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의 사랑스러운 미로정원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첫 꾸뛰르 쇼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페미니즘 대신 여성스러운 우아함을 선보였다.
“섬세한 작업을 할 때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를 정원으로 디자인했어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는 미로처럼 디자인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런웨이 무대를 설명했다. 이번 쇼장은 커다란 나무와 나뭇가지들로 장식되었다.
발렌티노에서 피에르 파올로 피촐리(Pierpaolo Piccioli)와 함께 했었던 마리아 그라치아는 그녀의 첫 디올 오뜨 꾸뛰르 쇼에서 여성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강조했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여야 해)’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선보였던 첫 레디투웨어 데뷔 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지난 반트럼프 시위에서 그녀와 배우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이 입었던 이 티셔츠는 디올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인 헬렌느 메르시에 아르노(Hélène Mercier Arnault)의 쇼케이스에도 전시됐었다.
이번 디올 컬렉션은 겉보기엔 우아하고 온화했지만, 그 뒤에서 갈등과 격변을 느낄 수 있었다. 플리츠가 들어간 오간자로 만들어진 50년대 테일러드 재킷부터 밑단에 술 장식이 들어간 자수 드레스까지, 마리아 그라치아는 ‘가벼움’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컬렉션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바로 액세서리. 모자 제작자 스테판 존스(Stephen Jones)가 제작한 매력적인 헤드피스와 마스크는 쇼가 끝나자마자 이어진 디올 무도회(‘Dior Ball’) 파티에 제격이었다.
과도한 여성스러움과 화려한 스타일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부터 현대적인 라프 시몬스(Raf Simons)까지, 디올의 수많은 디자이너들과 일해온 CEO 시드니 톨레다노(Sidney Toledano)는 “이 순간을 정말 오래 기다려왔다”고 전했다.
디올 하우스는 꾸뛰르와 레디투웨어에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여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여성 디자이너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프닝 룩인 올 블랙 룩들은 플리츠가 들어간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졌다. 여기선 딱히 크게 놀라운 메시지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섹시함과 노출이 절제되어 알파 메일(alpha male)에 맞설 만한 룩들을 제시했다.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컬렉션에서 예쁜 룩을 만들어내긴 어렵지만, 마리아 그라치아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교묘하게 잘 표현해냈다. 그녀는 “디올의 톤을 몇 가지 색에 제한시키고 싶지 않았으며, 정해진 몇 가지 색으로 디올의 정의를 내릴 수 없게끔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꽃을 납작하게 눌러 튤 드레스와 라피아 가운 장식으로 사용했어요. 럭셔리 자수 장식을 미완성된 듯한 느낌으로 넣는 건 저에게 시를 쓰는 것과 같죠.”
그녀가 쓴 컬렉션 노트에는 가벼워 보이는 옷들에 더해진 섬세한 디테일에 대한 설명까지 적혀 있었다. 예를 들어, 라피아 술 장식이 들어간 자수 드레스는 1,900시간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까지.
컬렉션 노트에는 마리아 그라치아가 컬렉션에 추가한 예술가 클로드 라란느(Claude Lalanne)의 도금된 주얼리 얘기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미로정원에 대한 크리스찬 디올만의 해석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꽃은 여자 다음으로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창조물입니다. 우아하고 굉장히 매력적이죠. 하지만 조심히 다뤄야 한답니다.” 1957년도에 세상을 떠난 크리스찬 디올이 했던 말이다.
이번 시즌에 선보인 디올 컬렉션은 21세기 페미니즘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리아 그라치아는 그녀가 앞으로 선보일 여성 패션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 글
- 수지 멘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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