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와 쿠마
마드모아젤 제니, 그녀의 반려견 쿠마 그리고 <보그> 랜드!
‘제니(Jennie)’는 지난 몇 년간 가장 파격적 존재감을 드러낸 고유명사였다. 제니가 <보그>와 처음 만난 건 스포티즘 컨셉의 블랙핑크 화보 촬영장에서였다. 아찔한 추위 가운데 이태원 서핑 바와 한강공원을 오가며 오밤중까지 진행된 촬영이었다. 제니가 카메라 앞에선 180도 다른 인물로 변하던 순간만큼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뷰파인더를 응시하며 오닉스처럼 빛나는 눈빛을 보내는 건, 뭐든 열심히 해야 하는 신인 뮤지션의 열정 혹은 패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래 축적해온 고유한 아우라라고 해도 될 만큼 능수능란해 보였다. “처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췄을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요.” 제니가 바로 그 새까만 눈동자를 한 번 쓱 굴리며 얘기했다. “어릴 때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그 시절 사진을 보면 춤추거나 노래 부르는 모습이 많아요. 친구들과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게 일상이었죠.”
4년간 제니는 <보그>라는 플랫폼을 통해 팔색조, 카멜레온 같은 모습으로 소개되었다. 패션계와 음악계가 ‘동시에’ 주목하는 글로벌 아이콘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보그>가 전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니는 자신이 속한 그룹 블랙핑크라는 경계 안에서 3월호 커버 촬영까지 세 번의 화보를 찍었고 지난가을 샤넬 2020 S/S 패션쇼의 프런트 로에 초대되어 파리에 갔을 때 ‘마드모아젤’ 컨셉으로 파리 거리에서의 아름다운 나날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2019 F/W 샤넬 쇼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요.” ‘샤넬’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발성이 반 옥타브쯤 높아졌다. “칼 라거펠트의 마지막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다는 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영광스러운 일이었을 거예요.” 제니는 어느 인터뷰에서 샤넬이라는 초대형 브랜드와 작업하는 일이 오래전부터 꿈이었지만 때로 부담도 생긴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즐겁게 협업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브랜드와 새로운 비주얼을 만들 때, 음악 작업과는 또 다른 종류의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죠.” 오늘 제니가 촬영장에서 입은 10벌은 그녀가 지난가을 그랑 팔레에서 열린 쇼에서 직접 감상한 버지니 비아르의 샤넬 2020 S/S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이다.
제니가 아티스트로서 스스로 ‘룰을 깨뜨렸다’고 생각한 지점도 샤넬과 이어져 있었다. “샤넬 앰배서더로 활동하면서부터였어요. 저는 음악을 매개로 작업하는 인물인데, 패션이라는 장르에서도 활약한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신기하고 믿기지 않아요.” 제니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완벽한 가능성을 보인 시점 역시 1년 전 샤넬 서울 플래그십 오프닝 행사에서였다. 퍼렐 윌리엄스와 나란히 라인업에 오른 공연에서, 완벽한 존재감을 뽐낼 수 있는 젊은 뮤지션은 많지 않을 것이다.(<보그>는 그 무대와 공연을 유튜브 생중계로 지구촌에 전해, 가공할 만한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제니는 연습생 시절 리한나의 노래를 듣고 라이브 무대 영상도 자주 찾아 보았다고 말했다. 아티스트로서 지닌 무한한 영향력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이젠 지구인들이 다 알다시피 리한나는 성공한 여자 뮤지션이라는 이력에 얼마 전부터 패션 브랜드 디렉터라는 수식어를 추가했다. 제니에게도 자신의 패션 라인을 론칭할 계획은 없을까. “음, 아직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만약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다면 편하고 자연스러운 저의 모습을 담고 싶어요. 화려하기보다 쉽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그런 브랜드?” 아울러 뮤지션 외에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뮤지션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사진을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기도 해요.” 사실 제니는 가방에 카메라를 늘 소지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같은 장면에 카메라에 따라, 필름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현상이 신기하다고 그녀가 말했다. “하늘을 제대로 촬영하고 싶어요. 예쁜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행복해지는데, 눈으로 본 예쁜 하늘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는 건 꽤 어렵더라고요. 오늘 함께 촬영한 사진가 홍장현과도 언젠가 협업하고 싶어요. 매번 그와 촬영할 때마다 많이 배우거든요.” 심지어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고 LP판으로 쳇 베이커의 노래를 가장 즐겨 듣는 제니는 80~90년대로 돌아가 그 시대 음악과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한다.
4월의 토요일 오후, 채광 좋은 스튜디오에 활기를 더한 건 제니의 반려견 ‘쿠마’였다. 제니가 포즈를 취하는 동안 홍장현의 카메라 앞을 서성거리며 자신 또한 카메라를 의식한 듯 피사체 역할을 해내는 쿠마를 보며 제니는 계속 웃었다.(이럴 때만큼은 그야말로 ‘엄마 미소’!) 촬영이 중반을 향하자 제니의 엄마가 딸을 응원하러 촬영장을 찾았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이들은 역시 가족이죠.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고. 특히 시작부터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어준 엄마의 영향이 제일 컸어요.” 제니가 엄마를 보며 ‘딸의 미소’를 띤 채 말했다.
1996년생 제니를 포함한 밀레니얼 뮤지션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팬들과 열렬히 소통한다. 제니의 인스타그램은 현재 한국 계정 중 팔로워가 가장 많다. 한국 수도권 인구에 준하는 2,500만 명이 넘는 팬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제니와 일상을 함께한다. 그러나 팬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단순히 노래를 듣고 소비하는 것을 초월해 제니라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야기한다. 제니 역시 그 책임감에 대해 영특하게 인지한다.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이기에 저에게 영향을 받는 친구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그만큼 책임감이 따를 수밖에요. 저 역시 어릴 때 동경하던 아티스트를 보고 꿈을 키워왔기 때문에, 제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 여겨요.”
그러한 책임감과 창의성을 장착한 채 제니가 4년간 달려온 과정의 지표는 실로 대단했다. ‘뚜두뚜두’는 유튜브 조회 수 11억을 넘었고, ‘Kill This Love’는 7억을 넘었다. 지난 일본 돔 투어 콘서트 역시 연이어 매진. 이런 기록을 갈아 치울 때마다 제니의 저 작고 귀여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맴돌까.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주신 듯해 아직까지 실감이 잘 안 나요.” 페르시아고양이처럼 마스카라를 치켜 올려 그린 제니의 눈매에 부드러운 여유가 보였다.
“그 수치가 와닿지는 않아요. 그만큼 열심히 잘해왔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죠?”
연습과 투어 일정, 앨범 준비가 얼마나 고난의 연속인지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이제 제니는 그 고난을 행복과 감사로 치환한다. “팬들로부터 즉각 즉각 반응이 올 때면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이 꽉 차요. 투어 콘서트 땐 ‘직접적인’ 에너지를 받아요. 열정적으로 저를 응원하고, 또 블랙핑크 음악을 사랑해주실 때면 이상하게도 그동안의 힘든 과정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 패션 에디터
- 손은영
- 포토그래퍼
- 홍장현
- 에디터
- 남현지
- 헤어
- 이일중
- 메이크업
- 이준성
- 네일
- 박은경
- 스타일리스트
- 박민희
- 세트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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