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y Private
다양한 브랜드를 편집하는 데 공들였던 패션 숍이 이제 독자적 브랜드를 선보이는 데 열중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패션 PB 브랜드 시대.
지난 9월 13일, 뉴욕 웨스트 빌리지의 어느 갤러리에는 요란한 파티가 한창이었다. 인디 밴드가 소란스러운 라이브 연주를 벌이는 가운데,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은 테이블 위 도자기를 바닥 위로 던지고 있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갤러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이 요상한 패션 풍경을 보며 그저 웃고 있었다. 그 난장판이 뉴욕 다운타운에서 가장 쿨한 편집숍으로 손꼽히는 마리암 나시르 자데의 데뷔 프레젠테이션이기 때문이다.
“이란에서는 도자기를 깨면 악마를 쫓는다는 믿음이 있어요.” 패션 위크 데뷔를 위해 불운을 없애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한 디자이너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미신은 필요 없는 듯했다. 미국 <보그>는 뉴욕 패션 위크의 하이라이트로 그 풍경을 꼽았고, 이 근사한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숍에 대한 관심도 갑자기 높아졌으니 말이다. “저는 원래 매장을 열기 전에 디자인을 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다시 제 옷을 디자인하고 싶단 생각을 했죠.” 자데는 구두가 특히 인기인 자신의 라인을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또 편집 숍을 운영한 게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아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옷을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면서 디자인하고 싶은 옷과 여성들을 직접 깨달았던 것이다.
이렇듯 편집숍의 ‘인하우스 라인’ 혹은 ‘프라이빗 브랜드’는 패션의 새로운 경향이 되고 있다. 꼼데가르쏭의 레이 가와쿠보는 자신의 옷을 흥미로운 공간에서 판매하기 위해 도버 스트리트 마켓이라는 편집 스토어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패션의 흐름이 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오프닝 세레모니는 2002년 오픈과 동시에 자신의 라벨을 만들었다. “사실 우리가 바잉한 옷이 다 팔리는 바람에 뭐라도 매장에 걸어놔야 해서 스웨트셔츠를 만들었어요.” 언젠가 캐롤 림이 그 시작을 밝혔다. “움베르토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우리를 위해 스웨터를 만들어주기도 하셨죠.”
요즘 멀티숍의 PB 브랜드는 자신의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좀더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이 됐다. 스웨덴의 멀티숍 ‘트레비앙’은 아크네 스튜디오와 드리스 반 노튼 옆에 자신들이 디자인한 심플한 옷을 진열하고 있다. 우아한 인터넷 숍 ‘더 라인’을 운영 중인 스타일리스트 바네사 트라이나는 ‘프로타고니스트’라는 PB 브랜드를 뉴욕 패션 위크에서 소개하는 중이다. 더 라인은 또 디자이너 캐서린 홀스타인의 새로운 브랜드 ‘카이트’ 론칭을 돕기도 했다.
이제는 뉴욕과 LA를 방문하는 여자들의 필수 탐방지 ‘크리처스 오브 컴포트’ 역시 멀티숍에서 탄생한 브랜드. LA의 멜로즈 애비뉴와 뉴욕의 소호에 자리한 같은 이름의 숍을 운영하던 제이드 라이(홍콩 지오다노 창립자의 딸)가 자신이 팔고 싶은 옷을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다. “처음 2년간은 매장을 지켰어요. 거의 매일 매장에서 손님들을 만났죠. 또 바잉을 위해 여러 곳을 다니면서 디자이너들을 만났어요. 그러다가 좀더 직접적으로 제 비전을 현실화시키고 싶었습니다.” 레이첼 코미, 르메르 등을 구입하기 위해 숍을 찾은 손님들에게 필요한 그 뭔가를 직접 선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바람은 서울에도 불었다. 올겨울 분더샵은 처음으로 ‘Boon The Shop’이라는 라벨을 단 모피 컬렉션을 선보였다. 20년대 파리에서 시작한 모피 브랜드 ‘스프렁 프레르(Sprung Frères)’의 디렉터였던 발렌틴 탕기와 함께 선보인 컬렉션이다. 시어링과 밍크를 기본으로 한 라인은 분더샵 고객들에게 또 다른 옵션이 되어줄 것이다. 분더샵은 앞으로도 새로운 프라이빗 라인을 준비 중이다. “올가을엔 캐시미어와 모피 라인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젊은 패션 팬들이 즐겨 찾는 비이커는 스웨터와 코트, 팬츠 등 클래식한 아이템을 구비한 채 기다리는 중이다. 또 독립 편집 스토어인 레어마켓은 그들이 판매하는 로지 애슐린이나 엘러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웰던’이라는 프라이빗 브랜드로 눈길을 끌었다.
새해가 시작된 후 2017년을 예측하는 기사와 논평이 넘쳐난다. 올 한 해의 흐름을 알리려는 기사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PB 브랜드’다. “가성비 甲 PB로 저성장 뚫는다” “장바구니 채우고 지갑 덜 여는 PB 제품” “더 다채로운 PB로 승부수 띄웠다” 등등. 이러한 공식을 패션계로 가져오면 달라진다. 가성비 대신 다양한 고객의 개성을 살리고, 눈부신 성장을 노리기보다 스토어의 비전을 담은 패션 PB 브랜드.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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