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Impossible
‘임파서블 버거’의 등장으로 미트 러버들이 술렁이고 있다. 고기 한 점 들어 있지 않지만 맛있고 건강하며 가격도 저렴하고 환경에도 이로우니, 베지 버거를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고기 없는 세상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미국으로 베지 버거 원정을 떠나봤다.
뉴욕을 대표하는 햄버거가 ‘쉐이크쉑 버거’라면, 지금 뉴욕에서 가장 핫한 버거는 베지 버거인 ‘임파서블 버거’다. 뉴욕을 대표하는 한국계 셰프 데이비드 장과 푸드 스타트업 기업인 ‘임파서블 푸즈’의 협업으로 만든 ‘임파서블 버거’는 소고기 맛에 까다로운 육식주의자들조차 두 손 들게 만든 발명품이다. 작년 여름, 데이비드 장의 웨스트 빌리지 레스토랑 ‘모모푸쿠 니시(Momofuku Nish)’에 이 버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뉴욕의 모든 음식 매체와 미식가들은 이 놀라운 버거 체험기를 앞다투어 업데이트하곤 했다. <복스(Vox)>는 임파서블 버거를 두고 ‘음식계의 테슬라(전기 자동차)’라고 비유했으며, <버즈피드>의 육식 애호 기자는 “이건 흑마법이다”라며 경이감을 표했다. 임파서블 푸즈의 패트릭 브라운 대표는 회사의 목표가 “미트 러버들이 현재 육류에서 취하는 것보다 더 선호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고 임파서블 버거를 통해 그 ‘불가능한’ 도전에 대한 신뢰를 얻고 있다. 고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베지 버거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고안된 메뉴였으나 고기의 맛에 거의 미치지 못해 ‘미식’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차였다. 뉴욕에선 베지 버거계의 ‘쉐이크쉑 버거’라 불리던 채식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바이 클로에(By Chloe)’의 버거가 그나마 맛있는 베지 버거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베지 버거는 언제나 베지 버거로서만 평가를 받았다. 베지 버거가 햄버거가 될 수는 없었다. 원재료가 대두이든, 밀 글루텐(세이탄)이든, 두부이든, 녹말이든, 소고기와는 한참 거리가 먼 맛과 질감이었다.
임파서블 버거는 소고기 패티의 분자 하나하나를 분석한 다음 ‘육즙’ 재현에 매진했다. 상온에서 고체 상태인 코코넛유가 소기름을 대체하고, 그릴에 구울 때 표면이 바삭해지도록 전분 단백질을 첨가했다. 또 효모에서 분리한 유기 철분(Heme)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붉은색을 구현했다. 그 결과 미디엄으로 익힌 소고기와 거의 흡사한 식물성 단백질 패티가 완성됐다. 잡지 <푸드&와인>은 이 패티가 시중의 간 소고기보다 좋은 풍미를 가지고 있다며 비프 타르타르 재료로 추천하기도 했다. 과학으로 빚어낸 패티의 장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영양 면에서 기존 햄버거와 비슷하지만 콜레스테롤이 없어 더 건강한 음식이다. 구제역과 광우병의 공포에서 벗어나 마음껏 소고기 맛 단백질을 즐길 수도 있다. 환경적인 효과는 더 긍정적이다. 임파서블 푸즈의 주장에 따르면 이 단백질을 만들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통 목축업의 5분의 1이란다. 목축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산업이고 지구 온난화에 일조하고 있다며 유엔 보고서 등을 통해 비판을 받아오는 동안, 스타트업 기업에선 육즙이 흐르는 베지 버거를 창조해냈다. 더 이상 ‘내가 환경을 파괴하려고 고기를 먹고 있나’ 하며 육식 애호가로서 자괴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육류 섭취를 반으로 줄이면 탄소 발자국을 35% 이상 줄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1년 치 육식 중 반을 식물성 단백질로 대체한다면 지구 온난화를 늦출 수 있을지 모른다.
시장은 이런 혁신적인 변화를 빠르게 반영한다. 뉴욕의 한 푸드 컨설팅 그룹이 꼽은 2017년 푸드 트렌드 중 하나가 ‘채식 시장의 급성장’이고 그 일례가 식물성 단백질 붐이다. 비단 임파서블 버거만 이런 임파서블 미션에 가담하는 게 아니다. 근래 미국 오가닉 슈퍼마켓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비욘드 미트(Beyond Meat)’ 제품으로 집에서도 채식 버거를 조리할 수 있다. 완두콩, 녹말, 셀룰로오스,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코코넛유를 넣어 빚은 핑크색 덩어리는 제법 소고기 같은 인상이다. 포장을 뜯으면 참치 통조림 냄새가 나지만 익히면 고기 향이 난다. 거의 고기 수준의 질감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씹다 보면 소고기 버거를 먹는 듯한 착각이 든다. 소고기 맛이지만 소고기의 반값이어서 소비자의 관심을 더 받는 상품이다. 언젠가 한 미국 슈퍼마켓에서 닭 맛에 가까운 두부 샐러드에 실수로 치킨 샐러드 스티커를 붙여서 팔았는데 이틀 동안 구매자 중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도 있다.
파인다이닝도 베지 버거 개척에 나섰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와 ‘블루 힐(Blue Hill)’은 자체적으로 베지 버거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환경 운동에 동참하기 위한 의도이기보다 새로운 식재료를 정복하겠다는 셰프들의 열정으로 인한 트렌드인 듯 보인다. 좋은 고기를 가지고 시즈닝으로 승부하는 미트볼처럼 베지 버거는 셰프들의 내공을 실험하는 재미있는 경연 아이템이 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임파서블 버거를 론칭한 데이비드 장은 베지 버거 대중화에 앞장선 셰프인 셈이다. 소고기와 비슷하지만 다른 재료를 가지고 ‘맛있음’을 전달하기 위해 그는 쌀가루로 만든 번을 사용해 바삭한 식감을 더했다. 자신만의 특별 소스를 첨가해 고기보다 약한 식물성 단백질의 감칠맛을 영리하게 보완했다. 말로만 들으면 복잡한 과학의 산물이지만 눈앞에 등장한 버거는 이보다 단순할 수 없는 모양새다. 단백질 개발에 대한 최고의 과학기술을 정통 요리에 접목한 결과다. 정말 ‘맛’이 있냐고? 소고기 맛이 나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아니다. 햄버거든, 베지 버거든, 뉴욕에 개성 있는 맛있는 버거가 하나 늘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맛이다. 뉴욕에서 성공을 거둔 임파서블 버거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로 퍼져나가며 독자적인 버거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전문가들이 말하는 올해 푸드 트렌드 중 하나는 ‘부처 투 테이블(Butcher to Table)’이다. 전통적인 정육점이 부활하고, 품질 좋은 고기로 만든 육류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 뜨고 있다. 따라서 올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좋은 고기가 존재할 예정이다. 하나는 장인 정신으로 소규모 목장에서 사육한 고품질 고기, 다른 하나는 과학자들이 실험을 거듭해서 만들어낸 식물성 고기다. 민폐형 대량 목축에 맞서 미래의 고기를 구하려는 노력이 2017년을 선도한다. 질 좋은 재료를 통한 차별화 전략이 2017년 미식의 한 축이라면, 다른 쪽에선 첨단 과학기술이 미식의 방향을 예측 불허로 바꿔놓고 있다. 우리는 현재 베지 버거가 피를 흘리는 미래에 살고 있다. SF 영화 같은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니, 꽤 근사한 순간이지 않은가.
- 글
- 홍수경(칼럼니스트)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KIM BO SUNG
- 모델
- 최아라
- 헤어 스타일리스트
- 김승원
- 메이크업 아티스트
- 김지현
- 네일 아티스트
- 유니스텔라(Uni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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