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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와 버버리: 체크, 메이트

2022.12.16

다니엘 리와 버버리: 체크, 메이트

런던의 클라리지스(Claridge’s) 펜트하우스에 초록빛 스웨터, 스포티한 검정 팬츠에 나이키를 신은 다니엘 리가 앉아 있다. 창밖으로 11월 중순 런던의 흐린 하늘,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빅 벤이 눈에 들어왔다. 전날 런던의 칠턴 파이어하우스(Chiltern Firehouse)에서 현지 패션 기자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재학 시절의 교수와 만나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눠서인지, 그가 조금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컬렉션으로 지치지 않았을 때만.”

올해 36세인 다니엘 리는 지난 9월 리카르도 티시의 뒤를 이어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했다. 일종의 금의환향이라고 할까? 영국에서 태어난 다니엘 리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후 런던에서 오래 머문 적이 없다. 뉴욕의 도나 카란, 파리의 셀린느, 밀라노의 보테가 베네타… 지난 몇 년간 런던은 그가 짧은 휴식을 취하거나, 영감이 필요할 때만 방문하는 곳이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하우스 버버리에 정착한 그가 시작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이유다.

아주 드물게 휴식을 취하는 날에, 리는 파트너이자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던 로베르토 볼레(Roberto Bolle)와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방문해 발레 공연을 관람하고, 콘서트에 참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안무가 크리스털 파이트(Crystal Pite)의 <라이트 오브 패시지(Light of Passage)>와 O2 아레나에서 열린 켄드릭 라마의 공연을 관람했다. 리의 집은 현재 리노베이션 중이다. “테라스가 딸린, 전형적인 런던의 집이에요. ‘찰스 디킨스풍’이 강해 마음에 듭니다. 역사가 깃든 집에 살며 그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이 집은 제가 죽고 나서도 누군가의 집이 되겠죠.”

‘다니엘 리의 버버리’는 내년 2월 20일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버버리에서 본인이 펼쳐나갈 비전을 정립할 시간이 길지 않다. 보테가 베네타에서는 8개월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당시 처음으로 브랜드를 온전히 맡게 된 그는 백스테이지에서 질문을 받지 않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지만 명확한 청사진과 흔들리지 않는 관점이 있었다. 모두가 리의 파우치 백과 카세트 백을 원했고, 스퀘어 토 슈즈는 셀 수 없이 많은 아류작을 만들어냈다. ‘아웃도어 의류’를 표방하는 버버리와도 어울릴 법한 퍼들 부츠 역시 마찬가지. 보테가의 시그니처와도 같던 그린 컬러는 패션계가 가장 사랑하는 컬러가 됐다.

리와 보테가 베네타는 2019년 열린 영국 패션 어워즈에서 네 개 분야의 상을 휩쓸며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 팬데믹 기간에도 리의 보테가 베네타는 계속 날아올랐다. 2021년 10월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와 릴 킴(Lil Kim)이 프런트 로를 빛낸 그 패션쇼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리가 돌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케어링 그룹은 상호 합의하에 리가 떠났다고 밝혔지만, 모두 그가 갑자기 보테가 베네타를 떠난 이유를 궁금해했다. 약 1년 뒤, 리는 “보테가 베네타에는 여전히 훌륭한 팀이 있습니다”라는 답을 남겼다. “길을 걸을 때, 제가 보테가에서 남긴 흔적이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그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죠.” 그가 후회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버버리의 총책임자가 된 뒤, 영국 언론이 가장 주목한 점은 바로 그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리 역시 잘 알고 있다. “어릴 때 제가 생각하는 버버리는 모든 영국인이 알고 있는 그런 브랜드였어요. 영국의 심벌과도 같죠.”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가 생산되는 캐슬퍼드(Castleford)와 개버딘 원단을 생산하는 키슬리(Keighley) 인근의 브래드퍼드(Bradford)가 고향인 리는 버버리에 애착을 갖고 있다. “어머니의 가족 중 몇 분은 버버리의 공급사 공장에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모에게 받은 은퇴 선물 역시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였죠.” 3남매 중 맏이인 리에게는 배관공으로 일하는 남동생과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하는 전문 간호사인 여동생이 있다. 둘 다 부모님과 그리 멀지 않은 요크셔에 살고 있다. 리는 영국의 의류 산업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조금 뒤처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영국의 공장이나 생산자와 일하는 것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버버리에서 리가 처음 한 일은 모든 팀원을 만나보는 것이었다. 버버리의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피렌체, 트렌치 코트를 생산하는 캐슬퍼드 등을 방문해 생산 시설을 점검하고 런던과 블라이스(Blyth) 두 곳으로 나뉜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방문했다. “하우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세 가지 코드에 집중했습니다. 체크 패턴, 기사 로고, 개버딘이죠. 거기서부터 시작할 생각입니다.”

버버리의 역사는 16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토마스 버버리가 영국의 날씨를 견뎌낼 만한 튼튼한 옷을 만들던 그때로 말이다. 그는 1879년경 촘촘하게 짠 울 소재, 개버딘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용성은 다니엘 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디자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유 있는 혁신이죠. 이는 단지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기 위한 것이거나 새로운 실루엣 탄생을 위한 혁신과는 다릅니다. 토마스 버버리는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패션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자, 리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트렌치 코트를 한번 생각해보죠. 수십 년간 존재해온 아이템입니다. 트렌치 코트가 그랬듯, 수십 년간 유효할 가방이나 신발은 어떤 걸까요? 트렌치 코트만큼 오랜 기간,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오버 코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실용적이고 클래식한 아이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보드라우면서도 편안한 옷이죠. 항상 움직이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버버리에서의 첫걸음이 F/W 컬렉션인 것도 행운입니다. 버버리의 진가가 드러나는 시즌이니까요.”

리 역시 아주 활동적인 사람이다. 보테가 베네타를 떠난 뒤, 그는 보츠와나와 짐바브웨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보츠와나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그곳은 지구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동물과도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죠.” 그는 마추픽추를 등반했고, 쿠바를 두 번 방문했다.

지난달 리는 버버리에서 첫 캠페인 이미지 촬영을 마쳤다. ‘리의 버버리’가 어떤 모습을 띨지, 다음 컬렉션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보테가에서부터 인연이 시작된 런던 출신의 포토그래퍼, 타이론 레본(Tyrone Lebon)과 함께 완성한 이번 캠페인은 리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버버리의 클래식 아이템으로 가득하다. 아이템은 2월 초부터 버버리의 공식 홈페이지와 오프라인에서 구매 가능하다. 보테가 베네타에서 ‘디지털 저널’을 표방하며 인스타그램 게시물과 계정까지 비활성화한 그가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미디어 전략을 택한 것이다.

“타이론의 팀과 일하는 것은 정말 즐겁습니다. 모두가 함께하고, 모두 아이디어가 넘쳐나기 때문이죠. 오랜 기간 함께한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하죠.” 리는 캐스팅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영국과 런던을 대표할 수 있는 ‘진짜’ 사람들이 출현합니다.” 하지만 그는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다. 단지 무용, 축구, 음악,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버버리의 새로운 얼굴이 될 것이라는 말만 남겼다. “버버리는 영국 문화는 물론, 영국이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브랜드입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영국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릴 의무가 있다는 거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버버리의 새로운 비전을 본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은 안도감입니다. ‘그래, 버버리는 이래야지’라는 생각 말이에요.” 버버리에서 그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짐작할 수 있는 한마디다.

지난 4월 베르사체를 떠나 버버리의 새로운 CEO로 임명된 조나단 아케로이드(Jonathan Akeroyd) 역시 리와 같은 생각이다.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전부 조율해나가고 있습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리는 컬렉션을 준비하며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지 않았다. 단지 색다른 시선과 의견을 더할 여성으로 가득한 팀을 꾸렸을 뿐이다. “보테가에서도 초창기 이후로는 한 번도 스타일리스트와 일하지 않았습니다. 팀 단위로 컬렉션을 완성하는 것을 선호하죠.”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리가 처음 참석한 쇼는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2012 F/W 버버리 컬렉션이다. 쇼장에 인공우가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그가 처음 구매한 버버리 피스 역시 베일리가 디자인한 재킷이다. “베일리의 버버리가 선보인 니트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라고 말한 리는 베일리와 같은 요크셔 출신이고, 보테가 베네타 시절부터 베일리는 리의 멘토였다. 리는 버버리에서 2001년부터 2018년까지 머문 베일리의 따뜻함과 다정함이 버버리라는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주요했다고 말한다.

베일리만큼 리도 버버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그는 “미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가 버버리에 ‘다니엘 리’라는 역사를 뚜렷이 새길 것은 분명하다. 테라스가 딸린 유서 깊은 런던의 집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에디터
안건호
Nicole Phelps
사진
William Water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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