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코미디의 만찬
지금 가장 뜨거운 메타코미디를 창조한 코미디언들이 모였다. 이 최초의 만찬 주제는 ‘나의 코미디 철학’.
빵송국
곽범 코미디는 육아와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웃겨주고, 그 모습을 보는 내가 행복하다면 충분하다. 무거운 의미, 주제, 형식, 장르를 벗어나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웃겨서 행복하게 해주고 그걸로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대신 아이를 대하듯 너무 함부로 하거나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이창호 열 명 중에 여섯 명이 웃는 코미디에 초점을 맞춘 시절이 있었다. 공개 코미디에서는 웃음이 번졌기 때문이다. 현장감이 있어야 하고 빠르게 다수가 공감해야 하기에 그때는 그런 코미디에 집중했다. 또 어떤 때는 웃음의 종류는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보는 이들 한 명 한 명이 다르듯, 웃음을 줄 수 있는 것도 비디오적이거나 오디오적인 부분으로 시작해 수만 가지로 다양하다며 생각을 넓게 가졌다. 이제 가장 중심에 서 있는 뿌리이자 기둥이자 핵은 ‘내가 재밌어야 한다’이다. 내가 재밌어야 일로서도 작품으로서도 코미디다워진다.
김경욱 유행에 편승하는 코미디는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 앞으로도 극소수의 마니아가 열광적으로 사랑해주고 응원할 수 있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또한 코미디라면 노래, 연기, 퍼포먼스 등 형태를 불문하고 도전하겠다.
대니초 코미디는 규범의 붕괴라고도 할 수 있다. 코미디는 예상치 못한 것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누군가 미끄러졌을 때, 아무도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재미있게 느껴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펀치라인은 보통 관객이 예상 못한 상황에서 농담이 나올 때 터진다. 코미디는 놀림감을 필요로 한다. 그게 코미디언이든 농담 속의 누구든 간에. 그렇기에 코미디언은 놀림감이 되는 대상에게 악의적인 의도가 없어야 한다. 코미디는 주관적이다. 같은 농담을 두고 누군가는 웃지만 누군가는 웃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100명 중 50명이 웃었다면 농담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코미디언으로서 모두를 웃기겠다는 의무감은 코미디의 목적을 희석시키고 결국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숏박스
엄지윤 내게 코미디란 모방이다. 코미디는 결국 놀리는 것이다. 망한 코미디란 결국 제대로 놀리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제대로 놀림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메타코미디 정영준 대표의 강연 내용을 모방했다(웃음).
김해준 중도를 아는 코미디! 코미디 자체가 불편함이 전혀 없이 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최대한 불편하지 않은 웃음을 주고 싶다. 과하지 않고 약하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디쯤을 잘 찾아내는 코미디를.
스낵타운
이재율 내 코미디 철학은 가벼운 코미디다. 힘든 일, 고민할 일, 걱정할 일 많은 요즘 세상에 코미디까지 많은 생각을 요구하면 심신이 너무 피로하지 않을까? 가벼운 코미디를 보며 피식 웃고 허를 찔리고 때론 배꼽 잡으며 대중의 일상이 윤택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코미디언의 역할이다. 멋있거나 위대하거나 존경스럽기보다는 초라하고 소박하고 장난스럽고 싶다.
강현석 소심한 성격이지만 코미디는 가장 욕심나는 분야다. 살면서 무언가 강렬한 욕구가 없는 편이지만 코미디만큼은 잘해보고 싶고, 남들과 함께 웃기며 코미디의 세계로 올라가고 싶다. 과거엔 노력을 잘하지 않던 평범한 내가, 애정을 쏟고 집중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코미디다. 또 그런 나를 빛나게 만들어주는 코미디 무대를 정말 사랑한다.
뷰티풀너드
전경민 아주 어릴 때부터 코미디를 사랑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해야 더 재밌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배우는 단계기에 ‘나만의 개그 철학’은 아직 명확하진 않다. 지금 어중간하게 개그 철학을 꺼냈다가 미래의 내가 비웃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나는 부족한 만큼 뷔페 접시처럼 앞으로 채워나갈 것이 많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대한민국 코미디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만약 <보그>가 다시 불러준다면, 그때는 꼭 나만의 철학을 말하겠다.
최제우 메타코미디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내가 과연 코미디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코미디 콘텐츠로 유튜브를 시작했지만, 솔직히 코미디 장르에만 국한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계약하고 나서도 기쁘지만 걱정도 됐다. 막상 회사에 들어와보니 ‘코미디언’ 선배 크리에이터들이 ‘웃기겠다’는 일념하에 망가지고 넘어지고, 뒤에서는 진지하게 웃음을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짜내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그들을 보며 어느새 나도 진정한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코미디란 ‘놀리고 놀림당할 각오’에서 탄생하지 않나 싶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모두 저마다 크고 작은 단점을 갖고 살아간다. 아무리 포장하고 숨기려 해도 조금씩 튀어나오는 사람들의 단점을 목격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단점을 캐치하고 분석해서 말 그대로 ‘놀리는 영상(모든 영상이 그렇진 않지만)’을 제작하고, 그것을 즐겁게 감상하는 시청자를 보며 나도 코미디언으로서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다.
면상들
조훈 코미디란 남녀노소 불문하고 부와 명예 등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어릴 적에 여러 코미디 매체를 보면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기에 나도 이런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개그에 사람들이 웃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꿈이던 코미디언이란 직업을 어렵게 가진 만큼 사람들에게 더 좋은, 가치 있는 개그를 보여줘야 한다. 현시점의 내 꿈은 물론 코미디로 대성하는 것도 좋지만 늙어서까지 코미디를 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웃음이라는 행복을 주고 싶은 것이다. 코미디는 죽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없어선 안 되는 산소 같은 존재니까.
이선민 ‘웃기다’라는 인간의 감정은 나머지 감정이 짝사랑하는 대상이다. 예를 들어 슬픈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웃기다 혹은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지 그 반대 경우는 없다. ‘코미디’는 그 웃음이라는 감정을 선물하는 가장 효과적인 포장지인 것 같다. 나는 그 선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포장하는 ‘코미디언’이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온 세상에 선물을 뿌리고 다니듯,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느낌만으로도 행복을 주듯이 보기만 해도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 산타. 연세 지긋하신 산타 할아버지가 아직도 현역이듯, 힘닿는 데까지 웃겨보겠다.
박세미 세상에 웃긴 사람은 많다. 그리고 어디서든 웃긴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코미디언은 단순히 웃긴 사람이 아니며, 코미디 안에는 공감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 나도 그렇게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코미디언이 될 것이다.
숏박스
조진세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이 웃을 수 있는 것이 코미디다. 쌍방으로 행복한 기운을 계속 주고받는 코미디가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원훈 코미디를 처음 시작할 땐 마냥 웃음을 드리고 싶어서 이기적인 개그를 했다. 지금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두가 웃을 수 있어야 좋은 코미디란 걸 안다.
피식대학
김민수 코미디는 창작자의 표현 방식 중 하나다. 화가는 그림으로, 소설가는 소설로 표현하듯 코미디언은 웃음을 매개로 자신 혹은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다만 ‛웃음’이라는 특성 때문에 창작물을 접했을 때 힐링 받고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정재형 나에게 코미디란 오래된 연인이다. 진짜 잘하고 싶은. 하지만 잘 안되기도 하는. 항상 함께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말 행복하다. ‘But’ 너무 힘들 때도 많다. 이젠 다 알 것 같다. ‘Nevertheless’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이용주 나에게 코미디란 고통과 상처다. 고통과 상처는 타인(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미디언에게 고통과 상처는 좋은 코미디를 할 수 있는 행운이다.
과나 어딘가 모자란 내게 코미디는 늘 ‘괜찮아! ㅋㅋㅋ’라고 말해줬다. ‘이상하고 못난 사람도 웃길 수 있으니 괜찮다!’ ‘슬프고 억울한 일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으니 괜찮다!’면서. 그래서 코미디를 사랑한다. 그 덕분에 내게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도 언제나 ‘괜찮아! 어쨌든 이걸로 웃거나, 웃길 수는 있잖아!’라고 결론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나의 삶, 말, 작품을 보고 누군가는 ‘저 미친놈 ㅋㅋㅋ’ 하고 웃겠지. 그게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보그>는 시대의 예술가와 함께한다. 그중에서도 코미디언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내며 지면에 담아왔다. <보그>가 프러포즈한 코미디언은 그 시대에 가장 주목받거나 규칙을 깬 혁신가다. <개그콘서트>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릴 때 <보그>는 출연진 50여 명을 지면에 담은 적 있다. 그 작업을 함께 한 에디터들이 2023년 3월호에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의 코미디언이자 크리에이터 19인을 만났다. 피식대학의 정재형, 김민수, 이용주, 숏박스의 김원훈, 조진세, 엄지윤, 빵송국의 곽범, 이창호, 면상들의 이선민, 조훈, 뷰티풀너드의 전경민, 최제우, 스낵타운의 이재율, 강현석 그리고 김해준, 박세미, 과나, 대니초, 김경욱이다.
이들은 뉴미디어, 특히 유튜브에서 아이디어와 연기력을 펼치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국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무대를 잃은 젊은 코미디언들은 오히려 방송국이나 제작자의 간섭 없이 대중에게 직접 콘텐츠를 전달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이들의 코미디를 처음 접한 것은 피식대학의 ‘05학번이즈백’이다. 여전히 2005년 싸이월드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이들을 보며 추억에 젖곤 했다. 최근 피식대학이 해외 토크쇼를 모방해 선보이는 ‘피식쇼’에 RM이 출연했다. RM은 피식대학의 팬을 자처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코미디의 판을 바꾸고 있다.” 지금 젊은 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숏박스의 ‘장기연애’ 시리즈 중 ‘모텔이나 갈까?’ 편은 2월 현재 조회 수가 1,290만 회, ‘좋아요’가 11만 개다. 피식대학뿐 아니라 메타코미디 소속 코미디언들의 콘텐츠는 공개될 때마다 순식간에 수십만 회 조회 수를 기본으로 시작한다. 10분 내외로 유머러스한 연기를 펼치는 스케치 코미디, 스탠드업 코미디 등 방식은 다를지라도 공감과 웃음을 끌어내며, 세계관, 부캐, 하이퍼리얼리즘, 페이크 다큐, B급 정서 등의 키워드를 가진다. 김해준의 카페 사장 최준처럼 부캐를 설정해 연기를 펼치며, 캐릭터의 세계관을 촘촘히 설정하고 콘텐츠 밖에서도 깨뜨리지 않으려 한다. 김경욱이 자신의 부캐 다나카를 다른 사람처럼 말하듯이 말이다. 또한 뛰어난 관찰력과 연기력에서 나오는 ‘하이퍼리얼리즘’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콘텐츠에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싫어하고 고민하고 욕망하는 것들이 담겨 있다. 시대정신이 담긴 것이다.
이는 공감을 자아낼 뿐 아니라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거나하게 취해 지하철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산악회 아저씨들이 이전엔 불편했다면, 피식대학의 ‘한사랑산악회’를 본 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이창호가 연기한 한사랑산악회 부회장 이택조의 큰 목소리는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인테리어 현장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이다. 또한 박세미가 신도시에 사는 젊은 엄마를 연기하는 ‘서준맘’도 다소 극성맞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로서, 일명 ‘맘’에 대한 잘못된 혐오를 줄여나간다고 확신한다. 그들의 코미디가 우리의 단절을 조금이나마 풀고 있는 것이다.
<보그>는 이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코미디 철학은 무엇입니까?” 수년간 고민해왔고 앞으로 평생 가져갈 이 질문에 현재의 답이 궁금했다. 이선민에게 ‘웃음’은 나머지 감정이 짝사랑하는 대상이고, 이용주에게 코미디란 고통과 상처다. 그것이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틈이기 때문이다. 진심이 담긴 대답이기에 ‘시’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 <보그>는 촬영일에 만찬을 준비했다. 최초의 만찬이란 컨셉으로 이들은 저마다의 음식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들은 촬영이 끝난 밤 11시 회식 장소로 향했다.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웃음이니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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