흑인들을 위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저는 그 발판을 마련했을 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니까요. 그것이 <이클립스트>와 <퀸 오브 카트웨>가 아주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프리카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녀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초상화이자 인종 해설서입니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세 대륙을 아우르는 두 나이지리아인의 러브 스토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이런 작품은 처음일 것이다. 루피타는 이 책을 사전 주문해서 정신없이 읽고 난 후 두 사람 모두를 알고 있는 케냐 작가 비냐방가 와이나이나에게 자신의 이메일을 아디치에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노예 12년>이 시사회를 열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그녀는 판권을 사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당신 책을 읽으면서 큰 소리로 얼마나 많이 웃고 울었는지 모릅니다”라고 그녀는 아디치에에게 썼다. “저는 아프리카 배우로서 늘 생기에 가득 찬 캐릭터들을 찾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과 욕구에 사로잡힌 복잡한 캐릭터들 말입니다.”
<아메리카나>는 그런 캐릭터로 가득하다. 루피타는 이모를 위해 베이비시터를 하다가 대학에 가는 나이지리아 학생 이페멜루를 연기하고 싶었다.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와 당황스럽고, 공격적이고, 불쾌하고, 풍성하고, 혜택받은 길을 두루 경험한다. 이페멜루는 곧 ‘나의 비미국 흑인 동료들에게: 미국에서 당신은 흑인이야, 친구’라는 제목과 “당신이 여자라면 당신의 나라에서 하던 것처럼 속마음을 얘기하면 안 돼요. 미국에서 센 흑인 여성은 무서운 존재거든요”라는 코멘트와 함께 익명의 블로그를 시작하고 빠르게 인기를 얻는다. 광고주들은 광고를 싣고 싶어 하고 그녀는 곧 인종 문제와 관련해 ‘잇 걸’이 되며 회의와 워크숍에 초대된다.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불안감을 더욱 심화시켰다. 루피타가 이페멜루의 경험에 공감한 건 분명하다.
아디치에는 루피타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 호기심을 느꼈다. 그녀는 와이나이나에게 루피타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진실한’ 사람인지 물었다. 왜냐하면 ‘진실한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냐가 “네, 아주 진실한 사람이에요”라고 답했을 때 얘기를 진척시키기로 결심한다. “저는 각색의 중심에 젊은 아프리카 여성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어요”라고 아디치에는 말한다.
캄팔라의 카트웨 슬럼가 한쪽 모퉁이 완만한 오르막길에 1층짜리 건물이 서 있다. 갈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철판 지붕으로 덮인 깨끗하게 손질된 쉼터이다. 그리고 그곳은 아주 축복받은 곳이다. 카트웨에서 높이는 부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여느 우간다의 슬럼가처럼 카트웨는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배수로에서 썩고 있는 열악한 곳이다. 평지에 살고 있다면 바닥이 너무 불안정해서 비가 오면 살림살이가 휩쓸릴 수 있다. 의지할 만한 복지 정책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분별력이 생존을 좌우한다.
이곳의 체스 클럽에서 로버트 카텐데(데이비드 오예로워 분)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체스를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영화에서 피오나는 오빠 브라이언을 몰래 따라가서 클럽의 나무 벽 사이로 오빠를 훔쳐본다. 코치인 로버트가 피오나를 보게 되고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한 어린 소녀가 체스 게임에서 졸과 여왕을 잡으며 피오나에게 체스 게임에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체스에서는 작은 게 큰 게 될 수 있어”라고 소녀는 말한다. 로버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소녀들은 소년들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녀가 빨리 배우고 이기는 것을 알아챈다.
오늘 진짜 해리엇이 노란 자수가 들어간 밝은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잠깐 들렀다. 우리는 그녀가 로버트를 믿지 못해서 피오나를 클럽에서 데리고 나갔던 시절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실패합니다. 자신의 옷감을 팔았지만 그 돈으로 충분하지 않았죠. 결국 그들은 수업료를 갚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카트웨의 대부분 사람들처럼 자신의 꿈을 접고 생존에만 매달렸다. 아이들은 가지와 옥수수를 팔았다. “그리고 이제 로버트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아이들을 체스 클럽에 데려가겠어요.’” 해리엇이 미소 지었다. 나는 무엇이 로버트가 아이들을 다시 데려가 시합에 내보내도록 그녀를 설득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팔짱을 끼며 “그의 신념이오”라고 말했다. 루피타는 해리엇이 아주 내성적이지만 매우 자신만만하고 그녀에게서 빛이 난다고 표현했다.
디즈니 우간다 지사의 부사장인 텐도 나겐다가 나이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그녀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자극을 받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녀는 해리엇이 자신의 가치를 타협하는 것만 빼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용감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트웨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했다. “우리는 천재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 그리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모든 사람을 버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 20대인 피오나는 학교와 체스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300여 개의 체스 클럽도 열었다. 이런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이르뿐만 아니라 루피타도 흥분시켰다. 루피타는 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과 몽상가들에게 끌리고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을 널리 알리고 싶다.
“제 마음속에는 나침반이 있어요”라고 그녀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말한다.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가 나타날 때마다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른다. “지금 저는 만들고 싶은 작품을 직접 책임지고 싶은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녀는 캐스린 비글로와 <셀마>의 감독인 에바 두버네이(Ava DuVernay)처럼 위험을 감수하는 감독들과 작업하고 싶지만 아사타 샤쿠르(Assata Shakur)처럼 자신만의 급진적인 길을 걸어간 용감한 여성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다. 아사타 샤쿠르는 블랙 팬서(Black Panthers)와 흑인 해방군(Black Liberation Army)의 일원이었고 몇몇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교도소에서 탈출해 쿠바에서 정치적 망명 생활을 했고 여전히 FBI의 수배를 받고 있다. 그녀의 선택, 그녀의 운명은 분명 환상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미래의 프로젝트로 말이에요”라고 루피타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혹시 알아요?”
- 글
- 엘리자베스 루빈(Elizabeth Rubin)
- 패션 에디터
- 토니 굿맨(Tonne Goodman)
- 포토그래퍼
- MARIO TESTINO
- 헤어 스타일리스트
- 버논 프랑수아(Vernon François)
- 메이크업 아티스트
- 닉 배로스(Nick Barose)
- 프로덕션
- 온 스크린 프로덕션(On Screen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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